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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기쁨 #02. - 사소하고, 또 아주 사소한 것들

1.


와이프는 어느 순두부를 파는 식당의 홀 매니저로 일한다. 오늘은 월요일, 와이프에게서 카톡이 왔다. 오늘 출근하기로 한 보조 셰프가 8시 46분에 문자로 출근을 못하겠다고 통보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식당은 난리가 났다. 평소 일하던 수연 언니가 아닌 점덕 언니가 셰프랑 일하는 바람에 둘이 또 손발이 안 맞아서 난리가 났다고 한다. 그 와중에 친구는 카톡으로 내게 보낼 선물의 사진을 보여줬다. 이번에는 물병이다. 그가 보내는 선물의 대부분은 달리기에 관한 것들이다. 월요일 하루가 이렇게 소소한 일들로 카똑 카똑거리며 지나가고 있다.


2.


그래도 남들보다는 밥벌이에 가까운 글들을 써오며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글쓰기 초보일 수록 거창하고 대단한 문장과 주제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글은 마치 지구를 구하거나 나라를 바꿀 것 같은 비장미로 넘친다. 그렇게 거창한 글들을 쓰려고 하다보니 당연히 시작을 못한다. 그러나 그들보다 오래 글을 써온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사소한 일들을 좋아한다. 웹툰을 드라마화한 '살인자 ㅇ난감'은 편의점을 찾은 어느 인부들을 만난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들을 향한 디테일한 묘사가 이후 사건의 핵심적인 복선이 되어 흥미를 돋운다.


3.


그렇다면 어떻게 사소한 일상들이 글감이 될까. 물론 있었던 일을 그대로 옮겨 쓰기만 하면 '일기'가 된다. 일기는 스스로 기록하는 글들이다. 독자를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에 온전한 글로 보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단순한 일기를 하나의 완성된 글로 만들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그 사건들에서 의미를 발견하거나 의미를 찾아야 한다. 굳이 그 소소한 사건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해야할 이유를 찾아야 한다. 마치 브랜드가 제품과 서비스에 의미가 더해지면서 가치가 올라가는 것처럼 말이다.


4.


예를 들어 오늘 와이프가 일하는 식당에서 일하는 작은 소동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왜 와이프는 8시 46분에 문자로 불출근을 통보한 보조 셰프 얘기를 내게 했을까.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약속'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약속이 그 어느 곳보다 빈번하게 지켜지지 않는 곳이 식당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직원들을 출퇴근을 잘 관리하는 식당이 장사가 잘 되고 오래 간다. 이것은 곧 리더십과 경영의 노하우란 주제로 이어진다. 이렇듯 소소한 사건 하나가 완성된 글감으로 변신할 수 있는 것이다.


5.


그렇다면 친구가 내게 선물한 물통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이 친구는 내가 아는 한 어떤 사람보다도 운동을 좋아하는 인간이다. 나를 포함한 다른 친구들은 '중독'을 이야기하지만 그 자신은 한사코 아니라고 우긴다. 하지만 잠들기 전 트레드밀에서 30km를 달리고 땀을 5kg이나 쏟는 사람이 과연 지구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 친구가 왜 그토록 운동에 매달리는지 궁금해지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가 자라온 환경과 살아온 배경에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 친구가 내게 보내온 물통 하나가 이렇게 하나의 길고긴 이야기의 발화점이 되는 것이다.


6.


나는 역시와 밀리터리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러다보니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소총인 AK-47에 대해서도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 소총을 개발한 사람은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라는 구 소련 사람이다. 그는 어린 시절 권총 한 자루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데, 평소 기계를 좋아하던 덕분에 총의 원리를 온전히 독학으로 깨우치게 된다. 그리고 이 경험 때문에 18세에 철도공으로 일하게 되고, 결국 재능을 인정받아 무기 설계국으로 옮겨가게 된다. 이것이 전 세계에서 1억 정 이상 팔린 악마의 무기로 불리는 AK-47의 탄생의 계기가 되었다. 어떤 위대한 이야기도 그 시작을 따라가다보면 사소한 경우가 대부분임을 잊어선 안된다.


7.


그러니 내가 오늘 만난 '소소한' 이야기들에 의미를 담아보자. 여기서 의미를 담는다는 것은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직장인이라면 오늘 그 상사는 내게 왜 그랬을까? 라고 물어보면 된다. 오늘도 사고를 치고 들어온 자녀의 이야기도 얼마든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글로 써내려갈 수 있다. 세상을 바꾼 대단한 책들도 많은 경우 그 전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나눈 수다에서 시작된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어깨에 힘을 빼는 대신 눈을 부라리며 오늘의 소소한 일들에 초점을 맞춰보자. 의미를 담아보자. 우리가 성경을 쓸 것이 아니라면 이런 시작으로도 충분히 나의 글을, 나의 책을 시작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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