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브랜드 전문지에 입사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였다. 회사 대표가 브랜드에 관한 책 100권을 읽고 브랜드에 관한 정의 100가지를 뽑아오라는 미션을 주었다. 오랫동안 보관했는데 지금은 찾을 길이 없다. 너무 아쉽다. 하지만 그렇게 정리된 문서를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백인백색이네. 그 내용을 읽고 브랜드를 알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2.
작년에는 1000개의 스몰 브랜드를 정리하는 작업을 했다. 온라인 상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동원해 1000개의 브랜드를 소개하고자 했다. 기사나 콘텐츠를 요약해 300여 개의 브랜드를 내 나름대로 정리하는 글을 썼다. 그러다 한 온라인 콘텐츠 회사로부터 중엄한 경고 메일을 받았다. 사실상의 내용 증명과 같았다. 내용의 맥락이 유사해서 화면 캡처까지 해두었다고 했다. 그 후로 이런 방식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연재를 접었다.
3.
지금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스몰 브랜드를 접근하고 있다. 일단 100여 분의 스브연 회원들을 모시고 '실시간 온라인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 이 분들은 3,4개월 후에 다시 모시고 같은 컨설팅을 진행할 예정이다. 1000개의 브랜드를 소개하는 것보다 하나의 브랜드가 가진 문제를 해결해주는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매주 진행하는데 벌써 7회차의 컨설팅을 마쳤다. 반응이 뜨겁다. 이분들을 돕기 위해 스몰 브랜드로 성공한 어벤저스 자문단을 꾸리고 있다.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닌 구체적인 노하우를 전해주기 위해서다.
4.
자문단의 면면 역시 스몰 브랜드에 최적화했다. 책 쓰고 이름 난 분 보다는 실제로 작은 브랜드를 키워 작은 성공을 이룬 분들을 모시고 있다. 걔중에는 2만원 짜리 향수로 와디즈 펀딩 5억을 달성한 분도 있다. 중국산 칫솔을 스마트 스토어에서 팔아 50만 개의 판매고를 올린 분도 있다. 제품 소싱과 유통에 특화된 분, 실제로 외식업 브랜드를 런칭해 성공시킨 분도 계시다. 이런 컨설팅은 가차 없으면서도 영양가가 있다. 호스트로 참여한 브랜드들은 뼈 때리는 조언을 들으면서도 다들 좋아하신다.
5.
이런 생각을 하루 아침에 한 것은 아니다. 지난 7년 간 나는 '작은 회사에도 브랜딩이 필요할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다. 100여 개 이상의 스몰 브랜드를 만났다. 그러면서 이들에게 필요한 도움이나 컨설팅은 달라야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이유는 자명하다. 돈도 시간도 인력도 없는 스몰 브랜드는 그에 맞는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만 이름 있고 비싼 전문가들을 찾아 간다.
6.
나는 지금까지 브랜드 컨설팅을 교육하는 여러 회사의 유경험자들을 만나왔다. 그들이 어떤 교육을 받고 무슨 활동을 하는지도 비교적 자세히 알고 있다. 커리큘럼과 교안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교육들을 보면 과연 작은 가게나 카페, 병원이나 학원 운영에 실제로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을 여러 번 품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교육의 유경험자를 많이 만나면서 이런 고민은 더욱 구체화되었다. 애석하게도 좋은 학교, 좋은 회사를 나온 분들은 스몰 브랜드의 현장을 모른다. 회사의 조직과 규모, 시장 환경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7.
지난 주에는 서초동 골목 깊숙한 곳에서 디저트 카페를 하는 대표님이 호스트로 참석했다. 그 시간을 함께 한 자문단 소속 중 한 대표님의 질문은 단순했다. 왜 이 사업을 시작했는가, 매일의 매출을 액셀로 정리하고 있는가, SEO를 하고 있는가, 검색 키워드가 적당하고 생각하는가, 브랜드 명과 제품 명이 따로 노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 이런 디테일한 질문에 호스트 대표님은 당황하면서도 속이 후련하다고 했다. 7년 간 카페를 운영하면서도 한 번도 이런 질문을 받아보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이게 작은 브랜드 대표님들의 현실이고 또 한계라고 생각한다.
8.
실시간 컨설팅은 현재 15차까지 예약이 되어 있다. 그 내용은 동영상으로, 녹취로, 내가 정리한 보고서로 꾸준히 기록되고 있다. 때가 되면 나는 이 내용을 PDF 리포트나 책으로 판매하려고 한다. 기자들이 겉핥기로 쓴 내용이 아닌, 좋은 얘기만 포장된 책이 아닌, 아주 디테일한 현장의 문제와 꼼꼼한 해법을 매주 기록해 콘텐츠로 만들 생각이다. 컨설팅을 유료화해 자문단의 참여를 독려할 생각이다. 그리고 공간을 만들어 이들이 직접 만나 치열한 토론을 통해 해법을 만들어갈 생각이다. 그리고 나는 끊임없이 기록하고 축적해갈 생각이다.
9.
작은 회사에도 브랜드가 필요한지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 매우 간절히 필요하다. 앞서 소개한 디저트 가게 대표님은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자문단 대표님은 그보다 앞서 매일의 매출을 기록하는 아주 작은 실천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그냥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는 이 시대의 불황을 뚫고 갈 길이 없다. 세상에는 디저트 가게가 너무도 많다. 그래서 약과를 재해석한 '골든피스' 같은 브랜드가 필요하다. 그렇게 튀어야 지드래곤이 이 브랜드를 좋아하는 작은 기적도 일어나지 않겠는가.
10.
브랜드 전문지를 할 때도 에디터들은 항상 폼 나는 브랜드를 취재하기 원했다. 제품도 예쁘고 대표들의 이력도 화려한 브랜드를 취재하고 싶어 했다. 물론 그런 콘텐츠도 필요하다. 그러나 작은 브랜드에 필요한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억의 빛을 져가면서, 한달에 몇 백의 대출 이자를 갚으며 '생존'이 다급한 스몰 브랜드들에는 그들만의 솔루션이 필요하다. 나는 바로 옆에 있는 작은 브랜드들의 대표님들부터 일으켜 세우려 한다. 그것이 7년 간 고민한 나의 해법이다. 그래서 나는 앞서 얘기한 질문을 바꾸려 한다. 작은 회사에도 브랜드가 필요할까요, 가 아니다. 작은 브랜드에는 어떤 마케팅 솔루션이 필요할까요,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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