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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글을 쓰고 싶어 하는가?

어릴 때 이순신 장군에 관한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얼마나 감동적이었던지 나는 장난감 칼 한 자루를 만들어 동네 아이들과 전쟁 놀이를 했다. 그리고 편이 갈리자 나는 말없이 적진으로 혼자 쳐? 들어갔다. 그 결과는 기억나지 않지만 불 보듯 뻔한 일 아닌가.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도 이런 실수를 종종 하곤 한다. 불현듯 뭔가를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유튜브가 그랬다. 오랜 지인을 만나 유튜브를 하자고 제안했다. 딱 90일 동안 글쓰기 컨텐츠를 업데이트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 도전은 결국 70일 만에 끝이 났다. 무엇보다 새벽에 일어나는게 너무 힘들었다. 그렇다. 뭔가를 꾸준히 한다는 건 마음의 감동만으로 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현듯 글을 쓰고 싶어질 때가 있다. 세상에 없던 멋진 글을 쓸 수 있을 것만 같을 때가 있다. 문제는 이 감동이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 은유 작가의 글을 보고 깨닫게 되었다. 아, 나는 글을 쓰고자 했던 것이 아니구나. 그저 글을 쓰고 싶은 ‘기분’을 즐기고 싶었던 것이구나. 뭔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하는 내 모습, 빈 화면에 깜빡이는 커서를 보며 결의를 다지는 내 모습, 그렇게 노력하다보면 뮤즈의 여신이 찾아와 내 능력 이상의 글을 쓰게 될 것만 같은 기대, 그러나 글쓰기에 가장 해로운 것이 그런 망상이라는 것을 왜 좀 더 일찍 깨닫지 못했을까?


하지만 항상 실패만 했었던 것은 아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의 권유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첫날엔 1분을 달리고 2분을 걸었다. 둘째 날은 2분을 달리고 3분을 걸었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달리기 시작한지 반 년이 되어간다. 그리고 나는 놀랍게도 10km를 1시간 넘게 달릴 수 있는 체력을 갖게 되었다. 정확히 1.8km인 집 근처 공원을 한 바퀴 도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솔직히 출발점 앞에 서면 반 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어떻게 저 먼 거리를 달렸을까, 한숨이 나올 때가 있다. 그러나 속도가 아닌 시간에 맞춰 천천히 달리다 보면 어느 새 두 바퀴, 세 바퀴를 달리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1시간을 넘게 달리고 나면 온 몸이 땀에 젖은채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그 시간이 내가 기억하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러니 어느 날 나처럼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자. 이것이 정말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인지, 아니면 그저 글을 쓰고 싶은 ‘기분’을 느끼고자 함인지를 냉정하게 물어보자. 그리고 이 차이를 확인하기 위해 매일 같이 글을 써보자. 아마 대부분 2,3일이 지나고 나면 이 돈 안되는 일에 왜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현타가 올 것이다. 그러나 아주 소수의 사람들은 1분을 쓰다가 2분을 쓰고, 3분을 쓰다가 10분을 쓰고, 10분을 쓰다가 1시간을 이어서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때야말로 비로소 진정한 글쓰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만일 그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는 독자라면 마음으로 응원하고 싶다. 진정한 글쓰기의 여행이 막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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