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페이지 짜리 워크북을 만들었다. 그리고 5분의 대표님들과 7시간 동안 수다를 떨었다. 재미있고 보람 있었다. 브랜드의 미션, 가치, 비전에 대해 이야기했다. 딱딱한 텍스트가 생동감 넘치는 브랜드로 되살아나는 경험을 했다. 현란한 이론들이 뚝배기에 담긴 한 그릇의 된장 찌개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집단 지성의 힘이었다. 다시 한 번 브랜딩의 유용함에 대해 뼈저리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자. 흑석동에 있는 카페 '리앤홍'은 주말에만 운영된다. 주인장은 직장인이다. 어떤 직장인인가 하면 한량?의 피를 타고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나름 들어가기 어려웠던, 훌륭한 회사를 다니면서도 항상 창업을 꿈꾼다. 그래서 7년 동안이나 이 공간을 유지해왔다. 그럼에도 이 카페를 다른 카페와 구분하는 차별점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그날 그 하나의 단어를 찾았다. 존중에 기반한 환대, 바로 그것이었다.
카페 주인장은 초등학교 6학년부터 홀로 자랐다. 일찍 부모님을 여읜 그가 얼마나 많은 눈칫밥을 먹었을지 짐작이 간다. 그러나 지금의 장모님을 만나면서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 그는 지금도 매일 아침 장모님으로부터 고급 한식당의 구첩 반상이 부럽지 않은 아침상을 대접받는다. 사랑과 정성이 듬뿍 담긴 이 놀라운 대접은 그가 그토록 '존중'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대접을 받아본 사람이, 존중을 받아본 사람이 타인을 다시 대접하고 존중할 수 있다. 이 카페가 추구해야 할 단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면 그건 바로 '환대'였다.
문제는 이 환대라는 텍스트를 타인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물론 그가 만드는 커피는 맛있고 공간은 매력적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했다. 일다는 그는 타인을 향한 존중을 보여주기 위해 커피 머신을 포기했다. 대신 한잔 한잔 정성을 담아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린다. 기성품이 아닌 직접 만든 디저트를 고집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는 커피 잔, 물 잔 하나를 일일이 직접 골라 세팅한다. 장모님의 사랑을 경험한 그에게는 이런 일련의 노력들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워보였다. 그러나 아직도 2% 부족하다. 이곳만의 차별화된 그 무엇, 환대의 키워드를 표현할 그 무엇을 더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때 워크샵에 참여한 다른 대표님이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그는 이 단어를 듣고 일본의 교토를 떠올렸다. 1000년이 넘은 떡집 이야기를 꺼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 떡집을 특별하게 하는 것은 떡의 맛과 역사 때문만은 아니었다. 손님을 향한 지극한 정성과 환대, 그것을 경험한 이 대표님은 카페 리앤홍의 이야기를 듣고 교토의 떡집을 떠올렸다. 그래서 나는 카페 대표님께 교토 여행을 권했다. 그 지극한 환대의 경험을 더할 수 있다면 이곳 카페도 훨씬 더 특별해질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도 7년은 더 단단해질 수 있지 않을까?
오랫동안 준비했지만 나는 여전히 밤잠을 설친다. 하루 종일 브랜드를 이야기할 수 있는, 그것도 재미와 유익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실제적인 솔루션을 도출할 수 있는, 자신의 브랜드를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랬다. 그리고 어제 하루, 아주 조금은 그 목표에 다가간듯 하다. 매일 매일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습득하지 못하면 금방 도태될 수 밖에 없는 이 바닥, 나는 또 한 번 함께한 대표님들을 통해 또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다음엔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다. 명사보다 동사에 더 가까운 브랜드, 아니 브랜딩의 암묵지를 형식지로 바꾸는 작업, 그것이 바로 내가 어제의 워크샵을 통해 목표로 한 바였다. 그 답의 일부를 찾은 지금, 나는 기쁘다.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충만하다.
p.s. 무려 7시간을 조용히 기다려준 은하야,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