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CGV를 끼고 카페와 음식점이 즐비한 언덕길을 10여분 올라가면 웨딩홀 하나가 나온다. 넝쿨이 적당히 우거진 이 고풍스런 건물은, 그러나 60여석이 버거운 작은 웨딩홀은 2014년에 문을 연 하우스 웨딩홀이었다. 이곳은 1902년부터 시작된 영국의 첼시플라워쇼에서 한국인 최초로 실버메달을 받은 대표의 꽃실력으로 나름 유명했다. 그러나 경영에 어려움을 겪던 중 새로이 인수하기로 한 곳에서 2주 전에 돌연 계약을 포기해버렸다. 게다가 조 브랜든 대표가 새로이 이 어려운 처지의 웨딩홀 운영을 맡은 건 코로나가 들이닥치기 전이었다. 불과 2개월여 만에 어렵사리 첫 결혼식을 치룬 후 코로나가 온 나라를 강타했다. 조 대표가 느낀 절망감이 어느 정도였을지 가늠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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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수년 간 이어간 코로나가 이 작은 웨딩홀에 기회의 장을 열어젖힐지 예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코로나 시작후 서너 달이 지난 후 정부는 사람들의 모임에 관한 규정을 새로이 만들었다. 그것은 49인 이상은 한 장소에 모일 수 없다는, 수많은 웨딩홀 업자들에게는 재앙과 같은 집합 제한 발표였다. 그런데 조 대표는 오랜 고민 끝에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일단 조 대표는 윗층 웨딩홀과 지하 연회홀을 동시에 활용하기로 했다. 각각 49인씩 참여할 수 있도록 연회홀에서 결혼식을 생중계한 것이다. 결혼식 시작 전 안내를 통해 아래 연회석에서 편히 식사를 하면 결혼식에 참여할 수 있다고 안내를 했다. 그러자 나이 많은 어르신들부터 너나 할 것이 연회홀을 가득 메웠다. 윗층은 신랑 신부들의 지인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법을 지키며 공간을 활용하는 지혜로운 전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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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대표는 결혼식을 진행하는 MC들과 한 가지 약속을 했다. 그것은 신랑신부와 사전에 리허설 미팅을 하도록 한 것이다. 2주 전 신랑신부를 미리 만난 MC는 그들의 러브스토리를 꼼꼼히 메모해 결혼식장에서 활용했다. 결혼식 날 처음 만나 데면데면한 진행과는 차별화될 수밖에 없었다. 리허설 때 밀착 촬영을 이미 끝낸지라 사진 작가들이 좁은 결혼식장을 왔다갔다는 일도 피해갈 수 있었다. 일가 친척과 친구, 지인들이 자유롭게 스마트폰으로 신랑 신부를 찍을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생겼다. MC는 하객들이 미리 써둔 엽서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퀴즈 시간을 유도했다. 결혼식을 참석했다가 신랑 신부의 러브 스토리를 들은 후 선물까지 주어지는 스몰 웨딩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더구나 4시간 반에 걸친 여유로운 예식은 신부의 표정마저 밝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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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웨딩홀을 선택한 신랑신부는 상담과 결혼식에 관한 5개씩의 후기를 남기면 발렛 주차와 셔틀 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후기를 남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1년에 150쌍이 거쳐간 이 웨딩홀엔 무려 3000여 개의 후기가 남았다. 이 후기는 구글, 네이버는 스몰 웨딩 관련 카페들에 속속 올라갔고 바이럴을 일으켰다. 그 결과 2023년의 경우 한달 간 재개장으로 웨딩홀을 쉬었음에도 159건에 이르는 결혼식이 치러졌다. 2022년과 거의 같은 수치였다. 올해 1월 이 웨딩홀의 예식 예약건은 130건을 돌파했다. 작년 매출 20억 이상, 그러나 수익율은 40%를 넘어선다. 호주에서 오랫동안 비즈니스를 한 조 브랜든 대표의 사업 운영 전략이 만들어낸 놀라운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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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지 않는 시대다. 혹자는 수년 내에 기존 웨딩홀의 50%가 줄도산할거라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시대적인 변화와 코로나를 지나면서도 역성장을 한 이 웨딩홀의 이름은 '메리스 에이프럴'이다. 이 웨딩홀의 성공 이유는 간단하다. 요즘 세대는 틀에 짜여진 기존의 스드메와 결혼 방식을 선호하지 않는다. 리허설을 통해 함께 기획하고, 4시간 반에 이르는 긴 예식을 통해 충분히 축하와 감사를 나누는 스몰 웨딩을 점점 더 선호하고 있다. 지금의 예식 시장은 정확히 둘로 나뉜다. 확실한 럭셔리와 충분한 가성비, 이 두 갈래길에서 메리스 에이프럴은 후자를 택했다. 규모에 따른 강제적인 선택이긴 했으나 그 단점을 장점으로 특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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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 브랜드는 단순히 규모가 작고 매출이 작은 브랜드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규모의 단점을 차별화의 요소로 인식해 스마트한 전략을 실천할 줄 아는 브랜드들을 이야기한다. 거대한 공룡들이 멸종하던 시기에 살아남은 작은 동물들은 특징이 있다. 그 작은 몸집이 오히려 그 시대에는 장점이 되었다는 점이다. 불경기가 일상이 되었다. 올해는 더 어려울거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즈니스는 계속될 것이다. 문제는 얼마나 소비자를 이해하느냐에 달렸다. 규모의 경제가 아닌 개성 넘치는 브랜드의 선택은 도도한 시대의 흐름이다. 나는 이런 작은 브랜드의 역성장이 너무도 즐겁다. 스몰 브랜드만의 생존과 성장 방식을 학습하기에 더 없이 좋은 교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규모의 작음을, 매출의 작음을 핑계로 물러서지 말자. 살아남은 작은 브랜드들에게 그 비결을 배우자. 이 작은 웨딩홀이 그 길을 찾아낸 것처럼 우리만의 길을, 방법을 반드시 찾아내고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