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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다움

사흘에 한 권, 작심삼책 #04.


그는 공업고등학교 전자과를 나왔다. 뒤늦게 디자인 공부를 시작했지만 내신 14등급인 그를 받아주는 화실은 없었다. 안쓰럽게 여긴 학원 선생님의 도움으로 전문대에 입학했다. 제대 후 사회에 나왔더니 IMF가 터졌다. 대학 때 배운 포토샵 스킬로 어렵게 웹디자인 일을 시작했고, 7년 후 가구점을 차렸지만 쫄딱 망하고 말았다. 다시 회사에 들어가 투잡을 뛰며 빚을 갚았다. 하지만 이 일에 경쟁력이 있는지 여전히 확신할 수 없었다.


2시간 걸리는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고, 결국 친구들과 함께 회사를 만들었다.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앱도 하나 만들었다. 이 앱의 이름은 '배달의민족', 이야기의 주인공은 김봉진 대표이다. 그가 고백한 경력에선 도무지 특별한 점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실패에 기죽지 않고 끝없이 도전하는 끈기의 한 사람이 보인다. ‘배달의민족’ 역시 마찬가지다. 남이 뭐라든 자신의 스타일로 같은 일을 다르게 한다. 비교하지 않고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간다.


좋은 브랜드란 어떤 브랜드일까? 그 브랜드에 '답다' 혹은 '스럽다'라는 말을 붙여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즉 '배달의민족'에 '답다'라는 말을 붙여보는 것이다. '배민답다' 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뭔가 세련되지 못하지만 친근감이 가는, 여자친구에게 ‘너는 먹을 제일 예뻐'라고 말하는 넉살 좋은 청년 하나가 떠오르는가? 그렇다면 성공이다. 수백억의 투자를 받고, 대기업 부럽지 않은 복지로 유명하다 해도 우리 기억 속에 여전히 B급의 정서를 담은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다면 성공이다. 그들다운 모습을 지키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투자를 받기 위해 동네 인근의 전단을 모두 끌어모아 일일이 입력하던 시절부터 그들의 '배민다움'은 싹을 틔우고 있었다. 어느 눈 많이 오던 날의 이벤트 선물은 (눈을 퍼내는 도구인) '넉가래'였다. 그다음 이벤트 선물은 '소녀시대'가 모델로 나온 '비타500' 아홉 병을 모두 모아주는 일이었다. ‘써니’ 사진이 담긴 제품을 찾기 위해 경기도 일대를 뒤졌다는 무용담을 이 책은 전한다. 이런 일화들이 모여 입소문을 타고 인터넷을 떠돌기 시작했다. 기능으로 차별화가 힘든 수많은 배달 앱 중 '배민'이 두각을 나타낸 이유는 바로 이런 ‘배민다움' 때문이었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좋은 브랜드가 될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케이스스터디로 삼을 생각일랑은 아예 마시길. 당신은 김봉진 대표가 아니기 때문에 때수건을 사은품으로 주며 '다 때가 있다'는 문구를 써선 안 된다. '잘 먹고 한 디자인이 때깔도 좋다!'는 광고 문구를 디자인 잡지에 실으면 욕을 먹을지도 모른다. 대신 그들의 미약한 시작의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얻을 수는 있다. 가장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할 수 있다. 1인기업 1년 차인 나의 가장 화두이기도 하다. 지금의 ‘배달의민족'이 하는 고민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살아남는 기업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자기다움'을 만들고 지켜간다는 것이다"


- '배민다움' 중에서



* 이 글은 매거진 '나는1인기업가다' 9월호에 투고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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