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더's 다이어리 #35.
그를 처음 만난 건 입사 첫날,
회사 화장실에서였다.
갑자기 들이닥친 그가
주먹으로 벽을 치던 기억이 생생하다.
문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파악하기까진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당시 영업과 마케팅을 담당하던 참이었으니
힘들고 억울한 일이 분명 있었으리라.
아무튼 그와 첫 만남은
그 '쿵'하던 파열음으로 내게 남아 있다.
하지만 그는 결코 사석에서
그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두 번째 그를 기억하는건
집들이로 집을 찾아갔을 때였다.
책장의 모든 책이 자로 잰듯
줄을 맞춰 꽂혀 있었다.
문제는 책의 종류와는 상관없이
크기로만 분류되었다는 점이다.
군 시절 헌병대에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일하는 곳 주위가 어떠했을지는
따로 설명이 필요치 않을듯 싶다.
세 번째 그를 기억하는 모습은
이른 아침 회사 회의실에서였다.
그는 매일 회사에 나와서 기도를 했다.
나도 교회를 다니지만
모든 크리스천이 그렇게 기도하길 좋아하진 않는다.
회사가 어려워질 때면 기도 소리가 커지곤 했는데
나는 그것을 '유난스러움'으로 받아들이진 않았다.
그 시간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듯
열심으로 가득한 '영업맨'으로 돌아갔으니까.
자신의 일에 어설픈 신앙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보다는
훨씬 좋다고 생각했었다.
회사는 어려워졌고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얼마 전 한 회사의 대표가 된 그를 만났다.
여전히 나를 '형'이라고 부르지만
내가 왠지 '동생'인듯한 늘 그런 모습으로.
다소 장황한 모습으로 그를 설명한건
좋은 브랜드란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그는 노트와 다이어리를 만들고
멋진 펜파우치를 만든다.
그 노트와 파우치는 만든 주인을 닮아
에둘러 갈 줄 모르게 생겼다.
몰스킨같은 부드러움 대신에
자로 잰듯한 엄격함으로 가득하며,
감성적인 카피 대신에
본래의 기능에만 충실하다.
노트와 다이어리 표면의 마감은
차갑도록 반듯하고,
파우치는 펜을 보호하는 기능에 충실한 나머지
열고 닫기 번거롭다.
사용자의 모든 일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간주하고
조금의 실수도 용서치 않는
빨간 모자의 교관이 떠오른다.
펜 하우치, 그러니까 필통 하나를 만들면서도
'컨트롤'이란 이름을 붙인건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그가 완성해가는 '유니타스매트릭스'는
바로 그런 브랜드다.
사실 이 브랜드의 시작은 함께 일하던 회사에서였다.
'브랜드'를 논하기보다 '브랜딩'을 실천하자는 취지에서
그는 공장을 찾아다니며 노트를 만들었고,
나는 제품 홍보를 위한 사이트를 기획했었다.
하지만 7년은 족히 더 되었을 그 긴 기간동안
이 브랜드를 여전히 매만지고 있는 건 바로 그다.
나는 그가 이 브랜드의 주인이 된게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여긴다.
아니 애초에 그가 주인이었을거라 믿는다.
그가 만든 노트가 '최고'라고 생각진 않는다.
여전히 몰스킨의 아우라가 좋고
'무지'의 실용성이 좋다.
그래도 올해의 다이어리는
그가 만든 노트로 시작했다.
하지만 펜파우치는 욕심이 날 정도다.
하루의 일을 시작하기 전,
컨트롤에 그 날 쓸 펜들을 꽂아넣는 리추얼을 즐긴다.
마치 검객이 칼을 벼르듯
목수가 도구를 어루만지듯
펜에 걸맞는 필통을, 파우치를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니까.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고백해야겠다.
그는 헌병의 엄격함과 상남자의 차가움을 가졌지만
와이프를 도깨비 신부처럼 여기고
아이들을 아이스크림처럼 쪽쪽 녹여대는
부드러운 남자의 반전을 가지고 있다.
함께 했던 그 어려운 회사 생활 중
가장 큰 그리고 실제적인 도움을 준게 바로 그였으니까.
언제고 그 마음의 빚을 갚을 때까지
오랫동안 기억하자고 아내와 약속했었다.
나는 그 부드러움이 이 브랜드에 녹아났으면 싶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그가 신을 대하고 사람을 대하는 그 충성과 진지함으로.
'자기답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