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0일 간 달리다보니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잘 달리기 위해선 '나의 속도'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달리기 속도는 1km를 몇 분만에 뛰는가로 가늠한다. 이걸 '페이스'라고 한다. 나는 8분대로 뛰면 5km를 크게 힘들지 않게 뛸 수 있다. 7분대로 뛰려면 조금 빨리 뛰어야 한다. 이때의 케이던스(1분 동안 발이 땅에 닿는 횟수)는 180 정도다. 반면 9분대로 뛰면 1시간 넘게 10km 정도를 뛸 수 있다. 정리하자면 7분대로 뛰면 조금 힘들게 5km를 달릴 수 있다. 8분대로 달리면 조금 편하게, 9분대로 달리면 여유롭게 10km 정도를 달릴 수 있다.
2.
많은 사람들이 '나답게' 살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나도 오랫동안 붙들고 온 주제지만 나답게 산다는 건 말처럼 그렇게 쉬운게 아니다. 무엇보다 나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은 이런 앎에 무심하다. 그렇다면 나를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철학이나 가치관 같은 거창한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이건 경험하 않으면 모른다. 우리 교육이 아쉬운 것은 시험에 나오는 것만 배운다는 것이다. 그러나 앎의 세계는 얼마나 넓고 광활한 것이ㅏㄷ.
3.
예를 들어 나는 며칠 전 어느 와인 모임엘 다녀왔다. 그날은 화이트 와인만 6종류를 마셨다. 그리고 프랑스산 와인의 지리적 배경과 역사에 대해 배웠다. 그리고 프랑스 지도가 사실상 와인 지도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상파뉴(샴페인), 꼬냑, 보르도... 그제서야 왜 그렇게 프랑스산 와인이 유명한지 알게 됐다. 그리고 많은 와인이 수도원의 신부님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 그리고 포도 농사가 망해서 만들어진 꼬냑, 전쟁 때문에 먼 길을 돌아 수입해왔던 포르트 와인의 이야기들도 알게 됐다. 그리고 그렇게 알고 나서 마시는 와인은 그 맛이 달랐다. 소비뇽의 과일향을 어떻게 마셔보지 않고 남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4.
세상은 교과서나 수능시험이 가둬놓은 앎의 세계보다 훨씬 넓다. 그리고 그 앎은 우리를 '설레게' 한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내일 아침이 기다려지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기다림의 대상은 나와 세상을 알아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나를 안다는 것은 '세상 속의 나'를 알아간다는 것이다. 가장 나다운 삶이란 결국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타인과 갈등하고 화해하고 공존하는 과정을 통해서 나다운 삶을 지켜가려면 나와 세상 모두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앎은 세상에 나를 던져 부딪히고 경험하는 과정을 통해서 완성되는 것이다.
5.
의도치 않게 복잡해졌다. 좀 더 쉽게 말해보자. 나다운 삶이란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경험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것이다. 내가 와인을 좋아할지 싫어할지 책으로 배울 수 없다. 직접 마셔봐야 한다. 내가 경험한 달리기가, 강연이, 글쓰기가, 브랜드가 그랬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삶의 지혜를 조금씩 얻게 된다. 앞서 얘기한 달리기를 생각해보라. 10km를 직접 달려보지 않으면 적절한 나의 속도를 알지 못한다. 만일 나의 속도를 알지 못하면 남과 경쟁하며 달리기 쉽고, 그렇게 무리하다면 다리 부상이 쉽게 찾아온다. 그러나 내 속도를 알면 오래도록 행복하게 무리 없이 달릴 수 있다.
6.
또한 달리기는 나의 속도도 알게 되지만 세상에 눈을 뜨게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달리기를 좋아하는지 알게 된다. 마라톤도 뛰게 되고 함께 달리는 법을 배우게 된다. 때로는 경쟁도 하게 되고 그제서야 그들의 평범함, 혹은 탁월함을 깨닫고 인정하게 된다. 나는 10km를 한 시간에 달리는 친구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경쟁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에게 달리기 능력이 있는 것처럼 내게 글쓰기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나를 아는 지혜는 나의 한계를 이해한다는 뜻도 된다. 그래서 무분별하게 경쟁하지 않고 타인을 인정하고 때로는 포용할 수 있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나다운' 삶이 아닐까.
7.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진짜 나를 아는 사람은 행복하다. 오늘 밤 잠자리에 들면서 소풍을 기다리듯, 아끼는 드라마의 다음 화를 기다리듯 설레임을 안고 잠들 수 있게 된다. 그런 삶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하지 말자. 술 한 잔 건네며 '다들 그렇게 산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자. 당신은 좀 더 좋아하는 일을 하며, 좀 더 쉽게 돈을 벌며, 좀 더 많은 사랑을 받는 삶을 살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브랜드'가 되었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이든 그에게 어울리는 일터가 있고, 삶의 가치관이 있고, 협업할 수 있는 사람들이 따로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녹록치는 않다. 그러나 나다운 삶을 사는, 좀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이런 삶을 살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타인과 공존할 줄 알며, 내일을 설레임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8.
나는 5km를 37분에 뛰는 사람이다. 7분 초반대의 페이스다. 나는 이렇게 뛰면 조금 힘들게 5km를 뛸 수 있다. 10km를 뛰려면 8분, 혹은 9분대로 뛰어야 힘들이지 않고 완주할 수 있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욕심은 난다. 일단 5km를 30분 안에, 그리고 조금 더 훈련을 해서 10km를 1시간 안에 뛰고 싶다. 그리고 이런 앎의 세계를 조금 더 넓혀가는 삶을 살고 싶다.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매주 한 번 캐나다 출신의 CJ를 만나 1시간 동안 영어로만 대화를 한다. 아직은 초보이지만 재밌고 유쾌하고 기다려지는 시간이 되었다. 이렇게 나의 앎의 지경을 조금씩 넓혀가는 삶, 이것이 바로 나다운 삶,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에겐 내일이 기다려지는 설렘의 대상이 있는가. 내게는 있다. 그것이 달리기고, 영어공부이고, 글쓰기이고, 또 브랜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