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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은 결함이 아니다, 예술가의 언어다


딸은 재수생이다. 요즘 부쩍 힘들어보여서 같이 스터디 카페에 다닌다.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서든 작업 가능한 내 직업이 이럴 땐 정말 좋다. 그런 딸은 적어도 공부에 관해선 '느리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로 생각했다. "아무래도 공부 머리는 아닌 것 같아..." 이런 말을 아주 자끔 주고받곤 했다. 그런데 딸과 스카를 다니며 하루에 단편 하나 씩을 읽고 있는 지금,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딸은 느린게 아니었다. 꼼꼼하고 예민하며 감수성이 뛰어나 소설의 상황 하나하나를 곱씹고 있을 뿐이었다. 아마 시험 지문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어제는 딸과 김영하의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함께 읽었다. 밤 늦게 우리는 이 작품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스쳐 지나가며 읽었을 각각의 상황과 캐릭터, 작품의 메시지에 대한 딸의 질문은 끝이 없었다. 나는 안다. 이것이 예술가의 자질임을. 정해진 시간 내에 답을 찾아야 하는 수능 시험의 취지와는 상관없이 딸은 깊이 고민하고, 깊이 사색하고, 깊이 음미하는 그런 친구였다. 그런 뛰어난 아이를 우리는 '느리다'고만 말해왔던 것이다.


지금의 수능 시험은 인간의 뛰어남을 측정하는 시험으로서는 매우 부족한 테스트라고 생각한다. 사실 수능은 회사에서 요구하는 문제를 빠르게 처리할 일꾼의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에 가깝다. 하나의 사물, 하나의 생각, 하나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깊이 사색하고 고민하고 해법을 찾아내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데는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심지어 미대 입시에도 수능 성적은 절대적이다. 어쩌면 우리나라에 압도적인 예술가들이 적은 이유는 이런 영향도 있지 않을까.


나는 딸에게 말했다. 타인이 만들어 놓은 운동장에서 억지로 뛰지 말라고. 오히려 너의 느림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새로운 운동장을 같이 찾아보자고 말했다. 그러자 딸은 어느 유튜버를 제외하고는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이 처음이었다고, 조용하지만 달뜬 목소리로 내게 말해주었다. 나는 딸과 매일 같은 책을 읽고, 매일 토론하며, 우리만의 해법을 찾아보려 한다. 세상에 길은 많다. 중요한 것은 딸이 공부를 포함한 자신만의 예술의 길을 즐기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그 무엇도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는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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