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킨미소 브랜딩 스토리 #02.
"이 가게는 당신을 닮았어요."
한 일본인이 핀란드(더 정확히는 헬싱키)의 어느 골목에 식당을 낸다. 주메뉴는 '오니기리'. 왜 하필 주먹밥이냐는 질문에 식당 주인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무심히 꺼내놓는다. 엄마가 없는 집에서 아빠가 일 년에 단 두 번, 그러니까 운동회와 소풍 때 도시락을 싸주었는데 그 메뉴가 바로 '오니기리'였다고. 그러던 어느 날, 영문도 모른채 남편이 집을 나간 핀란드 여자가 이 식당을 찾는다. 술 한 잔을 마시고 쓰러진 그녀를 식당 주인과 종업원(?)들이 정성스레 간호를 하고 이야기를 들어준다(심지어 말도 통하지 않는 채로). 그렇게 그들은 친구가 되고 함께 사우나를 가는 사이가 된다. 그 때 영화 속 핀란드 여자가 지나가듯 한 마디를 던진다. 이 식당은 당신을 닮았다고.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 가게는 정말로 주인을 닮았구나. 메뉴 때문이 아니라, 맛 때문이 아니라, 인테리어 때문이 아니라, 바로 손님과 메뉴와 자신의 삶을 대하는 그 자세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가게가 바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카모메(갈메기) 식당'이다.
비슷한 가게(브랜드)가 하나 있다. 심지어 매장도 따로 없는 조그만 화장품 브랜드다. 몇 년 전 볕이 참 좋은 어느 카페에서 이 가게(?)의 사장님을 만났다. 내가 한 강의를 우연히 듣고 자신의 브랜드 스토리를 정리해주었으면 한다고 했다. 아쉽게도 회사에 매인 몸인지라 사장님이 제시한 조건으로는 그 일을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2년이 넘게 지나 회사를 나오게 되었고, 맨 먼저 그 가게(?)를 찾았다. 사장님은 그대로였고 회사는 조금 더 커졌지만 여전히 작은 브랜드였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여전히 그 일이 필요하시냐고 물었다. 바로 그 날부터 일을 시작했고, 그 결과로 작은 브랜드북 하나를 만들게 되었다.
이 가게의 주메뉴는 '코팩'이다. 멋지게 콧수염을 기른 사장님은 원래 대기업 상사에서 전자제품 관련 무역일을 했다. 서울 역 앞 대우 빌딩, 그러니까 드라마 '미생'의 배경이 되었던 그 건물에서 일하던 수많은 '미생'들 중 한 사람인 셈이다. 하지만 그는 당시 취급하던 전자제품들의 짧은 수명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불과 1, 2년이 지나 옛것이 되어버리는 전자제품보다 좀 더 오래, 길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섰고 바로 그렇게 찾은 아이템이 '화장품'이라고 했다. 하지만 당장 자신의 화장품을 만들고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대신 다른 회사의 제품을 팔아주는 온라인몰을 열어 그렇게 화장품 사업을 시작했다. 걔 중에는 모공을 깨끗이 관리하기 위한 '피지 제거기' 제품도 있었다. 플라스틱으로 조잡하게 만든 그 피지 제거기가 전자 제품의 부품을 다루던 콧수염 사장님의 눈에 걸리기 시작했다.
"좀 더 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사람마다 모공의 크기가 다르니 양쪽의 크기를 다르게 하면 어떨까 생각했죠. 그리고 무엇보다 위생이 가장 중요하니 보관까지 가능하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했구요."
그렇게 스테인리스 재질로 만들어진, 양쪽의 크기가 다르게 디자인 된, 보관까지 가능한 깔끔한 새로운 피지 제거기가 그의 손을 통해 탄생했다.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던 아주 작은 시장이었지만 그는 정성을 다해 제품을 개선시켜 나갔다. 그리고 이 제품에 어울리는 새로운 조합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냥 피지제거기만 달랑 보내드리는게 아쉬웠어요. 그래서 함께 보내드릴 제품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죠. 마침 함께 쓸 수 있는 코팩 제품이 눈에 띄어 걔 중 제일 나은 제품의 한 회 분을 고객들께 보내드리기 시작했죠. 그런데 한 두달을 그렇게 지켜보니 코팩 제품의 아쉬운 부분이 또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제품들이지만 당시의 코팩들은 물을 묻힌 후 코에 붙이고 마르면 떼어내는 방식이었다. 사용법은 간단했지만 피부에 좋을리 만무한 제품들이었다. 피지를 떼어면서 주변의 피부까지 한꺼번에 당기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건강한 방식으로 피지를 제거할 방법을 계속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국내에 있는 제품들은 물론이고 해외의 제품들까지 모조리 찾아다니며 조사하기 시작했죠. 그러다 마스크팩 형태가 가장 효과가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하지만 진짜 고민은 그 때부터가 시작이었다. 그런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국내의 몇 몇 제조사와 컨택을 했지만 화장품 관련 경험이 전무한 회사의 제안에 관심을 두는 제조사는 한 군데도 없었다. 오랜 동안의 수소문 끝에 함께 일하는 직원의 친구가 연구원으로 일하는 제조사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이런저런 설명을 하고 샘플 제품을 받기로 했다. 하지만 첫 샘플은 기대하던 수준과는 너무 차이가 컸다. 그렇게 테스트 결과를 알려주고, 다시 테스트하고, 다시 제품을 요청하고 테스트하기를 반복하는 과정을 거쳐 드디어 원하는 수준의 제품이 나왔다. 무려 8개월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기존의 코팩은 오로지 피지를 제거하는 데만 신경을 쓴 제품들이었어요. 저희는 피지를 뽑은 후의 '케어' 과정까지 신경을 쓰기로 했죠. 처음엔 피지를 제거하고 그 과정에서 넓어진 모공을 조여주고, 그 후에 다시 분비되는 피지까지 관리해주는 에센스까지 넣었어요. 사실상 모공 관리를 위한 최초의 3단계 제품을 만든 셈입니다."
그렇게 나온 코팩 제품은 기대 이상의 시장 반응을 끌어냈다. 피지 제거기와 코팩 제품이 서로를 보완하는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면서 '티켓몬스터'에선 전체 카테고리에서 최고의 매출을 일으키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2015년엔 유튜브에서 가장 유명한 뷰티 셀럽 중 한 명인 '미셸 판'이 꼽은 그 해의 기초 화장품 하나로 꼽혀 소개되기도 했다. 그 어떤 제안도 없이 순수하게 자신의 손으로 고른 제품이라 더욱 의미있는 결과였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피지 제거기에서 시작된 그의 행보가 실제로 주류 화장품의 한 부분을 당당하게 담당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콧수염 사장님은 여전히 몇 종류의 기초 화장품만을 만든다. 한 제품이 성공하면 이런 저런 다른 제품 개발에 열을 올리는 여타의 화장품 회사들과는 확실히 다른 행보다. 이유가 궁금해서 물어보닌 약간은 싱거운 대답이 돌아왔다.
"트렌드나 계절에 따라 이 제품 저 제품을 만드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 꼭 필요한 제품들을 정성스럽게 만들고 싶거든요. 한 번에 큰 변화를 만들어내는 제품 보다는 가장 좋은 하나의 제품을 만들고 싶어요. 그게 이 일을 시작한 이유니까요."
그 후로도 코팩 제품은 두 어번의 개선 작업을 거쳤고, 최근들어 2세대 제품으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자극은 크게 줄인 반면, 3단계의 제품이 하나의 포장으로 만들어져 언제 어디서는 코 주변의 모공을 깨끗하게 관리할 수 있다. 단계별 기능은 물론 면봉 형태의 1회용 피지 제거기까지 각각의 스텝 별로 꼼꼼한 배려가 돋보인다. 마치 가게 주인의 마음을 담은 카모메 식당의 주먹밥처럼. 밥과 김과 연어, 혹은 매실과 연어를 넣은, 화려함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단출한 메뉴. 하지만 그 메뉴를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여느 화려한 식단이 부럽지 않을만큼 풍요롭다. 그 안에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진심과 정성이 담긴 배려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스킨미소는 이제 7살을 먹은 여전히 작은 회사이다. 직원 수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작다. 하지만 역삼역 근처의 사무실을 찾아보면 카모메 식당에서 마주했던 여유로움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사무실은 조용하고 깨끗하며 넓은 창 앞 테라스에선 따뜻한 햇볕이 기분 좋게 들이친다. 직원들은 월요일 10시에 출근하고 한 달에 한 번은 '해피 런치'로 근처 맛집을 찾는다. '6시 1분은 6시가 아니다'라는 슬로건(?) 아래 칼퇴근이 보장되고 재충전을 위한 연차가 무려 한 달에 이른다. 가끔씩은 '공간 이동 근무제'로 미술관 옆 카페에서 업무를 보기도 한다. '속도' 보다 중요한 건 '방향'이라는, 주변 사람들은 다름 아닌 '확장된 나'라는 가게 사장님의 철학 때문이다. 마치 카모메 식당에서 이런 저런 사연으로 함께 모야 일하게 된 주인공들처럼.
그렇다. 회사가 작은 규모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철학도 좋지만 매출이 생명줄인 비즈니스가 가진 숙명?이 이 회사라고 해서 비켜가진 않는다. 근래 들어 기존 제품의 리뉴얼과 신제품 출시 때문에 이들 역시 1년 전보다는 훨씬 더 빠르게 일하고 있는 것 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회사의 생존과 매출을 위해 정색을 하고 일하는 일은 앞으로도 당분간은 없을 것 같다. 조만간 '카모메 식당'과 같은 일본의 슬로우 무비들을 전공 교수님의 설명과 곁들여 함께 보는 상영회를 계획하고 있고, 직원들은 자신들의 해피 런치와 공간 이동 근무의 질적 향상을 위해 '놀먹쉬금 리스트'를 개발 중에 있으니 말이다. '놀고 먹고 쉬는 금요일'을 위한 이 리스트는 어쩌면 '카모메 식당'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몇 가지 지혜를 현실에서 실현하고픈 이 브랜드의 핵심 가치에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본다. 식당의 본질이 음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관계와 소통에 있다는 것, 따라서 화장품의 본질 역시 단순히 예쁘고 화려해지는 것이 아닌 건강한 피부 그 자체에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삶을 살아갈 때 몸도 마음도 피부도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 이것을 이 작은 브랜드는 항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긴 레스토랑이 아니라 동네 식당이에요. 근처를 지나다가 가볍게 들어와 허기를 채우는 곳이죠. 열심히 하다 보면 손님도 차츰 늘 거에요. 그래도 안 되면 그때는 문 닫아야죠... 하지만 잘 될거예요."
스킨미소는 수백수천 억의 매출을 올리는 거대한 브랜드는 아니다. 건강한 피부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기초 화장품들을 파는 곳이다. 그러니 카모메 식당의 마지막 장면처럼 손님들로 북적이는 작지만 따뜻한 브랜드로 살아남아 자신의 속도로 성장해갔으면 좋겠다. 문 닫지 않고 잘 되었으면 좋겠다.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도. 그리고 이런 브랜드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오밀조밀 작은 식당과 가게들로 북적이는 연남동의 골목길처럼 작지만 개성있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공존하며 자신의 꿈을 현실에서도 실현해갈 수 있는 곳, 나는 그것이 이 시대에 필요한 건강한 브랜드 생태계라고 믿는다.
스킨미소는 바로 그런 골목 어딘가에 있는 작지만 건강한, 행복한 브랜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