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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프란트와 자화상

램프란트는 당대의 성공한 화가였다. 그리고 그는 자화상을 즐겨 그렸다. 40대에 그린 그림을 보면 그가 입은 옷과 표정에서 여유가 흘러 넘친다. 하지만 그의 자화상은 나이를 먹을수록 초라해지고 남루해진다. 그는 결국 집세를 내지 못해 집에서 쫓겨나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그래도 그는 자신을 그렸다. 자신의 모습을 담대하게 마주한 것이다.


반대로 자신의 모습을 절대 마주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을 만난다. 최고의 대학을 나오고, 검사가 되고, 도지사가 되고, 장관까지 되었는데 갈수록 욕심으로 가득찬 추한 모습으로 변해 간다. 이 사람은 스스로를 천재로 여긴다는데 대중이 보는 모습은 그와 반대로 간다. 이 사람은 과연 자신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본 적이 있을까?


스스로를 객관화해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메타 인지라고 한다. 스티븐 코비는 그의 책에서 이런 시각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을 매우 강조한바 있다. 하워드 가드너는 이러한 지능을 자기성찰 지능이라고 불렀다. 누군가는 나이를 먹을수록 이런 지능을 더해가는 반면, 또 다른 누군가는 주체할 수 없는 욕망에 이끌려 자신의 원래 모습을 망각해버리곤 한다.


진정한 예술가는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기 위해 평생을 수련한다. 그 결과로 오래도록 기억될 자신의 이름을 얻는다. 그럼에도 화가들 중 자신의 살아 생전 부와 명예를 거머쥔 자가 많지 않다. 그러나 세상은 그들을 실패한 화가로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의 정치가들은 마치 올해만 살고 말 것처럼 거짓을 말하고,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며, 희화화된 자신의 본 모습을 애써 외면한다.


이제야 비로소 마흔이 넘으며 자신의 얼굴을 책임져야 한다는 말의 진의를 떠올리게 된다. 나이 든 사람의 표정은 그 사람의 인격이다. 누군가는 세월의 흔적을 거스르지 않은채 아름답게 늙어가는 한편, 또 다른 누군가는 갈수록 망가진다. 그러니 제발 거울을 보자. 램프란트처럼 자신의 얼굴을 그려보자. 조금 남루하면 어떤가. 나의 참모습을 마주할 용기를 가지자. 그게 어쩌면 가장 나답게 살아가는 지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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