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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함 속에서 발견한 완벽한 한 잔, 보난자커피

유럽의 커피 문화를 선도하는 도시를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베를린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베를린 스페셜티 커피의 문을 연 상징적인 존재가 바로 '보난자커피(Bonanza Coffee)'다. 2006년, 작은 골목에서 시작된 이 브랜드는 화려한 수식어 대신 "우리는 커피를 볶을 뿐이다"라는 지극히 단순하고도 강력한 태도로 전 세계 커피 애호가들을 사로잡았다.


스몰 브랜드가 거대 자본과 유행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자신들만의 '맛의 권위'를 세우고 유지할 수 있는지, 보난자커피가 걸어온 길은 브랜드의 생명력이 '본질에 대한 집요한 탐구'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름 뒤에 숨은 반어법: "노다지는 행운이 아닌 태도에 있다"


'보난자(Bonanza)'라는 단어는 스페인어로 '노다지', 즉 예상치 못한 행운이나 수지맞는 일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들이 커피를 대하는 방식은 행운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고집스러울 정도로 철저한 계산과 반복되는 실험의 연속이다. 이들은 "커피는 원래 그 자체로 완벽하며, 로스터의 역할은 그 완벽함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라는 겸손하면서도 오만한 철학을 전면에 내세운다.


스몰 브랜드에게 이름은 단순한 고유명사가 아니라, 그들이 세상을 대하는 관점이다. 보난자커피는 자신들의 이름이 주는 풍요로움을 맛으로 증명해 보였다. 생두가 가진 고유의 향미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설익지도, 타지도 않은 절묘한 지점을 찾아내는 '라이트 로스팅(Light Roasting)' 기법은 보난자만의 인장이 되었다.


남들이 다 하는 방식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이 믿는 '가장 커피다운 맛'을 정의하는 것. 보난자는 이름을 통해 행운을 갈구하는 대신, 맛을 통해 노다지를 캐내는 법을 택했다.


베를린적 미학: 가공되지 않은 세련됨의 힘


보난자커피를 감싸고 있는 시각적 분위기는 지극히 '베를린적'이다. 노출 콘크리트, 가공되지 않은 나무 자재, 미니멀한 가구 배치 등은 화려한 장식보다 실용과 본질을 중시하는 브랜드의 성격을 대변한다. 공간이 화려하면 시선은 분산되지만, 공간이 비어 있으면 시선은 오롯이 잔 속에 담긴 커피로 향한다.


이러한 미니멀리즘은 스몰 브랜드가 가져야 할 '심미적 고집'을 보여준다. 이들은 한국 시장에 상륙했을 때도 이 베를린의 공기를 그대로 옮겨왔다. 차가운 금속성과 따뜻한 나무의 질감이 교차하는 공간은, 보난자의 커피가 지향하는 '생생하면서도 깊은 맛'과 시각적으로 완벽한 일치를 이룬다. 브랜드가 내놓는 모든 결과물이 하나의 결을 가질 때, 소비자는 비로소 브랜드가 설계한 세계관에 온전히 침잠하게 된다.


기술적 정직함: "불필요한 것은 걷어내라"


보난자커피가 추구하는 기술의 핵심은 '뺄셈'에 있다. 이들은 원두의 결점을 감추기 위해 과하게 볶거나 가공하는 행위를 지양한다. 산지 농장과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최상급 생두를 확보하고, 그 생두가 품고 있는 테루아(Terroir)를 정직하게 드러내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


이는 스몰 브랜드가 전문성을 확보하는 가장 확실한 전략이다. "우리는 이것만큼은 타협하지 않는다"는 선언은 곧 브랜드의 자부심이 된다. 보난자는 유행하는 화려한 베리에이션 음료보다, 원두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필터 커피와 기본에 충실한 에스프레소 메뉴에 집중한다. 군더더기를 걷어낸 정직한 한 잔은, 자극적인 맛에 지친 소비자들에게 '커피의 원형'을 만나는 듯한 지적·감각적 유열을 선사한다.


확장과 유연성: 로컬의 정서로 스며드는 법


보난자커피는 베를린이라는 로컬의 뿌리를 견고히 유지하면서도, 글로벌 확장 시에는 현지의 정서와 유연하게 결합한다. 특히 한국에서의 성공은 흥미로운 사례다. 이들은 자신들의 로스팅 원칙은 고수하되, 한국의 수준 높은 카페 문화와 결합하여 '스페셜티 커피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스몰 브랜드가 세계로 나갈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복제'다. 보난자는 단순히 베를린 매장을 그대로 복사해 붙이는 대신, 각 지역의 파트너들과 협력하며 그 공간이 위치한 동네의 맥락과 호흡한다. 그러나 맛의 기준점만큼은 베를린의 그것과 동일하게 유지한다. 뿌리는 변하지 않되 가지는 유연하게 뻗어 나가는 것, 이것이 보난자가 전 세계 커피 애호가들 사이에서 변함없는 지지를 받는 비결이다.


결론: 본질이 승리하는 시대의 목격자



보난자커피의 여정은 우리에게 브랜딩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금 일깨워준다. 브랜딩은 화려한 포장지로 실체를 감추는 작업이 아니라, 실체가 가진 빛을 가리지 않도록 주변을 정돈하는 작업이다. 이들은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오직 '더 나은 한 잔'을 위해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는 연습을 해왔다.


작은 로스터리 카페에서 시작해 전 세계 스페셜티 커피의 기준이 된 보난자커피. 이들의 성공은 "진심을 다해 본질에 집중하면,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그 가치를 알아본다"는 고전적인 진리를 증명한다.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보난자가 건네는 맑고 투명한 커피 한 잔은, 우리에게 잠시 멈춰 서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결국 가장 강력한 브랜딩은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완벽을 추구하는 '태도' 그 자체에 있음을 보난자커피는 매일 아침 차분히 내려지는 커피 방울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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