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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처럼 쓰는 법

예전같진 않지만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나 역시 글이 써지지 않을 때면 스티븐 킹과 하루키의 작품들을 읽곤 했다. 그러면 왠지 마중물을 길어올리는 것처럼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곤 했다. 그러나 그 이유를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 '하루키는 이렇게 쓴다'라는 책을 읽으며 그 중 한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열 시에 출근해서 네 시에 퇴근했다. 토요일에는 셋이서 근처의 디스코텍에 가서 J&B를 마시면서 산타나를 흉내낸 밴드의 연주에 맞춰 춤을 추었다. 수입도 나쁘지 않았다. 회사의 수입 가운데서 사무실 임대료와 약간의 경비, 여직원과 아르바이트생의 급여, 세금을 제외한 나머지를 십 등분해서 하나는 회사 자금으로 저금해두고, 다섯은 그가 갖고, 넷은 내가 가졌다. 원시적인 방법이긴 했지만, 책상 위에 현금을 늘어놓고서 나누는 일은 정말 즐거운 작업이었다.”


하루키는 이렇게 쓴다. 일상의 작은 일을 아주 구체적으로 쓴다. 이 뿐 아니다. 하루키는 숫자나 연도, 나이도 아주 구체적으로 쓴다.


"그 여름 내내 나와 쥐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이 25미터의 수영장을 가득 채울 만큼 맥주를 마셨고, 제이스 바의 바닥에 5센티미터는 가득 쌓일 만큼 땅콩 껍질을 버렸다. 그때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울 정도로 지겨운 여름이었다."


"1969년 봄, 우리는 이처럼 스무 살이었다. 새 가죽 구두를 신고, 새 강의 요강을 품에 안고, 머리에 새 뇌수를 채워 넣은 신입생들 때문에 휴게실은 발 들여놓을 틈도 없었다. 우리 옆에서는 시종 누군가가 누군가와 부딪히고는 서로 투덜거리거나 서로 사과했다."


그렇다면 이런 그의 글쓰기가 가진 '구체성'은 어떤 매력으로 돌아오는 것일까. 일단 글에 힘이 실린다. '어느 날'일이라고 시작하는 글보다 '2002년 7월 14일 오후'로 시작하는 글이 훨씬 강력하다. 아울러 이런 글은 우리 머릿속에 구체적인 장면을 연상케 한다. 글에 훨씬 쉽게 몰입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글을 쓰려면 발품을 팔아야 한다. 메모를 해두어야 한다. 막연하고 모호한 기억을 시작하는 글보다 쓰기 어렵다. 그러나 독자들의 시선을 빼앗고 몰입으로 이끄는데는 이만한 스킬이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페친 한 분이 다음과 같은 글을 쓰고 있었다. '대폭 할인' '반값 할인'이라고 쓰지 말라고. '30,000원 할인' '40% OFF' '2장 사면 1장이 무료' 이렇게 쓰는게 맞다고. 우연의 일치지만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소설가의 글이든 마케터의 글이든 한결같은 원칙은 하나다. 독자와 소비자들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을 것. 그 중 하나가 바로 '구체적으로 쓰는 것'이다. 앞으로 나도 이렇게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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