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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47 소총과 브랜딩에 대하여...

1.


사람들은 영화 '오펜하이머'에 나오는 핵폭탄이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무기로 생각한다. 한 번이라면 그렇다. 그러나 정말 많은 사람을 죽인 무기는 따로 있다. 바로 미하일 칼라시니코프가 만든 AK-47 소총이다. 지금까지 대략 1억 정이 생산된 이 총은 최소한 1000만 명 이상의 사람을 죽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이 총은 가볍고 고장이 안 나기로 유명하다. AK-47의 컨셉은 정교한 총이 아니라 누구나 쏠 수 있는 간단하고 튼튼한 총이었다. 공교롭게도 서양의 총들을 아주 많이 참고했다. 자신의 개성을 죽이고 심플함에 목숨을 건 총이다. 6년에 걸쳐 4번의 소총 테스트에 도전한 끝에 얻어낸 성과다.


3.


그러나 이 총이 소련의 정식 제식 총으로 선정되기 전 강력한 경쟁자가 있었다. 바로 볼킨의 AB-47이 그것이다. 이 총은 정교함과 명중율에 있어서 AK-47을 앞서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정교해서 오히려 이물질이 들어가면 고장이 잦아 작동 불량이 됐다. 결국 모래에 넣고 얼리는 등의 극한의 테스트에서 승리한 AK-47최종 선정될 수 있었다.


4.


이 총이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의 소련의 정세도 한몫 했다. 스탈린이 애꿎은 장교들을 수백 만이나 숙청한 탓에 소련군에는 매뉴얼을 읽을 수 있는 군인이 소수였다고 한다. 그러니 정교하게 만들어진 AB-47보다는 누구나 한 시간만 교육받으면 구조의 이해와 수리까지 가능한 AK-47이 선택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5.


그러나 이렇게 쉽게 만들어진 탓에 AK 소총은 심지어 소년병의 손에까지 들려져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콩고 내전에서 반란군에 참여한 군인들 중 80%가 소년병이었다. 이들에게는 단돈 만 원이면 살 수 있었던 AK 소총이 들려졌다. 가볍고 조작이 간단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식으로 반군과 테러범의 손에 넘어간 총들은 수없이 많은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데 사용되었다.


6.


이 총을 보면 두 가지를 배울 수 있다. 그 하나는 어떤 제품이든 장인 정신에 입각한 정교함 보다는 누구나 배울 수 있는 대중성을 지향할 때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즉 공급자적 마인드가 아닌 소비자의 관점으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AK 소총을 만든 미하일은 사할린 출신의 촌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고집 센 다른 개발자들과 달리 총을 테스트 중인 병사들의 말을 철저히 새겨듣고 이를 반영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7.


그러나 이런 장점이 시장에선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의 씨앗이 된 점은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이건 '무기'이기 때문에 생긴 어쩔 수 없는 결과이니 개발자를 탓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천만 명이든 단 한 명이든 사람의 목숨은 소중한 것이니까. 그러나 자신이 만든 제품이 어떤 역사적 평가를 받을지에 대한 생각은 어쩌면 오래도록 사랑받는 명품으로 탄생으로도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8.


문득 내 책상에 놓여진 평화 스테플러가 생각이 난다. 전쟁 전 38선을 넘나들다 목숨을 잃을 뻔 했던 이 회사의 창업자는 이 기업의 가치를 '평화'로 정하고 회사 이름까지 'Peace'로 정했다. 시각 장애인을 위해 만든 시계 '브래들리'는 아프간 전쟁 중 시력을 잃은 참전 용사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고 한다.


9.


총 한 자루의 역사로도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이란 존재가 본능적으로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내가 만드는 아무리 소소한 제품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 의미와 역사를 담으려 애써보자.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자기 만족보다 소비자가 뭘 원하지를 알아채는 사람이 역사를 지배해왔다. 또한 이런 원리는 앞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쉽고 재미있게 글을 쓰려고 애쓰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p.s.


6.25 전쟁 당시 이 총은 이미 개발이 완료되어 있었다. 하지만 극비로 분류되는 바람에 소련은 중국에 이 총을 넘기지 않았고 그나마 국군은 모신나강이라는 단발총을 상대하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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