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하면서 비로소 알게 된 몇 가지 것들

1.


나는 달리기를 잘 못했다. 정말 못했다. 학창 시절을 통틀어 딱 한 번 달리기로 3등 안에 든 적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구구단 달리기였다. 100미터 달리기도 1000미터도 못하기는 매 한가지였다. 그런 내가 나이 50이 넘어 하루 걸러 하루를 달리고 있다. 어제는 난생 처음으로 마라톤 대회에 나가 7km를 완주했다. 두어 번 걷긴 했지만 그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2.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마라톤, 수영, 골프, 당구, 자전거 등을 비롯해 낚시, 오토바이와 같은 취미의 숫자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그런 친구가 어느 날 '런데이'라는 앱을 소개해주었다. 하루 1분 달리기로 시작해 30분을 달리는 초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리고 두 달 만에 50분 달리기에 성공했다. 비록 7km는 8분 페이스로 달릴 만큼 거의 걷기 수준의 속도지만 만족한다. 왜냐하면 나는 평생 달릴 거니까.


3.


그렇다고 해서 달리기가 마냥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나는 주로 저녁 무렵에 뛰는데 달릴 때마다 컨디션이 매번 다른 걸 느낀다. 어느 날은 40분을 달리고도 체력이 남는 날이 있는 반면 어느 날은 1km를 뛰고도 걷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아직 요령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그때마다 한 걸음 한 걸음의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때마다 달리기는 인생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든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견뎌내면 또 하나의 문이 열리는 그런 경험을 자주 하기 때문이다.


4.


15년 가까운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는 길고 긴 터널 속을 걸었다. 조직 생활이 내게 안맞는다는 사실은 직장을 관두고 혼자 일하기 시작했던 40대 중반이 되어서야 겨우 깨달았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비롯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느긋한 하루를 보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아이들과 한창 놀아주어야 했던 그 시절 나는 월요일 출근을 걱정하며 전전긍긍하는 삶을 살았다. 지금도 그 때의 아이들에게 얼마나 미안하고 또 미안한지 모르겠다.


5.


이렇듯 인생은 경험해야만 아는 것들로 가득하다. 회사 밖은 지옥이라지만 나는 조직을 나와서 혼자 일하며 '업의 즐거움'을 깨닫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건 돈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달리기도 그렇다. 나는 원래 달리가기 안맞아, 하며 50년을 피해다니다 결국 달리기 시작했고 몸과 마음이 달라졌다. 자신감을 찾았다. 걸어다니는 사람들 속을 달리다보면 묘한 우월감이 생긴다. 저들보다 조금은 더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는 아주 작은 자부심 말이다.


6.


물론 이 자부심은 콩알만큼 작아서 민폐는 끼치지 않는다. 내 마음 속 소리일 뿐이다. 오히려 나의 이 작은 변화에 주변 사람들이 열광한다. 인생 첫 마라톤을 마치고 나니 페이스북엔 열띤 응원의 댓글들이 줄줄이 달렸다. 보통의 글은 좋아요로 마무리되지만 이번 글은 달랐다. 고작 7km를 달렸을 뿐인데 왜들 이렇게 호들갑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누가 보면 풀코스라도 뛴 줄 알 것 같아 달린 거리와 시간 기록을 명시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나 때문에 새롭게 달리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7.


스몰 스텝은 마치 스노우볼처럼 나와 주변 사람들에게 뜻하지 않은 변화를 불러오곤 한다. 어느 날 1분을 달리기 시작한 그날부터 7km를 달린 이 날까지 고작 두 달이 흘렀을 뿐이다. 하지만 이 작은 시작이 나와 주변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은 결코 작지 않았다. 토요일 아침 9시에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은 불금을 어떻게 보냈을까. 적어도 몸에 해로운 것들로 가득한 시간을 보내진 않았을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수백, 수천명이 모여 만들어내는 에너지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세상의 선남선녀들인 여기에 다 모였구나 싶었다.


8.


그러니 삶의 힘든 구간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일단 나를 믿고 1분만 달려보자. '런데이' 같은 앱의 도움을 받는 것을 강추한다. 이 앱이 제공하는 보이스 코칭은 쉬지 않는 수다로 달리기의 지루함을 달래준다. 너무 쉬워서 웃음이 나오는 한 달을 넘어서면 어느 새 5분, 10분, 30분을 달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대견해할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제서야 '살아있음'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무언가를 하고 싶은 '의욕'이 스믈 스믈 올라오는 경험을 할 것이다. 나는 올 가을에 10km를 달릴 것이다. 내년에는 하프 마라톤에 도전할 것이다. 그리고 죽기 전에 풀 코스 완주를 기어이 해내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것임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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