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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의 재해석이 만든 대중의 유니폼, 커버낫

패션 시장에서 '기본'을 다루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유행은 눈 깜짝할 새 변하고, 소비자들의 눈높이는 이미 글로벌 브랜드의 품질에 맞춰져 있다. 자본도 인프라도 부족한 스몰 브랜드가 이 거대한 격랑 속에서 살아남아 '국민 브랜드'의 반열에 오르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2008년, 빈티지 웨어에 매료된 청년들이 만든 '커버낫(COVERNAT)'은 그 기적을 현실로 만들었다. 이들은 밀리터리, 아웃도어, 워크웨어라는 과거의 유산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비틀어, 스몰 브랜드가 어떻게 확고한 정체성을 유지하며 대중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는지 그 정석을 보여주었다.


이름에 담긴 집념: "빈티지를 덮고, 바느질하다"


커버낫이라는 이름은 'Cover(덮다)', 'Needle(바늘)', 'And', 'Thread(실)'의 합성어다. 여기에는 "빈티지 웨어가 가진 과거의 아카이브를 현대적 관점으로 덮고, 새로운 바느질로 완성하겠다"는 창업자들의 고집스러운 철학이 담겨 있다. 이들은 화려한 트렌드를 쫓기보다 서랍 속에 잠들어 있던 오래된 군복이나 작업복의 디테일을 연구하는 것으로 브랜드를 시작했다.


스몰 브랜드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집요함'이다. 커버낫은 대중적인 취향을 먼저 살피기보다 자신들이 열광하는 '빈티지 아카이브'를 깊게 파고들었다. 튼튼한 봉제, 실용적인 주머니 위치, 세탁 후에도 변형이 적은 원단 등 옷의 본질에 집중한 이들의 태도는 초기 패션 마니아들 사이에서 신뢰를 쌓는 밑거름이 되었다. "작은 브랜드가 만든 옷인데 대기업 옷보다 튼튼하다"는 입소문은 커버낫이 치열한 패션 생태계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첫 번째 동력이었다.


전략적 카테고리 선점: 'C 로고'와 에센셜의 탄생


커버낫의 성장에서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브랜드의 정체성을 응축한 'C 로고' 아이템의 대중화다. 이들은 마니아들만 아는 빈티지 복각 브랜드에 머물지 않고, 누구나 일상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맨투맨, 후드티, 에코백 등에 자신들의 철학을 이식했다.


특히 '로고 마케팅'은 스몰 브랜드가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한 영리한 선택이었다. 간결하면서도 힘 있는 로고 디자인은 소비자들에게 소속감을 부여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길거리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대중의 유니폼'으로 진화했다.


하지만 커버낫은 단순히 로고만 파는 브랜드가 되지 않았다. 로고 뒤에는 언제나 빈티지 웨어에서 빌려온 견고한 품질과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탄탄한 기본기가 버티고 있었다. 스몰 브랜드가 스케일업(Scale-up)을 할 때 흔히 저지르는 실수인 '정체성의 상실'을, 커버낫은 '기본의 강화'라는 정공법으로 돌파했다.


무신사와의 동반 성장: 플랫폼을 활용한 유통의 혁신


커버낫의 성공 사례를 이야기할 때 한국 최대 패션 플랫폼 '무신사'와의 관계를 빼놓을 수 없다. 커버낫은 무신사가 작은 커뮤니티이던 시절부터 함께 성장한 '무신사 1세대 브랜드'의 상징이다. 이들은 오프라인 매장을 무리하게 확장하는 대신, 온라인 플랫폼의 데이터와 사용자 반응을 기반으로 제품을 기획하고 생산하는 민첩함을 보였다.


스몰 브랜드에게 플랫폼은 양날의 검이다. 거대한 유통망을 얻는 대신 브랜드의 개성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커버낫은 플랫폼 내에서 끊임없이 '랭킹 1위'를 유지하며 브랜드의 힘을 증명해냈다. 고객의 후기를 제품 개선에 즉각 반영하고, 플랫폼의 특성을 활용한 공격적인 기획전을 통해 인지도를 폭발시켰다. 자본의 열세를 플랫폼이라는 파도에 올라타 극복한, 전형적이고도 영리한 스몰 브랜드의 생존 전략이다.


확장과 진화: 배럴즈에서 비케이브로


커버낫의 모체였던 '배럴즈'는 이제 커버낫 하나에 안주하지 않는다. 이들은 커버낫을 통해 쌓은 브랜딩 노하우를 바탕으로 다양한 서브 브랜드와 협업 모델을 만들어내며 패션 기업으로서의 규모를 갖췄다. 현재 '비케이브(B.CAVE)'로 사명을 변경한 이들은 스몰 브랜드를 넘어 한국 캐주얼 시장을 선도하는 거물이 되었지만, 여전히 신선함을 유지하는 비결은 '브랜드 포트폴리오의 다각화'에 있다.


리(Lee), 와이엔엠(YMN), 랭러(Wrangler) 등 글로벌 아카이브를 가진 브랜드들의 라이선스를 전개하거나 신규 브랜드를 런칭하면서도, 커버낫에서 보여준 '본질에 충실한 재해석'이라는 문법을 잃지 않는다. 스몰 브랜드가 어떻게 대형 패션 하우스로 진화할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이들의 행보는, 후발 주자들에게 "취향에서 시작한 작은 브랜드도 시스템과 데이터를 갖추면 산업의 주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가 되었다.


가장 개인적인 안목이 가장 대중적인 스타일이 될 때


커버낫의 여정은 우리에게 '성공적인 브랜딩'의 핵심이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그것은 창업자의 개인적인 안목(빈티지에 대한 애착)을 대중이 소비할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C 로고와 기본 아이템)로 번역해내는 능력이다. 이들은 과거의 옷을 단순히 복제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유행에 영혼을 팔지도 않았다.


커버낫이 걸어온 시간은 한국 스트릿 패션의 대중화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작은 사무실에서 빈티지 자켓을 해체하며 연구하던 청년들의 집념은, 이제 수백만 명의 일상을 채우는 거대한 흐름이 되었다.


결국 브랜딩이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본질'을 찾아내고, 그것을 지금 이 순간의 '감각'으로 다시 숨 쉬게 하는 일이다. 커버낫은 오늘도 새로운 바느질을 멈추지 않으며, 우리 시대의 가장 견고하고 세련된 유니폼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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