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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회사에도 브랜딩이 필요할까요? - 서문

마케팅과 관련된 오래된 이야기가 하나 있다. 어느 나라에 지독한 기근(불황)이 왔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오직 감자 뿐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땅 속에서 자란 감자(브랜딩)를 악마의 열매로 부르며 먹지 않았다. 설사 굶어죽을지라도 말이다. 그러자 왕은 다음과 같은 칙령을 내렸다. 감자는 오직 귀족(대기업)들만 먹어야 한다. 서민(스몰 브랜드)이 먹으면 사형이다. 그러자 사람들은 기를 쓰고 감자를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 나라는 무서운 기근을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브랜드란 말을 처음 접한 때는 2008년 경이었다. 그때만 해도 브랜드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관련된 책도 찾기 힘들었다. 이후 7년간 브랜드 전문지에서 이 생소하기 짝이 없는, 악마의 열매와도 같은 브랜드와 브랜딩(ing)을 온몸으로 배웠다. 밤을 새서 실눈이 터진 그 날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그때의 회사 대표는 이제야 일을 제대로 하기 시작했다는 듯 엷은 미소를 띄며 속옷을 선물해주었다. 그리고 다시 15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대기업 뿐 아니라 아주 작은 회사들도 브랜드를 입에 올린다. 마치 앞서 소개한 어느 나라의 불황 탈출기처럼 말이다.


나는 브랜드란 이 말을 내 발 아래까지 끌어내리고 싶었다. 귀족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닌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배우고 익히고 써먹을 수 있는 기술로 대중화하고 싶었다. 2014년 독립한 이후 내 관심은 오직 작은 회사를 위한 브랜딩이었다. 그래서 어설프게 배운 지식으로 아주 작은 식당, 병원, 가게, 학원을 비롯해 크고 작은 회사들을 만나 컨셉을 도출하고, 네이망을 하고, 전략을 수립하고, 관련된 브랜드북을 만드는 작업을 해왔다. 이제부터 소개할 브랜드들 역시 그런 과정을 거친 개인 혹은 회사들이다. 판촉회사, 상담원장, 전기차 충전기 회사, 치과 병원, 영어 학원이 그곳이다. 과연 이곳들은 어떻게 브랜드를 정의하고 이해하며 활용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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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판촉회사의 대표님은 스스로를 '판촉 예술가'라 부른다. 마트 깊숙한 어느 코너 한켠에서 시식을 하는 분들을 사람들은 '이모님'이라 부른다. 이런 이모들을 관리하는 회사의 대표님은 이런 현실을 이겨내고자 브랜딩을 공부했다. 그리고 이런 이모님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의 업에 대한 자존감과 자부심을 높이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뜩이나 온라인 마켓들의 활성화로 인해 오프라인에서 일하는 이모님들의 설 곳은 더 좁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 대표님은 이분들을 '판촉 예술가'로 양성해 더욱 더 전문화하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전기차 충전 부품을 공급하는 어느 회사의 대표님은 원래부터 사람을 좋아했다. 예능 PD가 되기 위해 대학 시절 숱한 사람들을 만났던 그의 오지랖은 이제 '연결력'이라는 핵심 역량이 되어 이 회사를 120억의 매출을 올리는 탄탄한 스타트업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세상은 이제 내연기관 자동차의 시대에서 전기 자동차의 시대로 자연스럽게 옮겨가고 있다. 길은 정해졌다. 다만 이러한 변화를 위한 시간을 얼마나 당기느냐가 업계의 관심사다. 마치 포드가 T 모델을 만들어 마차 시대의 종언을 고했듯이 말이다. 그런데 이 회사는 좋은 충전기를 만들고 파는 것을 넘어 브랜딩을 고민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전기차, 전기차와 전기차를 잇는 '연결'의 가치를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교대역 인근에 있는 어느 치과는 병원이름에서 아예 '치과'란 말을 빼버리고 싶다고 했다. 치과에 대해 사람들이 가진 고정관념 내지는 선입견이 너무도 강하다는 사실을 오래도록 경험해왔기 때문이다. 이 병원을 운영하는 부부 원장님은 치과를 마치 동네 마실의 수퍼처럼, 단골들이 즐비한 카페처럼 운영하고 싶어한다. 치과라는 본질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누구나 불안이나 염려 없이 가볍게 병원의 문턱을 넘기 바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이 택한 전략은 '스토리텔링'이었다. 누구라도 공감할 만한 따뜻한 자신들과 환자들의 이야기로 환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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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소개할 어느 영어 학원은 입시라는 거대한 벽을 넘어 살아있는 교육을 지향하고 있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한 작업은 '프렌들리 애니Friendly Anny'라는 나름의 확고한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아들의 오랜 방황이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영어 원서를 읽고 쓰고 배우고 토론하면서 공부의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 이 학원 원장님의 가장 큰 바람이다. 아울러 이 원장님은 아이들과 함께 달리기를 하다가 결국 마라톤 완주라는 작은 목표를 해마다 실천하고 있다. 수동적인 수업이 아닌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수업을 위한 이 원장님의 노력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경계성 장애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돕는 상담원의 원장님은 목사의 아내이다. 이사만 12번을 했다. 자신의 아이가 뇌종양으로 인해 수술을 받은 경험을 한 이 분의 꿈은 마음껏 공부하고 연구하고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러나 아들의 치료를 위해, 생계를 위해 자기 자신은 사라져버리는 고통을 경험했다. 이제 불혹을 넘어 지천명의 나이를 맞은 이 원장님의 고민은 '온전한 나'로 살아가는 것이다. 오랜 투병과 방황의 시기를 지나 한 사람의 브랜드로 이후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나는 그녀의 눈빛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일부 대기업만이 고민하던 브랜딩의 노하우와 솔루션을 아주 작은 기업들, 그리고 개인의 영역에까지 끌어내리고 싶었다. 나를 구한 구황 작물인 감자를 귀족이 아닌 서민들에게도 먹이고 싶었다. 그러나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비단 브랜드에 관한 지식만은 아니었다. 나 자신이 먼저 하나의 브랜드가 되는 것이 최우선 작업이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앞서 얘기한 다섯 곳의 브랜드를 소개하면서 가벼운 흥분을 느끼고 있다. 귀족에게만 감자를 허락한 참뜻을 숨긴 어느 나라의 총리처럼 기대하는 마음으로 시장을 바라보고 있다. 이 책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다. 더 많은 사람들이 브랜딩(감자)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해 불황(기근)을 넘어서는 것이다. 나는 이 다섯 개의 스몰 브랜드를 통해 이것이 가능함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바로 이들 브랜드의 생존과 성장을 위한 작은 분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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