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ittlest Brands #01.
새로운 일에 도전했거나
일의 결과가 만족스러울 땐
정자역 근처의 '원조국수'를 찾는다.
천연재료로 맛을 내는데다
단무지의 색소조차 허락치 않는 이 집은
쫄깃하고 짜릿한 면발로
면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내게는
어느 진수성찬 부럽지 않은 메뉴다.
기본 6천, 곱배기 7천의 가격이
국수치곤 사치스럽긴 하지만
그 때문에 발걸음을 돌린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지난 주,
새롭게 시작한 브랜드 교육 2주차를 마치고
1주차의 서먹함을 완전히 털어낸 뿌듯함을
국수 곱배기로 달래며 했던 생각,
나는 과연 맛 때문에 이 집을 찾았던 것일까?
아니다.
필요조건은 되나 필요충분은 아니다.
어느 날, 맛있게 한 그릇을 비우고 나서다
지갑을 안 가지고 온 것을 뒤늦게 알았을 때
그래서 다소 당황하고 있을 때
주인 아저씨가 내뱉은 한 마디,
"종종 오시는 분이야, 나중에 주시라 해"
그 이전에도,
그리고 이후에도
계산 외엔 사적인 대화를
단 한 번도 나누지 않은 수줍은 관계지만
단순한 계산의 대상인 아닌
자신의 가게를 가끔씩 찾아주는
고마운 '단골'로 '기억'해주었다는 것,
그것이 그때의 내겐 조금 감격?스러웠고,
그 집이 '특별'해지는 순간이었다.
괜한 오버 아닐까 생각하다가
또 하나의 기억이 꿈틀하고 떠오른다.
신혼 시절 급히 대출이 필요해서 찾아갔던 은행,
신용등급 문제로 담당자와 설왕설래하다가
그래도'주거래' 은행이니 잘 좀 해달래 했더니
배 나온 '윗사람'이 다가와 넌지시 던진 한 마디,
"월급만 넣고 빼면서 무슨 주거래 은행..."
무려 십 년도 넘은 이 한 마디가
이 은행의 노란 간판 앞에 설 때마다
그 어떤 기억보다 선명하게 떠오른다.
결국 사람의 문제다.
국수맛의 기본은 육수와 면발, 양념이겠으나
그 맛의 정점은 결국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애티튜드'가 영국의 신사를 완성하듯이
국수의 마지막 고명은 결국
맛있는 한 끼를 대접하는 정성과
그 맛을 알아주는 사람에 대한 감사의 마음일지도.
가끔은 흐물한 면발에 실망하면서도
몇 년째 이 집을 잊지 않고 찾는다.
나 스스로가 대견하고 흐뭇해서 선물을 주고 싶을 때
조금은 사치?스런 국수 한 그릇,
나는 이때가 정말로 행복하다.
그 국수가 원조이든 아니든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