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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브리커

숨은 브랜드 찾기 #10. 

나는 모든 사람에게 ‘자기만의 눈’이 있다고 믿는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 눈을 뜨고 사는 것은 아니다. 2014년, 대한민국에서 사는 우리 중 대다수는 살아남기 위해, 이기기 위해 눈을 질끈 감고 달리느라 레일 밖의 것은 보지도, 느끼지도 못 하며 살아왔다. 그런 의미에서 브랜드 패브리커는 감각이 마비되고 여유가 실종된 채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일종의 자극제이자 치료제이다. 

웨딩드레스로 만든 꽃 모양의 조명 ‘Illusion’은 하루의 수명을 다 한 후 어두운 옷장 속에 갇혀 있던 웨딩드레스가 빛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이야기가 되어 보는 이의 마음을 비춘다. 또 다른 대표작인 ‘Monster’는 에폭시와 결합된 천 조각들이 녹아 총천연색으로 흘러내리는 모습을 그대로 굳혀 남긴 패브리쳐(fabriture, fabric과 furniture의 합성어)이다. 버림받았던 것들이 자신의 색을 뿜어내는 순간이 포착된 모습은 아름답다 못 해 경이롭다. 유니타스브랜드는 오로지 자신들의 방식과 속도로 움직이며 길을 내는 브랜드 패브리커의 두 브랜더, 김동규, 김성조 대표를 직접 만났다. 

쉴 새 없이 이야기하는 수다쟁이 브랜드, 패브리커 

“가구는 패브리커의 얼굴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장인 가구 브랜드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가구를 만드는 것은 늘 벽에만 걸려 있는 액자 속 예술이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음껏 만질 수 있고, 서서 보다 다리가 아플 때면 그 위에 털썩 하고 편히 앉을 수도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폐 천 조각들을 모아서 가구를 만든다는 이유로 우리를 업사이클링 브랜드로 보기도 하지만, 우리는 굳이 업사이클링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갇히고 싶지 않다. 업사이클링을 선택한 것은 버려진 것들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김동규, 김성조 대표에게 가구, 공간 등 브랜드 패브리커의 모든 작업은 자신들의 눈에만 보이는이야기들을 세상에 들려주는 표현이다. 흔히들 이야기라 하면 언어로 표현된 말이나 글만을 떠올리지만, 김동규, 김성조 대표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이야기를 언어라는 틀에 담는 대신에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감각적인 실체로 풀고자 한다. 모순적이지만, 패브리커의 두 이야기꾼에게 버려진 천 조각들은 버려졌다는 것 때문에 이야기의 소재가 된다. 동대문에서 버려진 천 조각들이 쌓여 있는 것을 발견, 그들만의 눈으로 천 조각들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상상하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이야기 전개(지갑, 가방 등의 작은 소품을 만드는 일반적인 업사이클 방식)가 진부하다고 느낀 이들은 폐 천을 소재로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야기를 써내려 간다. 가구를 만들고 남은 나무 조각 가장자리에 청바지 천을 겹쳐 나이테를 확장시키기도 하고, 에폭시와 천을 결합해 대리석처럼 단단하게 만들기도 하면서. 그렇게 누군가에게 쓸모 없다는 이유로 버려진 것들은 브랜드 패브리커를 통해 새로이 가치를 얻고 다시 태어난다. 

브랜드로 자유로워진 예술가, 패브리커 

“돈은 분명 중요하다. 입에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은 이상 예술가는 스스로 돈을 벌 수 있어야 한다. 작품 활동을 하면 할수록 더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귀영화를 누리겠다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를 상상할 때면 재빨리 스케치를 남기지만, 그것을 제약 없이 표현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예술가 스스로 브랜드되는 것, ‘브랜딩’이야말로 오늘의 예술가들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 아닐까? 자본으로부터 순수해야 한다는 미명 하에 예술은 늘 고고한 채 하며 가난을 강요해왔다. 있는 집 아들도, 유학파도 아닌 패브리커의 김동규, 김성조 대표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집에서 경제적으로 독립, 지난 5년 동안 작품 활동 겸 경제 활동을 하며 지내왔다. 이는 그들의 작품을 보고 매력을 느낀 각종 브랜드 관계자들이 그들을 먼저 찾았기에 가능했다. 남들의 잣대에 맞춰 스스로의 스타일을 지우고 규격화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색을 강렬하게 발한 덕분이다. 그 방법으로 ‘김동규, 김성조’, 두 사람은 각자의 이름을 내걸기 보다는 ‘브랜드 패브리커’를 런칭, 능동적으로 브랜딩 해왔다. 브랜드는 예술가들이 스스로 추구하는 가치나 세계를 저버리지 않으면서도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방법이 된다는 점에서 예술을, 예술가를 자유롭게 하는 하나의 가능성이다. 

경계에서 길을 만들며 걸어가는 사람들, 패브리커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 길을 내는 것이 브랜드 패브리커의 지향점이다. 소위 ‘예술’은 물 위에 뜬 기름처럼 일상과 유리되어 있고, ‘디자인’은 클라이언트의 요구대로 결과물을 내는 기술로 여겨지고 있다. 우리 둘 다 그 두 갈래 중 어떤 길로도 가고 싶지 않았다. 졸업 후에 무엇을 하며 살까, 함께 고민하던 중 어디에도 길이 없다면 차라리 길을 만들며 가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브랜드 ‘패브리커’를 런칭, 어느덧 5년이 흘러 지금까지 왔다.”

브랜드 패브리커의 두 브랜더는 패브리커를 브랜드라 말하기가 부끄럽다 했다. 유니타스브랜드는 브랜드란 단번에 만드는 것(making)이 아니라 되어가는 것(becoming)이라 믿는다. 그렇기에 유니타스브랜드의 관점에서 패브리커는 분명 브랜드이다. 보다 정확하게는 브랜드가 되어가고 있다.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 길을 내겠다는 일념으로 자신들만의 속도와 방법을 고수한 채 꿋꿋이 길을 가고 있다. 수개월 동안 하나의 작품에만 매달리는 그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공정을 간소화하거나 대량생산을 해서 효율성을 높이라는 충고를 하지만, 김동규, 김성조 대표는 단호하다. 많이 팔기 위해서 작업 방식을 바꾸거나 속도를 내지 않는다. 당장 팔기 위해 작품의 가치를 대변하는 제품 가격을 내릴 생각도 전혀 없다. 보이지 않는 미래를 보며 현재를 사는 그들은 브랜드가 하루 아침에 찍어내듯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무르익는 열매와 같다는 브랜드의 비밀을 이미 알고 있었다.




* '패브리커'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 공식 사이트: www.fabrikr.com
-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Fabri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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