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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순환의 철학, 프라이탁(Freitag)

1. 1993년, 마커스(Markus)와 다니엘 프라이탁(Daniel Freitag) 형제는 평소 자전거를 애용했다. 하지만 그래픽 디자이너였던 프라이탁 형제에게 비 오는 날의 자전거 라이딩은 불편하기만 했다. 사흘에 한 번 꼴로 비가 오는 스위스의 날씨에 가방에 넣은 스케치북은 금새 비에 젖거나 눅눅해졌다.


2. 프라이탁 형제에게는 '방수 기능'이 있는 가방이 절실했다. 특히 자전거를 탈 때 불편함이 없도록 '메신저백(가방 한 쪽 줄을 어깨에 매는 형태의 가방)'을 애타게 찾았다. 그때 두 형제의 눈에 버려진 트럭에 덮인 방수천이 보였다. 생각은 곧 실천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곧장 트럭의 방수천을 집으로 가져와 세척한 뒤 손으로 직접 자르고 꿰매어 자신의 마음에 드는 메신저백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메신저백은 훗날 프라이탁의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은 'F13 TOP CAT' 모델의 원조이기도 하다.


3. 지인들에게 이 가방을 소개하자 열렬한 반응이 이어졌다. 자신의 것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빗발쳤다. 열렬한 반응에 용기를 얻은 프라이탁 형제는 가방 40개를 만들어 패션소품 매장에서 판매했으며, 이 메신저백은 자전거 출퇴근족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1995년에는 사업자 등록을 끝마치고 본격적으로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다.


4. 프라이탁의 가방 재료는 트럭 방수천으로 쓰이는 타폴린, 자동차의 안전벨트, 폐자전거의 내부 고무튜브다. 아침에 일어나서 목욕을 하려 하면 욕조엔 트럭 방수천이 가득했고 룸메이트는 봉제틀 소리에 잠을 못 잤다고 한다. 실제로 같이 살던 룸메이트는 이들이 자는 걸 거의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5. 프라이탁은 트럭의 방수천으로 가방의 몸통을 만들고, 자동차의 안전벨트로는 끈을 만든다. 가방의 마감 역시 자전거의 고무 튜브를 활용하곤 한다. 물론 가방에 사용되는 재활용 소재들은 모두 확고한 체크 포인트가 있다. 특히 방수천의 경우에는 5년 이상 사용됐던 것만 활용해 가방을 만든다. 1년에 프라이탁 가방 생산으로 재활용되는 방수천의 양은 무려 수천 톤에 달한다.


6. 프라이탁은 가방을 모두 수작업으로 만든다. 세상에 하나뿐인 가방이다. 트럭 방수천이 재료이기 때문에 항상 다른 디자인의 가방이 나오는 것이다. 이후 동네 편집샵에 가방을 조금씩 입점하다가 ‘Freitag Retour Brothers’라는 이름으로 사업자 등록을 하였다. (retour는 리사이클링이라는 뜻이다.)


7. 종횡무진 도로를 누볐던 트럭들인 만큼 아무리 신제품이라 하더라도 제품에는 흠집이 가득하다. 다른 브랜드에서는 불량이라 불릴 것 같은 흠집들이 프라이탁의 마니아들에게는 '훈장'이자 '사연'이 된다. 세탁에 사용된 공업용 세재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찔러도 그저 고유한 특성으로 인식된다.



8. 모든 프라이탁 제품은 유일하다. 프라이탁은 제품마다 유일한 코드가 붙는다. 예를 들면, F11_17567 이런 식이다. (앞의 알파벳과 숫자는 제품 군이고 뒤의 숫자는 각 제품의 고유 숫자이다.) 이 코드는 나만의 유일한 가방이라는 것을 더 강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이쁘다. 감각적이다. 힙하다. 일반적인 가방과 다른 타폴린 소재이고 색상 또한 흔한 무지 색상이 아닌 약간은 빛 바랜 색이다. 약간 미니멀한 감성이 있으면서도 포인트로 랜덤의 패턴이 들어가 있다.


9. 프라이탁의 공정과정에서도 친환경적인 사고는 여실히 묻어나온다. 프라이탁의 본사가 있는 취리히의 프라이탁 플래그십 스토어는 버려진 화물 컨테이너 박스로 만들어졌다. 심지어는 공장에서 나오는 에너지까지 재활용하곤 한다. 공장의 50%는 재활용열로 운영되며, 연간 140일 이상이 비가 내리는 스위스 특성을 이용해 빗물을 받아 가방제작에 필요한 물의 30%를 빗물로 활용하고 있다.


10. 프라이탁이 주목하는 것은 친환경 소재가 아니다. 순환 과정에 있고 유지 가능한 재료이다. 따지고 보면 트럭의 방수천도 PVC,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프라이탁은 자원을 사지 않는다. 플라스틱, 알루미늄, 금속 등 흔히 재료로 만들어지는 자원을 사지 않는다. 또한 친환경 자원, 소재를 사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만들어진 그리고 우리가 안 쓰면 버려질 재료(트럭 방수천, 폐안전벨트 등)로 제품을 만든다.


11. 여기서 프라이탁이 추구하는 가치가 드러난다. 이들은 친환경이라는 큰 범위의 가치보다 더 구체적인 ‘CYCLE’의 가치를 추구한다. 웹사이트, 인스타그램 등 프라이탁이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하는 채널에 꾸준히 등장하는 문장이 ‘We think and act in cylcle’이다. 프라이탁은 ‘CYCLE’이라는 가치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브랜드이다.


12. 2016년 프라이탁 형제는 권한을 배분하고 결정과정을 단순화하고 싶은 제도를 찾고 싶었다. 이들이 찾은 기업 문화는 ‘HOLACRACY’이다. ‘HOLACRACY’란 관리자 직급을 없애 상하 위계질서에 의한 의사 전달이 아닌 구성원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제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제도가 계급체계에서 멀어진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우선 구성원들의 역할은 서로 관련되어 있을 수 밖에 없고 이 역할들은 ‘circle’로 다 연결되어 있다.



13. 이 ‘circle’의 구조에서는 해당 작업의 전문성에 따라 계급이 뒤바뀐다. 팀플로 예를 들자면 PPT를 만드는 사람은 PPT 관련 의사결정과 미팅을 할 때는 리더가 되어 우선순위를 정하고 나머지 인원에게 역할을 배분하는 것이다. (다른 작업에서는 그 작업의 전문인을 서포트하는 것으로 바뀐다.) 이 기업문화로 이들은 오히려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감이 늘어나고 자신이 명확한 역할을 가질 수 있다고 얘기한다.


14. 프라이탁은 어떻게 이런 명성을 쌓은 걸까. 가장 주목해야할 부분은 자발적 홍보를 일으키는 팬덤이다. 프라이탁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자 세계의 많은 예술가와 디자이너 같은 힙스터들이 팬이 되고, 그 팬들은 스스로 확성기가 되어 프라이탁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브랜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바이블처럼 여기는 잡지 ‘매거진B’의 창간호 주제도 바로 프라이탁이었다.


15. 이런 팬덤의 핵심은 프라이탁이 가진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이른바 ‘미닝아웃(Meaning-out)’이 핵심이다. 미닝아웃은 'Meaning(신념)’과 'Coming out(알리다)'의 합성어로, 개인의 신념과 가치관이 소비를 통해 드러나는 것을 뜻한다. 요즘 MZ세대가 가치소비를 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프라이탁을 메면 바로 해결된다. 자신이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굳이 자기 입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프라이탁 로고만 보여주면 모든 설명이 충족되기 때문이다.


16. 공식 홈페이지와 오프라인에 팔리는 가방들은 특정 모델의 사이즈별로 전시되는 게 아니라 각각의 개별 상품으로(ex. F40 JAMIE_03130) 판매된다. 원단 오염이 적거나 인기있는 컬러는 나오자마자 매진된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마음에 드는 가방을 사기 위해 발품을 파는데, 이 과정 속에서 브랜드에 대한 애정은 점점 더 커지고 결국 프라이탁에 ‘입덕’하게 된다.


17. 프라이탁을 산다는 건 가방을 사는 게 아니라 브랜드의 이미지, 넓게는 문화를 사는 것이다. 자신을 드러내 줄 수 있는 스토리를 몇십만 원 주고 사는 것이다. 트렌드를 앞서가던 힙스터들은 기꺼이 본인의 이미지를 위해 지갑을 열었지만, 이제는 많은 MZ세대들도 이런 소비행태를 보이고 있다. 럭셔리 브랜드를 사려고 백화점 오픈런을 하는 것과 인기 있는 프라이탁 모델을 사기 위해 매장과 온라인몰에 발품을 파는 것은 묘하게 겹쳐 보인다.




* 내용 출처

https://bit.ly/3Y9QlK9 (중앙일보 뉴스레터, 2022.08)

https://bit.ly/4735Oj8 (모비인사이드, 2023.02)

- https://bit.ly/3Ogm8W5 (데일리팝, 20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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