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식당 홀 매니저의 고군분투 운영 이야기 #08.
1.
저녁 매출 50만 넘어도 좋겠다던 빡빡이 셰프가 막상 손님이 몰리니 진상을 부립니다. 매출이 적으면 적은대로 많으면 많은대로 주방장의 곤조는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절대 해서는 안되는 배달 취소도 하고 나니 하루가 피곤합니다. 손님을 케어해야 하는데 설거지 알바 구해달라고 곤조 부리는 빡빡이 셰프 달래느라 에너지가 고갈됩니다. 견디다 못한 와이프가 대표에게 딜을 했습니다. 저녁 설거지 이모를 부르든 빡빡이 셰프 월급을 올려줘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설거지 이모를 부르면 월 80, 셰프 월급은4,50정도만 올려줘도 됩니다. 문제는 이 결정을 해야 할 대표가 차일 피일 결정을 미룬다는 거지요. 그 스트레스를 홀 매니저인 와이프가 고스란히 떠안았습니다.
2.
그 와중에 빡빡이 셰프가 가장 밀고 싶어하는 뼈대해물전골 메뉴가 또 팔렸습니다. 한참 주문이 밀려 셰프가 빡친 와중에 중국인이 들어와 뼈대해물전골을 주문한 겁니다. 어쩌다 한 번씩 중국인들이 와서 뼈대해물전골을 문의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와이프는 대표에게 영어와 중국어로 된 메뉴판을 만들자고 건의했습니다. 물론 일하기 싫어하는 대표는 대답만 하고 메뉴를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메뉴판 만들기는 포기한 와이프는 알파문구에 가서 형광용지를 사고, 파파고를 돌려 간자체로 '뼈대해물전골'을 적어서 내걸었습니다.
3.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집 식당 아저씨가 오피스 상권에 왜 메뉴를 한자로 적었냐며 비웃습니다. 그런데 웬걸 그날로 뼈대전골이 팔리는 겁니다. 근처 호텔을 찾은 중국인들이 들어와서 먹고는 엄지척을 날립니다. 중국인 손님은 손도 커서 1인 1메뉴는 기본, 매출에 지대한 공헌을 하는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파파고와 손발로 의사소통을 하던 와중에 뼈 버리는 그릇이 뭔지 물어봅니다. 와이프가 서툰 영어로 'bone trasher'라고 설명하니 두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가까스로 설명을 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는 손님들이 재밌고 고맙습니다.
4.
와이프는 손님이 적은 저녁 시간대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매장의 주 고객층이 3, 40대 남자손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매장의 타겟층을 3,40대 남자층으로 해야 된다는 걸 안 순간, 아직 쌀쌀하던 3월이 어느 날 가게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그리고 유행하는 걸그룹들의 노래를 볼륨을 최대로 해서 틀기 시작했습니다. 근처 어떤 가게도 이렇게 가게 문을 연 곳은 없습니다.
5.
그런데 신기하게도 손님들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오피스 상권이고 3,40대 남자 손님들을 타겟으로 한 전략이 먹혀든 겁니다. 아울러 매운 메뉴를 시킨 손님들에게는 요구르트를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음료를 주고 싶지만 단가가 너무 높습니다. 하지만 요구르트는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부담이 덜해서 좋습니다. 와이츠가 타겟으로 삼은 손님은 요구르트에 대한 추억도 있을 겁니다. 이런 소소한 서비스에 소리없이 단골이 하나 둘 늘어가는게 느껴집니다.
6.
사실 와이프가 지난 주엔 몸살에 시달렸습니다. 그런데 정말 힘든 건 식당일이 아니라 사람 다루는 일이라고 하네요. 지금의 대표는 이 식당에 지분이 가장 적지만 명목상 서류상의 모든 책임을 떠안은 듯 보입니다. 그러니 식당을 그만두면 몰려올 빚잔치가 두려워서라도 억지로 운영하고 있는 중인 듯 짐작됩니다. 신도시의 멀쩡한 식당인 듯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여간 문제가 많은게 아닙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식당들이 오늘도 속앓이를 하고 있을까요. 그런데 그 와중에 와이프가 손대는 아이템마다 잘되는 건가요. 이렇게 순두부 가게의 바쁜 하루가 숨가쁘게 넘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