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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기쁨 #01. - 내가 쓴 글이 곧 나다

“약자는 달리 약자가 아니다. 자기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갖지 못할 때 누구나 약자다” - 은유, 메멘토


내가 고 3때였다. 그 날은 비가 왔고, 대단히 깐깐했던 것으로 기억하는 국어 선생님이 느닷없이 시를 쓰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무심코 한 편의 시를 썼는데 교실이 발칵 뒤집어졌다. 내가 쓴 시를 본 선생님은 고등학생이 쓸 수 없는 글이라며 전에 나를 추켜 세웠다. 공부는 물론 그 어떤 분야에서도 평범하기 그지없던 내가 특별해지는 순간이 그렇게 갑자기 찾아왔다. 그렇다면 나는 그날 시인이 되기로 결심했을까?


얼마 후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교내 시화전이 열렸다. 하지만 내 시는 결국 뽑히지 못했다. 아마도 갑작으스런 관심과 인정으로 인한 부담이 작용한 탓이었으리라. 그런데 시화전 심사를 했던 다른 선생님이 나를 뒤에 세우고 걸어가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먼저 사람이 되라' 그 말 한 마디가 굵고 짧았던 내 인생의 작은 황금기를 끝내주었다. 나는 국문과나 문창과를 지망하는 대신 무역학과를 지망했다. 적어도 글로 밥벌어 먹고 살겠다는 꿈은 그날, 그 해의 조그만 소동으로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내가 쓴 글이 곧 나다. 부족해(보여)도 지금 자기 모습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고 인정한다는 점에서, 실패하면서 조금씩 나아진다는 점에서 나는 글쓰기가 좋다. 쓰면서 실망하고 그래도 다시 쓰는 그 부단한 과정은 사는 것과 꼭 닮았다."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 작가 은유 선생님도 비슷한 말을 했다. 좋은 삶을 살아낸 사람이 좋은 글을 쓸 수 있기 마련이다. 좋은 삶을 사는 것에 비하면 좋은 글을 쓰는 것은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깡마른 까까머리 평범한 고등학생으로부터 대략 3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나는 돌고 돌아 글 쓰는 일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직업은 브랜드 컨설턴트지만 실제 하는 일은 대부분 글과 관련된 것들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되물어 본다. 나는 인간이 되었는가. 아니, 그보다 나는 좋은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글을 쓸 뿐 아니라 글 쓰는 자세와 방법을 가르치는 일을 동시에 하고 있다. 그리고 어느 새 그런 일을 즐기게 되었다. 최근에는 90일을 목표로 글쓰기와 관련된 유튜브 생방송을 매일 새벽에 진행하고 있다. 남들은 대단하다 말하지만 솔직히 하는 이 일이 너무 즐겁고 재밌다. 70일 차를 접어들며 체력이 따르지 않아 이틀을 쉬었지만 여전히 이렇게 배우고 익힌 것들을 남들에게 전하는 일이 보람되고 즐겁다. 그렇게 700여 권에 달하는 글쓰기 책들을 섭렵하며 글쓰기에 대한 내 생각과 노하우를 정리할 수도 있었다. 그 내용은 약 25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 한 권이 되었다.


좋은 삶이란 어떤 삶인가. 그것은 결국 '진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 아닐까. 그렇다면 진짜 나란 누구일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다 다르게 태어나고, 그 다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자신의 삶을 끌어갈 동력을 얻기 때문이다. 운동을 좋아하는 내 친구는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날마다 운동을 한다. 대기업 상무인 친구는 암 투병 중에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감당하고 있다. 사업가인 친구는 90% 할인된 옷이 아니면 사지 않는다. 30년 이상 된 친구들이지만 어찌 그리 다른 모습을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이 50이 되면 알게 된다. 각자 좋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이란 사실을 말이다.


나는 오늘 아침에도 글을 썼고, 저녁 6시 55분을 가리키는 지금도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그 진짜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나는 나를 증명하기 위해 글을 쓴다. 내가 가진 재능과 역량으로 누군가를 돕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이다. 하지만 글쓰기의 궁극적인 목적은 나를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서다. 내가 2024년 6월의 어느 날을 살아냈다고 웅변하는 일이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은유 작가의 말대로 내가 쓴 글이 곧 나여야 한다. 내 삶의 수많은 경험들을 통해서 배우고 익히고 깨달은 것들을 세상에 드러내보여야 한다. 운 좋게도 나는 글쓰기의 재주를 타고 났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묵묵히 글을 쓴다.


그리고 나는 이 깨달음을 세상에 전하고 싶다. 모두는 아니겠지만 그 누군가에게 글쓰기는 좋은 삶을 의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엄청나고 대단한 필력을 가진 사람들이 글을 쓰는 시대는 지났다. 내가 아주 조그만 글쓰기의 재능에 우쭐하지 않고 지난한 30년의 삶을 돌아 돌아 살아온 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좋은 삶을 살기 위해 애쓰지도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좋은 글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은유 작가는 책에서 이런 말도 했다. 


"세계 일주를 한다고 해서, 더 다양한 종족과 관계하고 더 낯선 이방인과 접속한다고 해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저절로’ 깊어지는 건 아니다. 무엇을 경험하느냐가 아니라 경험한 것을 통해 무엇을 느끼느냐이다."


나는 글쓰기란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를 더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을 이해하는 방법이 꼭 글쓰기를 통해서만 가능한 거이 아니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친구처럼 달리면서도, 친구처럼 사업을 하면서도, 친구처럼 조직의 리더가 되어서도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똑같은 경험을 하면서도 전혀 다른 것을 배우고 느끼는 것이 인간이다. 나는 글을 통해서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고 싶다. 그래서 최근엔 영어 공부도 새롭게 시작했다. 더 넓은 세상과 조우하기 위해서다.


나는 좋은 글을 쓰고 싶다. 좋은 삶을 살고 싶다. 좋은 글쓰기 노하우를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그들이 더 좋은 삶을 살게 도와주고 싶다. 그래서 언젠가 내 삶을 설명할 수 있는 나만의 언어를 가지고 싶다. 적어도 내 언어의 세계에선 약자가 아닌 강자로 살고 싶다. 그리고 누군가의 삶이 더욱 단단해지도록 돕는 삶을 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글 잘 쓰는 방법을 궁리한다. 더 잘 가르치기 위해 글을 쓴다. 나와 그들 모두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다. 그래서 누군가 달릴 때, 누군가 사업을 할 때, 누군가 영어로 세상과 소통할 때 나는 글을 쓴다. 나도 그들처럼, 그들도 나처럼 좋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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