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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분당의 작은 동네 교회를 떠나야 했을까?

1.


얼마 전 이사 온 동네 사람을 만난 와이프가 한 가지 '괴담'을 전해주었다. 지금은 떠나온 동네 교회 예배 시간에 장로님이 문재인의 목을 매달아야 한다는 기도를 했다는 것이다. 결국 몇몇 교인이 기도 중 예배당을 떠났고 목사님도 이런 기도는 곤란하다는 말씀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더 놀라운 장면은 예배 후 목사님과 장로님이 교인들을 배웅하는 시간에 이뤄졌는데, 문제의 그 기도를 한 장로가 목사님을 오래도록 설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야단을 맞아도 모자랄 판에 설득이라니...


2.


나 역시 수 년 전에 강도만 달랐을 뿐 똑같은 이유로 그 교회에 발길을 끊은 적이 있다. 차마 예배 시간에 나오지 못하고 끝까지 자리를 지켰었는데 지금은 매우 후회하고 있다. 성도들이 항의를 하지 않으니 그런 기도가 계속 이어졌던 것이고 작금의 사태?까지 빚어졌을 것이다. 나는 젊은이들이 떠나는 교회에 태극기 부대만 남은 교회가 꽤 될거라고 생각한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문재인이 북한의 사주를 받고 있다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진실처럼 오가고 있다고 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큰일이다. 나는 북한의 사주를 받은 공산당 사람을 무려 대통령으로 뽑았으니 말이다.


3.


오해가 있을 듯해서 말하지만 나는 지금의 민주당이나 이재명 대표를 좋아하지 않는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유승민 같은 온건한 보수를 지지하는 편이다. 그리고 내 정치적 성향은 선거 때마다 바뀌어 왔다. 적어도 진보와 보수를 떠나 합리적인 선택을 하려고 애를 썼다. 이를테면 소수의견을 지지해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비슷한 선택을 할 것이다. 그리고 나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할 생각은 더더욱 없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땅에 진정한 보수와 진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4.


그러나 괴담 아닌게 괴담이 되고, 괴담이 사실처럼 전파되는 교회의 현실을 보면 이 시대의 풀지 못할 킬러 문항이 아닌가 생각될 때가 있다. 답이 없으니까 말이다. 최근의 사회 문제에 대해 교회 목사가 올바른, 용감한 목소리를 낸 적이 있는가. 오히려 수염 긴 할아버지가 하는 말이 현실화 될 때가 더 많다. 십계명의 첫 번째가 '내 앞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인데... 마치 자정 능력을 잃은 연못처럼 한국 교회는 매우 심각하고 썩어가고 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듯 보인다.


5.


분당의 어느 교회 목사님은 최근 택시를 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반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라고 한다. 여자 성도를 절대 혼자 만나지 않고, 문을 열어두고 만난다는 이 목사님을 나는 매우 존경한다. 교회 문제의 8할은 정작 정치 쪽이 아니라 성과 관련된 문제다. 신학교 졸업생에게 학교가 신신당부하는 말이 다른 사고는 몰라도 그런 문제는 일으키지 말라는 거라고 졸업생인 친구에게 얘기를 들은바 있다. 얼마나 문제가 많으면 그런 부탁이 공공연히 이루어질까. 아무튼 나는 이런 아주 작은 움직임이 교회의 변화를 위한 마지막 희망이자 보루라고 생각한다.


6.


예수님을 생각하면 착한 이미지만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그렇지 않다. 당시 세상 악의 뿌리였던 바리새인을 대하는 예수님을 보자면 영화 속 마동석 못지 않다. 화를 내었을 뿐 아니라 독설을 퍼붓고 이른바 시장의 매대를 뒤집어 엎은 적도 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은 불의에 관해서는 불과 같은 태도를 보인다. 한 종족을 쓸어버린 적도 있을 정도다. 오죽하면 나 같은 사람이 성경을 읽다가 시험에 든 적도 있을 정도니. 그런데 지금의 교회를 보면 예수님이 그렇게 싫어하던 바리새인들의 모습이 별다른 상상력 없이도 떠오른다.


7.


나는 매일 새벽 감동적으로 설교를 들었던 목사가 같은 시간에 성추행을 일삼았다는 사실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목사가 교회나 교계에서 퇴출되기는 커녕 여전히 성공적으로? 목회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고 있다. 교회 예배 시간에 장로가 해야 할 기도는 이런 현실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고백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8.


나는 여전히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이 세상을 향한 메시지를 믿는다. 동시에 자정 능력을 잃은 교회가 어떻게 성도들을 잃고 박물관으로 변해갔는지도 잘 알고 있다. 내가 이런 말 한다고 교회가 변할리 만무하겠지만 그래도 이런 말 조차 하지 않으면 답답해 미칠 것 같아 이 글을 새벽에 쓴다. 정작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기 원했던 사람은 그 당시의 신앙심 좋은 이스라엘 민족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한국 교회가 다시 예전의 건강한 이미지를 찾으려면 스스로를 목 매다는 결심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미션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작은 희망의 공을 하나 쏘아 올린다. 키 작은, 아무도 관심 기울이지 않는 난장이가 된 심정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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