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27살에 처음으로 공부방을 시작했다. 그즈음 첫째를 가져서 산후 조리를 하고 돌아왔는데 다시 둘째를 임신하게 되었다. 이렇게 연년생으로 아이를 가지게 되니 학부모들에게 미안해서 공부방을 더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만 두겠다고 어머님들께 말씀드렸더니 그 중 한 어머니가 수업 중에 저희 애들을 돌봐주시겠다는게 아닌가. 월수금은 수업을 하고 화목은 육아에 집중하라는 제안이자 부탁이었다. 심지어 어떤 아버님은 공부방 인테리어 무료로 해주기도 했다. 아마 그때 이 일을 그만 두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이제부터는 내가 받은 은혜를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갚아가겠다고 말이다.
프렌들리 애니의 시작
이 일을 하게 된 또 한 가지 이유는 아들의 방황 때문이었다. 너무나 힘든 나머지 그 내용들을 1년 넘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영어 원서 읽기에 관한 책을 먼저 쓰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경험이 책의 주제를 완전히 바꿔버렸다. 나와 같이 힘든 경험을 하고 있는 부모들에 대해서 책을 써볼 결심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문득 ‘아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우리 아들이 자기 의사를 분명하게 말해주지 않았다면, 나 역시 나만의 틀에 갖혀서 사고의 전환을 할 수 없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 내 삶에 대해 굉장히 틀에 박힌 생각을 하고 있었다. 행여라도 나만의 기준과 형식에서 벗어나면 큰 일이 벌어질 것처럼 걱정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아들을 보며 생각했다. 정말 힘들고 싫을 때면 ‘나 힘들어요’ 하고 얘기할 수 있는게 오히려 더 건강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나는 아들과 공부방 아이들에게 친절하고 친근한 이야기 친구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프렌들리 애니Friendly Anny’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따뜻하고 친절한 이야기 친구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나 자신을 알아야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알고 실천해야만 행복할 수 있지 않겠는가. 또한 나 자신이 먼저 행복해야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 수 있고 도움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조금씩 가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기 시작했다. 그 목표가 바로 마라톤과 출판이었다. 일단 마라톤 풀코스를 달려보기로 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고혈압이 있는데다 정말 건강이 안좋은 상태였다. 그런데 달리기를 해보니 내 인생에서 무언가를 해볼 수 있겠다는, 성장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 결과 지금은 1년에 한 번씩 마라톤 풀코스를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최근에 ‘사업의 철학’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말한다. 상품이나 서비스가 아닌 어떤 가치를 팔아야 할지를 먼저 정하라고 말이다. 내게는 영어를 제대로 읽고 배우는 능력을 키우고자 하는 학습자와 그 부모가 제 고객이었다. 나는 이들에게 단순한 영어 교육이 아닌 어떤 가치를 전달해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가장 먼저 아이들이 ‘살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요즘 아이들은 과도한 공부나 게임에 빠져서 정작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은 퇴화하고 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이 서로 상호작용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게 내가 전할 수 있는 가장 큰 가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을 돕는 방법 중 하나로 ‘미니멀리즘 러닝’이라는 수업 방식을 생각해냈다.
내 삶의 미션을 발견하다
요즘 아이들은 책을 가짜로 읽는 경우가 많다. 그 내용을 오롯이 흡수하지 못하고 읽는 시늉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제대로 읽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드리밍 리더스’라는 상호명도 새로 만들었다. 내가 학원을 통해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은 아이들이 제대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여러 장치들을 만들었다. 또한 아이들이 책을 통해 배운 것들이 현실로 이어지도록 돕는게 나의 비전이자 목표가 되었다.
이와 동시에 아들의 방황 같은 이유로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는 방황하는 친구들도 있고 은둔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런 아이들을 돕다 보니 청소년 연구소에 소속되어 강의와 멘토링도 할 수 있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내가 나쁜 엄마였던 이유는 체력도 그 중요한 한 가지 이유 중 하나였다. 힘에 부치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억지로 해내려다보니 아이들한테 짜증을 부리곤 했던 것이다. 그래서 시작한게 마라톤이었다. 또한 협력자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당시 내가 운영하는 밴드나 SNS를 보고 나를 찾아오는 분들이 조금씩 생겨났다.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나를 찾아와 원서 읽기를 전수해달라는 분도 있었다. 비슷한 일을 하는 원장님들과의 모임도 새롭게 만들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는 실제로 친절하고 따뜻한 이야기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프랜들리 애니’라는 나름의 정체성을 갖게 되면서 교육가로서의 목표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영어를 언어 그 자체로 습득하고 자신에게 더 많은 기회를 가져다주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거기에 더해 책을 읽고 생각을 하는 훈련을 돕고 싶었다. 그래야만 행복해질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 수 있게 된다는 확신을 생겼기 때문이다. 언어 습득은 물론 원서로 책읽기를 통해서 아이들이 생각하고 꿈꾸고 공감하면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내 삶의 새로운 미션으로 자리잡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몸을 움직이면 뇌까지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이런 재미를 알게 된 아이들은 달리고 나니 기분이 좋다고 고백해왔다. 어느 날 우연히 ‘몰입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읽었다. 책의 저자인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는 이렇게 말했다. 몰입은 어떤 보상 때문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달리기 역시 그 자체로 보상이 된다는 거였다. 하지만 저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아이들과 ‘빅워크’라는 앱을 함께 쓰기 시작했다. 이 앱은 자신이 걸은 걸음수만큼 기부를 할 수 있는 앱이다. 함께 기부도 하고 모임도 만들면서 주도적인 교육의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밴드를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영어 원서를 함께 읽고 낭독하는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다. 사실 책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지식 뿐만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선 마음의 치유까지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 중 성인 밴드는 벌써 4년 차에 접어들고 있다.
교사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이유
나는 지금까지 영어학원 일을 사업가가 아닌 교사의 마인드로 일해왔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금방 한계가 보였다. 어느 날 나는 교사가 아닌 사업가로 변모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리고 공부방을 ‘시스템화’ 하는데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우리 학원만의 매뉴얼을 개발했다. 또한 이를 지속적으로 실행하고 또 수정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 결과 운영 매뉴얼과 상담 매뉴얼을 만들 수 있었따. 교육 과정을 담은 커리큘럼과 상담을 위한 설문지, 시간표도 계속해서 업그레이드하고 있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노션은 정말 유용하고 쓰고 있는 중이다.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과의 공동 작업도 편할 뿐더러 특정 부모님에게 자녀의 공부 과정과 결과를 카카오톡으로 바로 전송할 수도 있다. 지금은 노션의 데이터베이스 기능을 활용해서 학생 개개인별로 학습에 관한 모든 과정을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는 중이다.
학원 전용 노트도 만들었다. 아이들은 이 노트에 글도 쓰고, 읽기와 낭독 연습도 할 수 있다. 그런데 1,000부를 찍었더니 2주 만에 모두 완판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다른 공부방이나 영어학원 원장님들이 너도 나도 달라고 하는게 아닌가. 하지만 공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아이들의 생각과 마음,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끔 하는게 가장 중요하다. 지금 이 시대가 굉장히 어저러운 세상 아닌가. 다양한 정보나 의견은 물론이고 학습 방법 역시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책과 노트, 이 두 가지의 미니멀한 도구를 가지고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지식이나 정보를 비판 없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노트에 자신의 생각과 느낌, 활동들을 적어보는 건 그래서 큰 도움이 된다.
물론 빠른 학습 효과를 기대하고 계신 학부모들은 실망감을 드러내곤 했다. 그러나 나는 확신이 있었다. 어떻게 했을 때 아이들이 제대로 배울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어떤 가치나 신념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깊이 생각해보고, 직접 써보고, 타인과 자신의 의견을 나누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요즘은 무언가에 몰입하는 것이 너무 힘든 시대이기 때문이다. 티비는 물론 유튜브나 SNS처럼 한 사람의 일상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너무나 많다. 게다가 요즘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에서의 경쟁 때문에 항상 불안 속에서 공부하고 있다. 정말 불안한 아이들은 풀고 있는 문제가 해결이 안되면 그 자리에서 울어버리기도 한다.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안정되어야 비로소 공부도 잘할 수 있다. 그건 어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리딩 코치의 시스템화
나는 독서가 독서로 끝나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독서는 그 무엇보다 현실의 삶과 끈끈하게 연결되어야만 한다. 책을 읽었으면 그 책에 나온 것들을 실제로 해봐야 한다. 영어 학원만 해도 그렇다. 시험 점수를 잘받기 위해 달려가는 세상에서 똑같은 방법으로 공부한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남들이 다 가는 방향이 아닌 살짝 옆으로 새는 길을 선택다. 일단 나부터가 조금 느리고, 어눌하고, 뭘 해도 서툰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이랑 함께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고, 노트에 써보는 학습 방식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중이다. 비록 영어로 된 책을 공부하지만 한국어 책 읽기랑 거의 다를 바가 없다. 지난 25년 간 이 일을 하면서 나는참 행복했던 것 같다. 아이들과 소통하고, 놀고, 함께 웃으면서 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아왔다. 그 자체로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앞으로도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정말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마음엔ㄴ 변함이 없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엄마들이다. 이들의 치유가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제작 중인 동화 힐링 수업 커리큘럼도 그런 마음으로 만들고 있다. 학원 교육은 아이들 뿐 아니라 엄마들과도 함께 가야 한다. 요즘은 예전과 달리 주변의 도움이나 공동 육아의 도움을 받기 힘들지 않은가. 그래서 많은 엄마들이 홀로 독박 육아를 하고 있다. 이런 엄마들이 함께 동화책을 읽으면서 감동적인 독서의 경험을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이 수업을 할 때마다 엄마들이 막 울곤 한다. 왜냐하면 책 속에서 자신과 아이들의 모습이 비춰지기 때문이다. 함께 책을 읽다보면 서로의 감정을 꺼내놓고 힐링의 경험을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해서 큰 돈을 벌지는 못한다. 하지만 나의 궁극적인 목표인 ‘리딩 코치의 시스템화’를 하는 것이다. 이 시스템을 통해서 어떤 선생님이 와도 아이들이 똑같은 수준의 수업을 할 수 있도록 돕는게 나의 최종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