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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티버니포니

숨은 브랜드 찾기 #02.

"인간이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나요?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에요."

미술평론가 이주헌 씨가 유니타스브랜드와의 인터뷰에서 창조성에 대해 한 말이다. 그는 창조성이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Creativity가 아니라 Originality라고 정의한다. 진정한 의미의 창조란 '이제까지 사람들이 보지 못하던 것, 혹은 못 느끼던 부분을 찾아보는 것'이며 자신만의 시각을 가지는 그 순간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거라 말했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으로 만들어진 브랜드가 과연 있을까? 자신만의 필요와 생각으로 일상의 것들을 재해석하고, 그 결과물이 제품의 Originality로 체화된 브랜드를 직접 만나볼 수 있을까? 그러한 고민 끝에 만난 브랜드가 바로 '키티버니포니'다.

키티버니포니는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한 김진진 아트 디렉터와 대구에서 자수 공장을 20년 넘게 운영하던 그의 아버지가 함께 런칭한 국내 최초 ‘패브릭 브랜드’이다. 언뜻 생김새만 보면 북유럽의 디자인이 떠오르지만, 한국적인 상황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필요와 고민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겉으로는 수줍어 보이는 이들은 적어도 자신들의 Originality에 대해서만큼은 (지나치다 싶을 만큼) 단호했다.

하나, (북유럽 스타일이 아니라) 키티버니포니 스타일

“마리메꼬보다 저희 제품이 마감부터 천 소재까지 퀄리티가 훨씬 더 좋아요. 강한 패턴, 과감한 컬러의 마리메꼬와 달리 한국 소비자들에게 맞는 한국적인 디자인을 하고 있어요. '대자연을 디자인에 담는다'라는 그들의 철학이 멋있기는 하지만, 막상 집에 가져다 놓기에는 너무 과하거든요. 게다가 마리메꼬에는 자수 제품이 없어요. 자수는 우리나라에서 내려오는 방식이니까요. 준비가 되면 유럽 시장에 진출해서 그들에게 우리 제품을 선보이고 싶어요. 어떻게 평가될지 정말 궁금해요.”

2008년 런칭 당시만 해도 국내에는 디자이너 패브릭 브랜드가 전무했다. 키티버니포니 역시 될 거라는 확신은 없었다. 경상도 대구 지방의 한 자수 공장을 운영하던 중, 하루에도 몇 개씩 망해나가는 공장들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노동력이 싼 중국의 섬유 공장들에 대항하고자 찾은 방편이 바로 ‘디자인’이었다. 당시 학생이었던 김진진 디렉터가 주로 작업했던 동물 셰입을 아버지의 노하우가 쌓인 자수로 수놓기 시작한 것이다.

흔히 키티버니포니를 북유럽 디자인 브랜드라고 소개하지만, 김진진 디렉터 스스로 키티버니포니가 북유럽 스타일이라고 말한 적은 없다. 물론 브랜드 런칭 당시의 롤모델은 마리메꼬였다. 지금도 디자인부터 원단 염색, 제조와 납품까지 일원화되어 있는 패브릭 브랜드는 전 세계에서 마리메꼬가 유일하다. 언젠가 마리메꼬와 같은 브랜드가 되겠다는 포부는 있었으나 그들의 디자인을 참고하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일상과 환경을 고민해 그들만의 심플하면서도 실용적인 디자인을 추구한다.

둘, 내가 필요한 것, 잘할 수 있는 것만 만든다

“처음에는 이렇게 잘 될 줄 몰랐어요. 동물 모양 컨셉만 생각해서 브랜드 네임도 (동물들이 나오는) 그림책 제목인 키티버니포니로 지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제품 라인이 자연스럽게 확장됐어요. 싱글일 때는 쿠션, 파우치 같은 작은 아이템들을 만들었지만, 결혼 후에는 베딩이나 커튼에도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또 아이가 생기고 나니 남의 것을 사다 쓰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 토들러 라인을 출시했어요."

“장난감 바구니를 만들면 판매가 잘 될 게 빤히 보이지만 절대 만들지 않아요. 저보다 훨씬 더 잘 만드는 브랜드가 이미 있고, 저 역시 그 제품을 쓰고 있으니까요. 패브릭 브랜드인 만큼 패브릭으로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할 때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김진진 디렉터는 시장조사를 아예 하지 않는다. 시중에 어떤 쿠션 디자인이 있는지를 살핀 후에 쿠션 디자인을 하는 것도 일종의 카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키티버니포니의 토들러 라인 제품들은 알록달록한 타사 브랜드들과 달리 전부 회색이다. 자신이 필요해서, 좋아서 만든 것이니 아무도 안 써도 괜찮다 생각하고 만든 회색 이불은 놀랍게도 코드가 맞는 엄마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셋, 친절하진 않지만, 진심을 다 한다

“저희는 결코 친절하지 않아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그저 억지로 웃고 듣기 좋은 말을 하는 게 안 되는 사람들일 뿐이에요. 그 대신 더 많이 팔려고도 하지 않고요. 예쁘고 가격대도 많이 비싸지 않은 편이라 매장에 오시면 다들 10개씩 사가고 그러세요. 그러면 저희는 10개 사지 마시고 3개 사셔서 이렇게 맞춰서 쓰세요, 하죠. 또 커튼을 짧게 하시려고 하면 길게 해서 이사 가더라고 계속 오래 쓰시라고 조언해 드리곤 해요."

“블로그 다들 정말 많이 좋아해 주셨는데 요즘은 잘 안 해요. 블로그에 미리 공개하니까 저희가 본품을 만들기도 전에 경쟁 업체에서 카피를 하더라고요. 몇 번 그러고 나니 신제품 소개나 계획 같은 것들을 더 이상 블로그에 노출하지 않게 됐어요.”

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 키티버니포니의 블로그는 언젠가부터 업데이트가 되지 않는다. 키티버니포니가 인기를 끌면서 5년여 사이에 수백 개의 새로운 패브릭 브랜드들이 생겨났다. 해외 유수의 대학을 나왔다는 경쟁 브랜드의 디자이너들은 블로그의 글들을 훔쳐 보거나, 키티버니포니의 제품들을 주문해 파우치 사이즈부터 동물 쿠션의 모양을 내는 노하우까지 무섭게 카피하기 시작했다. 법적으로 처벌하기에는 시간과 돈이 너무 많이 들기에 사실상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다. 억울하고 속이 타지만 방법이 없기에, 이제는 카피가 불가능한 브랜드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앞만 보고 달리고 있다.

김진진 디렉터는 자신이 만든 제품도 언젠가는 쓰레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디자인을 하면서도 결국엔 쓰레기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괴롭다고 했다. 그래서 최대한 심플하게 아름다우면서도, 실용적이고 튼튼해서 버려지지 않는 제품들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키티버니포니 공식 사이트: 
http://www.kittybunnypony.com/

*키티버니포니 공식 블로그: 
http://blog.naver.com/maisondekbp







* 지난 <숨은 브랜드 찾기>


10. 브랜드가 된 낯선 예술, 패브리커 - https://bit.ly/3CNMar8

9. 이야기의 모든 것, 올댓스토리 - http://goo.gl/f0hVNn

8. 날 것의 열정이 만든 평생의 가구, 카레클린트 - http://goo.gl/rFAfXP

7. 너도 나처럼 행복했을까? 오보이! - http://goo.gl/QzWhG0

6. 가장 한국적인 (중국차) 브랜드, 카페 인야 - http://goo.gl/Yej5zi

5. 착한 똘끼의 Why Not? 라떼킹 - http://goo.gl/cr0E4o

4. 지혜의 라이브러리, 위즈돔 - http://goo.gl/fecxkB

3. 일상을 미술로 미술을 일상으로, 튤립아트랩 - http://goo.gl/s2hMRq

2. Creativity가 아닌 Originality, 키티버니포니 - http://goo.gl/4Na8qg

1. 사물의 수명을 늘리는 곳, 오브젝트 - http://goo.gl/LkUqW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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