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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아트랩

숨은 브랜드 찾기 #03.

혹 당신이 우리나라의 예술가 중 누구를 가장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고 가정해보자. 그것도 카테고리별로. 먼저 음악은? 정명훈, 금난새, 장한나… 작가는? 신경숙, 이해인, 법정 스님… 영화는? 박찬욱, 안성기, 봉준호…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미술은? 글쎄… 두 명의 인터뷰어는 이 질문을 이동일 대표로부터 받고 서로의 얼굴만 물끄러미 쳐다보아야 했다. 


“신정아를 위시한 몇몇 분들... 이들이 대중에게 노출되는 대표적인 미술가에요. 이렇듯 미술가들이 대중에게 비춰지는 건 비리로 얼룩져 있거나, 학력을 위조하거나, 거의 그런 모습들이죠.” 


섣불리 부인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같은 현실은 오늘날 우리가 미술 그리고 미술가들에게 갖는 괴리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배고픈 창작 생활을 당연시하고, 대중들은 미술만큼은 ‘다른 나라의 예술’ 정도로 여긴다. 하지만 보고 느끼고 상상하고 누리는 것으로서의 미술에 대한 질문을 이어가다 보면 무언가 분명 잘못되어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이후 이어지는 인터뷰는 이러한 질문과 그 답들에 대한 이야기다. ‘미술의 본질’을 다시 한 번 고민해보자.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꼭 필요한 이들에게 판매하고, 대중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으로 원하는 작품들을 구매할 수 없을까? ‘감히 미술을 상업화하려 들다니’라는 엄숙한 분노를 잠시 내려놓고 이어지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라. 이제껏 보지 못했던 또 하나의 꼭 필요한 시장이 당신의 눈에도 보이게 될지 모르니.  


▶ 질문을 던지는 사람, 예술가 


“크리스마스에 산타가 온다고 믿으세요?”

“지금도 달나라에 토끼가 산다고 생각하세요?” 

인터뷰 초반, 그는 불쑥 이런 질문을 던졌다. 미술의 ‘미’자도 모르는 인터뷰어에게 미술계 주류에서 15년을 있었다는 그가 던진 질문들은 당황스러울 뿐이다. 의도가 궁금했지만 그냥 솔직하게 답했다. 더는 산타를, 달나라의 토끼를 믿지 않는다고. 


예술가는 질문을 통해 본질에 다가가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먼저 보고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음악의 선율로, 화폭의 그림으로 옮겨 함께 누릴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온갖 과장된 친절과 포장으로 가득한 오늘날, 예술가만큼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이를테면 사랑)를 추구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한탄한다. 정작 우리 사회에는 진정한 미술이 무엇인지, 미술이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미술인이 없다고. 그 결과 그들 외에는 아무도 그들의 작품에 공감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저는 여전히 산타가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주러 온다고 믿어요. 산타는 처음에는 형식이 아니었어요. 루돌프를 타고 선물을 주러 오는 산타(이미지)는 코카콜라 회사에서 만들어낸 마케팅의 산물이었죠. 진짜 산타는 사랑이에요. 누가 어떤 선물을 주건 사랑을 담으면 산타는 분명 있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산타가 없으면,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했던 형식대로의 산타가 없으면 산타가 없다고 말해요. 본질을 볼 수 있게 하는 것, 꿈을 꿀 수 있게 하는 것, 질문을 계속 던지며 결국 산타가 있다고 믿게 하는 게 진정한 예술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 기술자에서 프로로, 개인에서 시스템으로 


“미술은 하나가 아니에요. 음악에도 클래식 장르가 있으면 다른 쪽에 SM, YG 같은 기획사가 만드는 아이돌 음악이 있잖아요. 또 다른 쪽엔 인디 음악을 하는 분들도 있죠. 미술 역시 여러 장르가 있는 게 당연한데 우리나라에는 단 하나의 미술밖에 없어요. 바로 미술 사조와 전문 용어들만 읊어대는 아마추어 미술이죠. ‘캔버스에 그린 그림을 어떠한 조명 아래서 전시해야 한다’라는 건 역사의 승자가 정한 형식일 뿐 미술의 본질은 아니에요. 피카소나 유명 화가들을 말할 때도 어떤 한 두 작품에 담긴 개인적인 스토리에 공감하는 게 아니에요. 그들이 남긴 히스토리와 작품에 담긴 정신에 모두가 공감하는 거죠. 그래서 위대한 거고요.”   


‘미술가’ 하면 상반된 두 개의 이미지가 동시에 떠오른다. 집안이 좋아 아무 걱정 없이 고상하게 미술관을 오가는 사람 혹은 스스로 귀를 자른 반 고흐처럼 외로움과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 하지만 이동일 대표는 ‘예술은 배고픈 게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그건 옛날 이야기라는 것이다. 배고픈 10년을 버티면 어느 순간 거장이 될 수 있다는 헛된 꿈을 꾸는 젊은 예술가들이 안타까웠던 그는 현대 미술의 흐름을 잡고 있는 영국의 YBA(Young British Artist)에 눈을 돌린다. 그리고 직접 미술기획사 ‘아트액터’라는 브랜드를 런칭, 지금까지 300여 명의 작가들을 발굴, 교육하고 있다. 데미안 허스트, 제프 쿤스 같은 영국의 유명 작가들 역시 개인이 아니라 YBA라는 팀이 움직여 키워낸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바우하우스 같은 무브먼트가 나오면 안 되죠? 앤디 워홀을 봤으면 그를 따라 할 게 아니라 우리만의 미술을 보여줄 수 있어야죠.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큐비즘, 하이퍼 같은 이론에 매여 있어요. 그래서 여기는 색을 이렇게 넣어 봐, 하는 식의 기술적인 부분에만 집중하죠. 저는 작가를 발굴, 양성, 기획하는 것부터 시장에 나가게 할 때까지 체계를 잡아서 미술계의 시스템을 새로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대중들에게 이들의 그림을 직접 유통시키는 거죠. JYP처럼요. 물론 정명훈과 같은 클래식 음악을 하고 싶으면 당연히 유학을 가야죠. 하지만 모든 사람이 백남준이 될 수는 없잖아요? 천재적인 재능이 없다면 스스로 자신이 가진 재능의 크기를 정확히 알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저마다 자신의 그림을 알아보는 사람들을 만나 미술을 계속할 수 있어요.”  


▶ 모이를 끊고 안전한 울타리를 넘다, 매스 시장으로 


“우리 미술 시장에는 유통 시스템이 없어요. ‘누구누구 갤러리’ 하는 식의 상업갤러리들은 사실 동네 구멍가게에요. 그러다 ‘뭐 좀 해야 하지 않아?’ 해서 일 년에 한두 번씩 모여 장터를 여는 게 아트페어에요. 하지만 행사가 열리는 인사동 어귀의 전시장엔 정작 이를 감상해줄 대중이 없어요. 전 그때마다 도대체 사람들 아파트가 몇 평이길래 50호, 100호짜리 그림을 걸 수 있을까 의아했죠. 가격은 또 얼마나 비싼 줄 아세요? 저 같아도 절대 사지 않을 작품을 남한테 팔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과감하게 생활 속 시장을 만들게 된 거에요.”    


“닭이 왜 날지 못하게 된 줄 아세요? 울타리와 모이 때문에 더는 천적에게 쫓기지 않게 됐고, 그 때문에 날개가 퇴화해버린 겁니다.” 


성곡 갤러리에서 시작해 상업 갤러리, 공공 프로젝트, 문화예술위원회, 대학교 등을 두루 거친 그는 어느 순간 미술 사조와 어려운 학술 용어들을 중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에서 시작한 질문은 ‘과연 예술은 무엇일까’ 등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2012년까지 대안 공간 ‘팀프리뷰’에서 10년 동안 3000여 명의 옐로칩 작가들(유망한 젊은 작가군) 발굴하고 양성했으나, 이들을 먹여 살리기에는 힘에 부쳤다. 그래서 처음으로 시장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언제까지 정부 보조금이나 후원금 같은 모이만 주워 먹으며 살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고상한 전시장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나간다. 이후 7년간 유랑 악단처럼 전국의 백화점들을 찾아다녔다. 책 속의 텍스트로 만났던 대중(즉, 남녀노소의 사람들)을 그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직접 대면한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쉽진 않았다. 생활 속 아트페어를 외치면서도 정작 백화점에 가서는 기존의 전시장처럼 벽을 세우고 부스를 만든 후 조명을 비췄다. 매스컴의 주목을 받으며 흥행은 했으나 판매는 시원찮았다. 그리고 오랜 고민 끝에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는다. 매대와 행거에 그림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그림들을 5호, 10호 등의 작은 사이즈로 규격화했다. 바코드를 달아 교환과 환불도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대학교 도서관, 대형 서점, 병원 등에서 저마다 그들이 원하는 작품들을 가지고 그들을 만났다. 그리고 전한다. 2013년을 마무리하는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의 미술이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다고.  


그렇다. 원래 예술의 정신은 사회의 제약이나 자본의 논리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하지만 예술가들이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치고 시대정신을 표현하려면 ‘누구나 예술 할 수 있는 여유와 환경’이 역시 반드시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모쪼록 ‘튤립아트랩’을 통해 인사동 어느 골목에 숨어 있던 미술 하나가 튀어나와 평범한 누군가의 큰 기쁨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누군가는 예술의 전당에서 클래식 음악의 매력에 흠뻑 취하고, 다른 누군가는 아이돌의 공연에 열광하며 젊음을 만끽하는 오늘날의 음악처럼, 문학처럼, 영화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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