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볼루션'은 전기차 충전 부품을 공급하는 회사이다. 처음에는 충전기를 수입해서 팔았다. 지난해 매출이 120억 정도, 업력은 6년 정도 된 회사다. 나는 이 회사의 초대를 받아 워크샵에 하루 종일 참여할 수 있었다. 말이 워크샵이지 촘촘히 짜여진 시간표가 무슨 세미나 같았다. 커뮤니티, 챗 지피티, 브랜딩을 포함해 지난 해의 성과를 확인하고 내년을 계획하는 시간까지 마치고 나니 7시가 가까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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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후에 진행된 '이볼루션 브랜딩'에 관한 발표를 맡았다. 아마도 여러분들은 궁금할 것이다. 전기차 충전 부품 공급사에 브랜딩이란 어떤 의미이고 왜 필요할까. 사실 나도 그랬다. 구성원 수 20명이 채 되지 않는 이 회사가 과연 어떤 브랜딩을 필요로 할지 궁금했다. 물론 사전 미팅이 있었으나 이 시간에 대한 확신까진 부족했다. 그러나 2시간의 워크샵으로 그런 오해와 불안은 완전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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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브랜드의 핵심가치는 한 마디로 '연결력'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전기차 충전기는 충전이라는 '연결'이 과정을 통해 동력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이 충전기를 잘 만들거나 혹은 경쟁력 있는 제품을 수입해서 팔면 그만이다. 문제는 이런 회사가 지금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은 정해진 운명이다. 다만 그 시기에 대한 설왕설래가 있을 뿐. 그렇다면 이볼루션은 어떤 브랜딩을 해야 할까? 나는 그 핵심 아이디어를 이 '연결connect'라는 단어에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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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는 전기차에 진심이다. 누구보다 이 시장에 먼저 뛰어들었다. 이후 휴대용 전기차 충전기를 온라인으로 판매하면서 업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가끔은 엉뚱한 행사를 하곤 한다. '전진사 어워드'는 전기차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뽑아 해마다 시상을 하는 행사이다. 전기차의 도입과 활성화에 진심인 사람들에게 상을 준다. 절대 수익이 날 수 없는 행사다. 그러나 이 회사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차지charge할 때만 (자리) 차지하기' 라는 캠페인도 벌인다. 시대의 변화에 맞는 전기차 사용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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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이 회사의 기능적인 '연결'의 의미는 사람과 자동차, 나아가 사람과 사람을 잇는 '가치'로 확장이 된다. 그런데 이런 브랜드가 비단 이 회사만은 아니다. 노티드란 브랜드의 뜻은 Knotted, 즉 매듭으로 엮는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들은 '고객과 공간을 엮고, 케이크와 커피를 엮고, 사람과 사람을 엮고, 여타 브랜드와 콜라보하는 것' 이라고 연결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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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노티드 매장에 가면 그 컨셉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예쁘고 맛있는 도넛(먹기)과 인스타그래머블한(꾸미기), 인테리어 공간(머물기)이 제공하는 생동감 넘치는 놀이터(쉬기), 다양한 굿즈와 반갑게 맞아주는 슈가베어(즐기기) 등의 서비스와 이벤트로 끊임없이 사람들을 줄 서게 만든다. 도넛 하나도 이렇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브랜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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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이런 '연결'의 의미를 말장난 정도로 생각할 분도 계실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 회사의 대표는 그 누구보다도 사람을 좋아한다. 사람과 사람의 연결을 즐긴다. 그래서 대학 시절 방송 출연을 통해 연예인들과의 관계를 만들었다. 선후배들 사이에선 누군가를 소개받고 싶으면 이 회사의 대표를 찾으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지금처럼 사업이 급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도 회사 대표의 '연결력' 덕분이었다. 굳이 영업이나 홍보라는 말을 쓰진 않겠다. 이 회사의 가치를 '연결'로 정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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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는 시대적 요구의 산물이다. 그러나 이 전기차를 사용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로 인해 요구되는 매너와 에티켓 등은 아직 기술적인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기차 충전으로 인한 다툼과 불편이 적지 않다. 아울러 전기차가 제공할 차박, 캠핑, 아웃도어 라이프스타일은 더 한층 진화할 것도 불을 보듯 자명하다. 그래서 이 회사는 '행복한 연결자'라는 컨셉으로 이 변화의 시대를 주도하고 가이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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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는 제품에 진심이다. 그러나 시대의 요구가 최고의 제품만으로는 부족한 세상이 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호떡을 잘 파는 사람은 '맛'에만 매달리지 않는다. 천 원짜리 호떡집을 찾아야 할 이유를 만든다. 스토리를 만든다. 때로는 유쾌하고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연예인이 찾아오는 에피소드일 수도 있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기부의 모습일 수도 있다. 이볼루션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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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브랜드가 타겟으로 삼아야 할 사람들은 오피니언 리더들이다. 오래지 않아 세상의 모든 자동차에는 AI가 탑재될 것이다. 길어진 주행거리와 안락함으로 차박이나 캠핑, 외박의 문화를 바꿀 것이다. 넓고 아늑해진 자동차 인테리어, 악세서리 시장도 커질 것이다. 이볼루션은 스노우피크처럼 단순한 캠핑 용품이 아닌 새로운 '전기차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그들의 슬로건도 다름아닌 'Happier EV Lif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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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는 영리한 회사이다. 제품을 고급화하고 라인업을 다양화하는 것만큼이나 브랜딩에 진심이다. 나는 몇 번의 대표 인터뷰와 워크샵을 통해 이 회사가 가진 '연결'의 가치에 새롭게 눈을 뜨게 되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전기차를 타는 사람들의 특징을 파악하고, 이러한 페르소나에 기초해 그들의 숨은, 디테일한 니즈를 찾아 제품과 서비스에 반영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전기차가 만들어낼 변화된 라이프스타일의 리더이자 가이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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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회사의 브랜딩 과정을 '12단계'로 정리해보려 한다. 스몰 브랜드가 어떻게 브랜딩에 성공할 수 있는지를 아주 세세하게 세상에 소개하고자 한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이 브랜드가 명확한 핵심가치를 가졌을 뿐 아니라 행복한 구성원이 행복한 결과를 만든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워크샵에 구성원들의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모습을 보며 난 깨달았다. 이 브랜드가 '행복한 연결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거란 믿음도 더욱 분명해졌다. 이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스몰 브랜드의 '브랜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