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창업 센터에 들어온 회사들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약 40여 개의 업체를 며칠에 걸쳐 인터뷰한 후 그들을 소개하는 글을 써주는 일이 나의 미션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놀라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됐다. 나의 질문은 단순했다. 여러 경쟁사의 제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당신의 제품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해 세 가지로 답해보라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40명 중 이 세 가지를 답한 사람은 단 세 사람에 불과했다. 다른 분들에게 질문을 하니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게요. 우리 제품이 뭐가 좋을까요?"
거짓말 같지만 사실이다. 물론 나는 그 이유를 안다. 자신의 제품에 대한 믿음과 확신 때문이다. 이 제품을 만들기 시작할 때는 어마어마한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고민의 종류가 달라진다. 납기를 맞춰야 하고, 패키징을 완성해야 하고, 설명서의 오타를 수정해야 한다. 입점할 가게의 인테리어를 손봐야 하고, 온라인 쇼핑몰 담당자를 설득해야 하며, 오픈 이벤트로 진행할 웹페이지의 디자인을 봐줘야 한다. 얼마나 바쁜지 모른다. 그런 시간이 몇 달 흐르다 보면 처음 품었던 제품에 대한 확신, 그러니까 이 제품을 선택해야만 하는 이유도 함께 흐릿해진다.
글도 마찬가지다. 좋은 책 한 번 써보겠다고 가졌던 초심은 단 몇 주면 사라진다.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본다. 주변에 보여주니 너도 나도 고개를 갸우뚱 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목차 쓰기다. 책을 통해 정말 하고 싶은 얘기를 리스트로 나열해보라. 마치 죽기 전에 하고 싶은 100가지의 버킷리스트를 쓰듯이 목차를 적어보라. 그리고 그 목차에 맞는 글을 쓸 때마다 리스트에서 하나씩 지워가는 것이다. 그렇게 쓰다보면 알게 된다. 목차의 제목은 너무나 멋있었으나 정작 써보면 그게 내가 쓸 수 있는 글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있다. 쓰다 보면 떠오르는 기억 때문에 평범했던 글 하나가 풍성해지는 경우도 생긴다. 이것이 바로 글쓰기의 묘미다.
그렇다면 목차는 어떻게 써야 할까? 책 한 권은 보통 40여개 전후의 꼭지로 이뤄진다. 여기서 꼭지라 함은 목차의 최소 단위로 하나의 완성된 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일단 쓰고 싶은 글의 제목을 모두 써보라. 그 다음에 그 제목들을 주제에 따라 4,5개로 나눠보라. 비슷한 주제의 글들을 하나의 큰 주제로 모으는 것이다. 그 다음에 큰 주제 안에서 글의 매력도에 따라 재배치를 한다. 사람들은 첫 글을 보고 다음 글의 수준을 예상한다. 그러니 큰 주제 안에서 가장 잘 읽히는 글을 맨 위로 올려보라. 만약 각각의 글이 상관관계를 가진다면 그 순서에 따라 배치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한 가지 팁이 있다면 유행했던 영화나 소설, 대중 가요의 제목을 다양하게 살펴본다. 그 중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비슷한 제목을 만나면 변형해서 쓴다. 사람의 눈길을 끌기에도 좋고 내용을 함축하기에도 좋다. 어차피 노래도, 영화도 사람들의 고민을 담은 내용이기에 전혀 무리 없이 녹아드는 경우를 많이 본다.
목차는 책을 쓰기 위한 설계도이다. 이 설계도엔 당신이 정말 하고 싶은 말들이 들어가야 한다. 바로 이 책의 핵심적인 메시지가 되는 것이다. 물론 그 내용은 쓰면서 조금씩 달라지거나 없어질 수도 있다. 새로운 목차가 등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은 분명 그 설계도를 미리 완성한 후 본격적인 글쓰기에 들어가야 한다. 자칫하면 길을 잃고 헤매기 쉬운 미로 같은게 바로 글쓰기와 책쓰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말 하고 싶은 말들을 미리 목차로 정리해보라. 글이 막힐 때는 다른 목차부터 먼저 써보라. 중요한 것은 쇼호스트가 그런 것처럼 당신이 쓸 글의 핵심 메시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횡설수설하는 쇼호스트의 제품을 사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책을 들고 읽게 될 독자들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