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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무기력한 나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제게는 자주 만나는 친구가 세 명 있습니다. 한 명은 원생이 1,000명이 넘는 수학 학원의 원장입니다. 한 명은 1조 대의 매출을 올리는 자동차 부품 회사의 전무 이사입니다. 한 명은 부산에 있는 이케아에서 시설 관리 책임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해놓고 보니 나름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남부럽지 않은 멤버들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간만에 모인 우리가 술 한 잔 기울이며 나눈 얘기는 '무기력'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무려 7개 관의 수학 학원을 운영하는 한 친구가 어느 날의 우울한 일상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극단적인 선택에 관한 경험도 함께 말했습니다. 자동차 부품 회사에 다니는 친구도 함께 거들었었습니다. 자살을 제정신으로 하는 사람은 없다, 그 고민을 들어줄 단 한 사람이 없어서라고 이야기하더군요. 가장 활동적인 부산의 이케아 친구는 평소에도 주문을 외듯 외로움과 힘듦, 서러움과 소외감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왜 자신이 낚시를 하는지에 대해서 말해주었습니다. 무기력에 극에 달하던 날 그는 낚시를 나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따라 낚아올리는 잡어들 때문에 행복해졌다고 했습니다. 간만에 친구들에게 한턱 쏘던 날, 나는 47만원의 호주산 와규값이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자주 심각한 무기력에 빠지곤 합니다. 물론 강의를 하거나 모임을 할 때면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해요. 남들이 감탄할 만큼의 글을 빠르게 써냅니다. 수없이 많은 모임과 프로젝트들을 제안하기도 하죠. 그래서 종종 저는 '실행력이 빠른 사람'으로 오인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게으름과 무기력으로 충만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악몽을 꾸곤 합니다. 이 글을 쓰는 오늘 새벽만 해도 직장에서 쫓겨나는, 아주 실감나는 꿈을 꾸고 한숨을 길게 내쉰 채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토록 힘들었던 직장 생활을 생각해보니 그건 한 마디로 '가스 라이팅'이었습니다. 천성이 '착한(이건 결코 긍정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저는 직장에서 숱하게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저의 부족한 사회성이 가장 큰 문제겠지만 그 상처의 흔적은 지금도 여전히 무의식 속에 살아남아 나를 괴롭히곤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월급을 받고 인생 전체를 혹사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당연한 듯이 견뎌내고, 때론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거의 소시오패스에 가까운 후배가 출근하며 내던 '또각 또각' 구두 소리가 선합니다. 며칠 밤샘을 하느라 눈의 실핏줄이 터진 내게 웃으며 속옷을 선물하던 상사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명합니다.


물론 지금의 저는 예전보다는 비교적 쉽게 이 우울에서 빠져나오곤 합니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우울할 새가 없습니다. 오늘은 격주로 진행하는 브랜드 수업이 있는 날입니다. 무료 수업이지만 수강생이 400명이나 됩니다. 그 어떤 일보다도 더 많이 신경쓰고 준비하는 이 수업의 이름은 브사세, 즉 브랜드로 배우는 사람과 세상입니다. 이 격주간의 수업은 빛의 속도로 다가와 나를 압박합니다. 그래도 힘들게 수업을 마쳤을 때의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나를 행복하게 합니다. 오후에는 기업체의 강연이 있습니다. 두 번째 불러주어 더 의미있는 강연입니다. 주제를 잡고 보니 무기력한 일상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에 대한 강의였습니다. 나=저는 그 솔루션으로 벌써 7,8년 째 이어오고 있는 '스몰 스텝'을 이야기할 생각입니다. 아주 꼼꼼한 실무자를 만나 또 하나의 새로운 강의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 강연이 끝나면 나는 곧장 목동 CBS 7층으로 달려가 네 번째 브랜드 수업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지만 내일은 더 큰 행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올해 초 의욕적으로 시작한 스브연, 즉 스몰 브랜드 연대 모임의 첫 오프라인 강연이 있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혼자 일하다보니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맨땅에 헤딩하는 날도, 화가 난 클라이언트의 전화가 두려워 분당의 탄천을 배회한 날도 여럿이었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이유도 없이 나를 믿고, 일을 주고, 다른 일들까지 소개해주는 은인도 숱하게 만났습니다. 제가 그분들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은 능력껏, 거짓말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약속을 지키는 일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홀로 6년을 일하며 조금씩 커리어를 쌓아왔습니다. 다행히 그 진정성을 알아주는 분들이 주위에 적지 않습니다. 저는 이 경험을 살려 작은 브랜드들끼리 서로 도울 수 있는 연대 모임을 생각했습니다. 십시일반 조금씩 돈을 모아 브랜드에 관한 최고의 강사진들을 섭외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 첫 번째 강사는 '내 운명은 고객이 결정한다'를 쓴 박종윤 대표입니다. 서른 셋의 나이에 맨손으로 일군 사업이 성공을 거둬 현재 숱한 기업들을 마케팅으로 돕고 계신 분입니다. 외부 강연을 일절 하지 않는 분이지만 우리 모임의 취지를 아시곤 선뜻 강연을 수락해주었습니다. 나는 이런 검증된 마케팅과 브랜딩의 구루 분들을 모시고 앞으로 열 두 번의 특강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사이 사이 수없이 많은 특강과, 오프 모임, 번개 모임 등을 진행해보려고 합니다. 그러니 달리 우울할 시간이 없습니다. 이번 주말만 해도 빈둥거리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것도 그 때 뿐입니다. 이미 저지른? 약속들이 있으니 게으를 새가 없습니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원 원장인 친구는 밀려드는 일 때문에 사무실까지 별도의 오피스로 옮긴채 다양한 경영 관련 서적을 읽으며 넥스트 스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중견 기업의 이사인 친구는 암 투병 중에도 회장님을 모시며 회사를 운영하느라 아플 새가 없는 듯 보입니다. 가장 말이 많은 부산의 이케아 친구는 부산에서 용인을 왔다갔다 하는 살인적인 일정에도 와이프와 함께 데이트를 즐기는 사진을 보내오곤 합니다. 문득 학원 원장인 친구의 말이 생각나 슬며시 웃음을 짓게 됩니다. 주말의 모임을 준비하는 친구의 달뜬 모습이 그의 아들에겐 신기하게 보였나 봅니다. 그런 아들에게 부산 출신의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하더군요. "와? 아빠는 친구도 없는 줄 알았나?" 매일 일에만 골몰하던 친구의 모습이 얼마나 생경해보였으면 아들이 아빠도 친구가 있느냐고 물어보기까지 했을까요. 게다가 우리는 나름의 멋진 중년의 여행 계획도 세우고 있습니다. 매달 3만원씩 모은 돈이 300만원을 넘어섰습니다. 그래서 조만간 일본이나 동남아로 여행을 떠날 예정입니다. 비행기값이 모였으니 일단 떠나보려고 합니다. 일본에서 온천을 즐길 수도, 푸켓에서 휴양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이런 계획들이 다시금 우리를 들뜨게 합니다.


저는 비교적 이런 글을 쉽게 써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타고난 조금의 재능과 20여 년에 걸친 실전 수련의 경험 때문입니다. 후배로부터 내가 쓴 글에 대한 냉혹한 피드백을 받고 원고를 회사 복도에 집어던지던 기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그 후배와 회사 생활 내내 가장 친했다는 점이에요. 새벽 4시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신세 한탄을 후배에게 하던 기억이 새삼 눈물나게 그립습니다. 그때는 절실했습니다. 그리고 막막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어떻게 나는 견뎌낼 수 있었고 지금은 감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모아놓은 돈도, 대단한 명성도 없지만 내게는 두려움과 설레임이 교차하는 일상이 있습니다. 오늘은 강의도 잘해야 하고 수업은 더 잘해야 합니다. 내일은 무려 80여 명의 회원을 모집한 '스브연'의 리더로 첫 오프라인 세미나를 잘 끝내야 합니다. 하지만 설레임이 두려움보다 조금 더 큰 것이 사실입니다. 이 때문에 나는 우울할 새도, 무기력할 여유도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정말 바라는 시간은 이 강의와 수업과 세미나를 끝내고 돌아가 맞는 기분 좋은 탈진의 상태입니다. 마치 상어잡이를 끝내고 돌아와 사자의 잠을 자는 '노인과 바다'의 노인처럼 말입니다. 이것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무기력에 웃으며 대처하는 나만의 방법입니다.


* 오늘 저녁 8시, 세바시랜드에서 '브사세' 4번째 무료 특강이 이어집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려요. :)

https://bit.ly/3HzNC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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