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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은퇴하면 책 한 권 쓰고 싶은 당신에게

"은퇴하면 책이나 한 권 쓸까 봐요."


참 많이 듣는 이야기다. 그것이 진심인 것도 안다. 하지만 나는 이 사람이 결코 그 책을 쓸 수 없을 거라 확신한다. 은퇴한 당신의 얘기를 돈을 주고 들으려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지만 다음과 같은 주제라면 얘기가 다르다. 지금은 비록 은퇴했지만 실무자의 노하우를 담은 책이라면 어떨까. 은퇴 전 주니어들에게 진심을 담아 해주고 싶은 얘기를 담았다면 어떨까. 회사에 있을 땐 차마 하지 못했던, 그러나 언젠가 꼭 해주고 싶었던 조언과 당부를 담은 책이라면 어떨까. 그런 책이라면 한 번쯤은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까?


그러니 언젠가 책 한 권을 쓰고 싶은 생각을 해본 사람이라면 은퇴 전에 미리 쓰자. 출간하라는 말이 아니다. 필드에서 일하는 사람의 생생한 현장 묘사를 담은 원고를 미리 써두라는 얘기다. 나는 삶이 무료해질 때마다 꺼내 보는 특정 영화, 특정 장면이 있다. 첫 번째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 장면이다. 이 영화를 보면 온몸에 전율이 인다. 삶의 치열함과 전쟁의 잔인함이 오버랩되어 몸과 마음의 근육이 곤두서게 만든다. 퓨리의 전투 장면도 그렇다. 4대의 셔먼 전차가 1대의 타이거 전차를 상대한다. 순식간에 3대의 탱크 뚜껑이 날아간다. 어쩌면 후배들이 원하는 이야기도 이런 생생한 장면의 묘사,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남는 법이 아닐까.


누구나 자신의 삶이 책 한 권은 될거라 말한다. 사실이다. 그러나 누구나 읽고 싶어하는 책의 내용은 또 다르다. 그것이 성공담인지 실패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느냐가 중요하다. 나는 1000명의 원생을 거느린 목동 수학 학원의 원장을 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하루는 심각하게 공황장애 증상을 의논해 왔다. 최고의 대학을 나와 7개 관을 거느린 그 친구는 왜 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까? 돈도 벌만큼 벌어 시시때때로 가족들과 유럽 여행을 다녀오는 그 친구는 무엇이 그토록 힘들어 약의 힘을 빌리려고 했던 것일까? 장담컨대 나는 그런 이야기라면 요즘 세대가 귀를 기울여 줄 것이 확신한다. 그것은 실패담을 넘어 자신이 맞딱뜨릴 먼 미래의 모습일 수도, 혹은 지금의 모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꼰대란 나이 먹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이 안통하면 젊은 사람도 꼰대가 될 수 있다. 술 취한 사람들은 자기 얘기만 하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지혜로운 현자는 바로 들어주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당신이 책을 쓴다면 주변에서 내 말을 들어줄 젊은 친구 한 사람을 찾자. 너무 가까운 사람 보다는 한 다리 건너 소개받은 사람을 직접 만나 보자. 그리고 무슨 얘기를 듣고 싶은지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마케팅의 핵심도 타겟 설정과 세그먼트 아니던가. 미래의 당신의 독자가 될 사람이라면 분명 그들의 니즈를 당신이 먼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가능하다면 당신의 쓴 글의 한 꼭지를 건네 보자. 솔직한 피드백을 받아 보자. 책 한 권 쓴 것으로 만족하는 책이라면 내지 말자. 그건 자원 낭비다. 그러나 내가 이 세상에 왔다 감으로써 누군가 조금은 행복해지고 성공하길 바란다면 책을 쓰자. 그리고 현업에 있는 지금 쓰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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