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좌충우돌 왕초보의 식당 운영기 - I

* 이 브런치북의 모든 글은 모두 저희 와이프 시점으로 쓰여졌습니다. 참고 부탁드립니다.


(1)


저는 판교에 있는 순두부 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남편을 도와 수백 만원이 넘는 아이들 학원비를 조금이라도 돕기 위해 시작했지요. 하지만 진상 손님을 만나 화장실에서 홀로 운 적이 많았습니다. 아마 그 날도 그런 손님을 만난 날이었을 겁니다. 너무 억울하고 분하고 속상한 상황에서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왜 이 식당에서 이런 수모를 당하고 있지? 아, 맞다. 아이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거지."


그런 깨달음이 오자 갑자기 진상 손님들이 이뻐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이 가니 더 친절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손님이 화답을 해왔습니다. 무려 20만원을 결제하고 이벤트까지 참여한 분도 계시더군요. 그리고 그날 후로 그 손님은 단골이 됐습니다.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님들이 오면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 종이에 적어달라고 해야겠다. 그리고 식당 벽에 붙여봐야지. 식당 벽도 넓은데, 돈 드는 일도 아니고 말야. 일단 내 꿈부터 적어야겠어."


그후로 저는 신이 나서 일하고 있습니다. 일하는 이유가 선명해졌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식당 일이 아닌,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의 결과는 다르지 않을까요?


(2)


제가 운영하는 식당은 순두부 전문점입니다. 세트 메뉴와 메인 메뉴, 사이드 메뉴, 음료 등을 주문할 수 있죠. 그런데 매출을 올리기 위해 만든 세트 메뉴가 문제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메인 메뉴와 사이드 메뉴를 적절히 조합한 세트 메뉴는 메인 메뉴 두 개에 비하면 가격이 싼 편이거든요. 그러다보니 2인으로 온 손님들이 세트 메뉴를 주문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당연히 매출에 영향을 주기 시작습니했다. 저는 이 문제 해결에 나섰습니다.


해법은 바로 '메뉴 네이밍'에 있었습니다. 저는 이 세트 메뉴 이름을 '1인 실속 메뉴'로 바꿔버렸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사람들이 1인 1메뉴를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처럼 음식값을 아끼기 위해 이 메뉴를 두 사람이 함께 시키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메뉴 이름 하나를 바꿨을 뿐인데 매출은 오히려 늘기 시작했죠. 한 달에 한 두번 찾아와 둘러만 보고 가던 사장이 직원들 먹으라며 간식비를 내놓고 가는 놀라운 일이 생긴 것도 이 즈음부터였습니다.


저는 식당 운영을 넘어 마케팅과 브랜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바로 브랜딩이라는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크고 거창한 얘기가 아닌, 동네 식당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도 마케팅이고 브랜딩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은 훨씬 극적이고 생생하고 보람도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