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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젝트

숨은 브랜드 찾기 #01.

홍대 골목 깊숙한 곳에 위치한 '오브젝트'는 일견 평범해 보인다.
매장 유리 외벽에 크게 쓰인 '사물'에 대한 글을 애써 외면하고 보면 더욱 그렇다. 이 곳에서 팔고 있는 이른바 '사물'들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오브젝트는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다. '현명한 소비가 시작되는 곳'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각각의 사물들에 ‘롱라이프(long life)’를 선사하는 곳이다. 사물의 롱라이프? 사물의 수명을 늘린다는 말이 알 듯 말 듯 아리송하다. 그래서 유니타스브랜드는 오브젝트를 만든 사람들 중 유세미나 대표를 직접 만났다.


하나, 쌓이는 재고에 ‘팔리는 디자인’ 입히기

“팔리는 디자인과 팔리지 않는 디자인은 분명 따로 있어요.”
오브젝트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사물은 손으로 만든 작은 핸드메이드 제품들이다. 이곳에 입주한 작가들은 처음엔 그저 만드는 기쁨에 시작했지만, 결국 팔리지 않는 자신의 작품들을 '팔고 싶어서' 오는 사람들이다.

유 대표는 팔리지 않는 디자인에는 반드시 팔리지 않는 이유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찾아내 '팔리게끔' 만든다. 오브젝트만의 감각이 살짝 더해져 창고 속 어둠에 갇혀 있던 ‘사물’들이 비로소 제 짝인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오브젝트가 사물의 수명을 늘리는 첫 번째 방법이다.


둘, 다양한 사물들이 자기만의 이야기를 속삭이는 곳

“수공예 작가 분들 중 유독 액세서리를 만드는 분들이 많아요. 액세서리가 가장 시작하기 쉽거든요. 하지만 나름의 감각이 있는 분들은 작은 것을 만들다 큰 것을 만들 수도 있고, 구슬 꿰기를 하다가 금속 공예를 할 수도 있어요. 이 선반만 해도 한 작가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죠. 처음에 구슬을 꿰서 팔찌를 가져오셨는데 감각이 있으셔서 금속 공예 선생님을 연결해드렸어요. 왼쪽의 구슬 팔찌에서 시작해 오른쪽의 금속 공예까지 하나 둘씩 새로운 작품이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서른 평 남짓한 오브젝트 매장 1,2층에는 무려 100여 명의 셀러들이 입점해 있다. 바로 ‘선반대여 시스템’ 덕분이다. 셀러들이 임대한 각각의 선반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조용히 속삭인다. 하나의 통일된 컨셉을 가진 다른 브랜드 매장들과 달리 오브젝트는 선반 하나하나가 각각의 작은 소우주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구슬 공예에서 시작해 금속 공예까지 하게 된 어느 작가의 선반 맞은편에는 자신에게 금속 공예를 가르친 스승의 액세서리들이 함께 팔리고 있다. 하나의 선반과 다른 선반이 눈에 보이지 않는 사제 관계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 부부가 평생에 걸쳐 전세계를 다니며 수집한 시계 부품들은 해체와 합체를 반복하며 크고 작은 액세서리들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당신에게 나직이 말한다. 광대한 우주, 무한한 시간 속에서 당신과 함께 같은 행성, 같은 시대를 사는 것이 너무도 가슴벅차게 기쁘다고.


셋, 상품 가치에서 사용 가치로

“오랫동안 MD를 하면서 버려지는 옷들이 아까워서 수년간 그런 옷들만 입었어요. 그래도 스타일 좋다는 소리를 항상 들었죠. 팔꿈치 쪽에 구멍이 나서 버려야 하는 상품에 네 잎 클로벌 패치를 만들어 붙였더니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저만의 옷이 나왔어요.”

새 옷을 만들 때면 불량이 나오기 마련이다. 나염이 조금 튀었다거나 올이 하나 나간 것 같은 사소한 이유들 때문에 아까운 옷들이 모두 폐기된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하자들 때문에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브젝트는 이렇게 쓰레기가 될 뻔한 옷들로 당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의자나 소파 같은 가구 역시 고치거나 리디자인하는 과정을 통해 합리적인 가격의 새로운 제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성급하게 만난 연인들이 그만큼 쉽게 헤어지듯이 순간 혹한 마음으로 구입한 사물 역시 금방 싫증나기 마련이다. 감성적으로 호감을 느끼되 이성적으로 합리적인 판단이 더해질 때 그 사물의 진정한 가치를 오래도록 누리며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상품 가치에서 사용 가치’로 사물에 가치를 더하는 오브젝트만의 관점은 버려질 쓰레기조차 오래도록 간직하고픈 나만의 특별한 무엇으로 변신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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