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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위한 스몰스텝 (상)

스몰 스텝 스케치 #21.


하루 중 가장 즐겁고 흥미로운 일이 한 가지 있다. 그건 뉴스나 블로그 포스팅 등의 컨텐츠를 매일 스크랩하는 일이다. 예전 같으면 일일이 종이 신문을 오려서 풀로 붙이는 수고를 해야했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뀐지 오래다. 출근 길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보다가, 웹사이트에서 읽을만한 글을 발견할 때마다, 단 한 번의 클릭으로 관련 프로그램에 저장해두기 때문이다. 나는 주로 '포켓(Pocket)'이라는 앱을 사용하지만 비슷한 프로그램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수백 개에 달하는 전문가의 블로그는 ‘피들리(Feedly)’라는 프로그램으로 한 번에 받아본다. 최근에는 네이버에서 ‘디스코’란 서비스를 런칭해서 이런 ‘수집’ 작업이 훨씬 쉽고 간편해졌다. 벌써 이런 기사 수집을 해온지 7년을 바라보고 있다.


주로 수집하는 기사들은 내 ‘관심사’를 대변한다. 가장 관심있는 주제 중 하나는 다름아닌 ‘브랜드’다. 전에 없던 기발한 방식으로 저마다의 제품과 서비스로 경쟁하는 모습은 언제나 흥미롭다. 생존이나 성장을 위한 그 절박함 만큼이나 상상도 못할 방식의 새로운 마케팅 방식들을 찾아 헤매는 일은 늘 즐겁다. 물론 그것을 내가 하는 일에 적용하는 일은 ‘전쟁’에 참여하는 것과 ‘전쟁영화’를 보는 것만큼의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하지만 경우의 수를 많이 알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도 경쟁력이 된다. 더구나 그 마케팅의 방식이 한 인간의 ‘철학’을 반영하고 있을 때는 존경심까지 든다.


가장 애용하는 스크랩 프로그램 '포켓'


우리들이 흔히 가는 ‘카페’를 예로 들어보자. 최근에 이슈가 된 ‘자판기’라는 카페가 있었다. 이 카페는 손님들이 들고 나는 문을 자판기처럼 만들었다. 회색 건물 벽에 덩그라니 덜어선 핑크색의 자판기 형태의 문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실제 자판기처럼 보여 흥미를 끌었다. 꽤나 실력있는 바리스타 출신의 사장님은 자신의 카페가 더 많이 알려질 수 있도록 ‘인스타그램’에 최적화된 홍보 방식을 인테리어로 구현한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사진을 찍어 올려보고 싶은 ‘핫스팟’을 만들어내는 일이 커피 맛 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이 카페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커피’ 그 자체로 승부하는 카페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소개된다. 지금도 와이프가 자주 들르는 ‘테라로사’는 한국 커피의 본향으로 자리잡은 강릉 출신의 프랜차이즈다. 커피와 기업 문화에 대한 자부심의 인터뷰 기사 곳곳에 뭍어 있었다. 수없이 많은 대기업들이 자신들의 운영 방식을 배워가지만 자신 있다고 했다. 좋은 커피와 그 커피를 다루는 숙련된 직원들에 대한 믿음, 그것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기업 문화에 대한 대표의 자부심이 그대로 묻어나는 기사를 읽으며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 카페에 가고 싶어졌다.


'자판기'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카페' 기사를 포함, 그동안 모은 관련 기사들이 한 눈에 보인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것은 어떤 요리사가 훌륭한가라는 질문과 일맥 상통한다. 글쓰기와 요리는 기본적으로 ‘스킬’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보다 위에 있는 것은 어쩌면 ‘글감’과 ‘재료’라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훌륭한 글과 맛있는 음식을 결정하는 것은 8할 이상이 재료 그 자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글을 잘 쓰기 위해, 요리를 잘 하기 위해 ‘재료’를 모으는 일에 게으르다. 내가 7년 이상 같은 주제의 글들을 모으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좋은 글은 다름 아닌 좋은 ‘소스’에서 온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것이 당장 쓰이는 글감이 아닐지라도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글들은 일단 ‘스크랩’한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찬찬히 그 글을 다시 곱씹어 읽는다. 소스 자체로 매력 넘치는 글들도 많지만 그 자체로 완성도 높은 글을 자주, 많이 만난다. 좋은 글은 필사를 통해 꾸준히 옮겨 써본다. 그것이 ‘글쓰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기본 덕목이자 최고의 수련 방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관심의 대상은 브랜드 외에도 많다. 좋은 책과 영화는 기본이고 서점과 다큐멘터리에 관한 정보는 꾸준히 스크랩한다. 메모와 기록에 관한 스킬이나 펜에 관한 정보, 일 잘하는 방법에 관한 노하우를 수집하는 것도 빼놓지 않고 수집하는 주제들이다. 스마트폰을 위시한 새로운 IT 정보는 물론 하는 게임이 아닌 ‘보는 게임’에 대한 관심도 많다. ‘자기계발’에 관한 정보들도 꾸준히 저장해놓는다. 하지만 이런 스크랩을 위해 특별히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출근길 버스나 지하철에서, 일 하다가 무언가에 막힌 듯한 느낌이 들 때면 아무 때라도 스크랩을 위한 써핑 여행을 떠난다. 이쯤 되면 일이 아니라 여가인 셈이다. 쇼핑을 즐기는 여자분들이 느끼는 아이쇼핑의 즐거움을 나는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나도 비슷한 즐거움과 쾌감?을 이 과정을 통해 누리기 때문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있다고? 분명 그에겐 '글창고'가 있을 것이다


이런 스크랩 역시 내겐 아주 익숙한 ‘스몰 스텝’이다. 무언가 아주 작은 노력과 실천들이 어떻게 ‘유용’해질 수 있는지 체화해가는 과정이다. 이렇게 흥미로 시작한 스크랩이 언제나 유용하게 쓰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모은 수만 개의 기사와 컨텐츠들은 내가 하는 일에 아주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 새로운 글을 써야 하거나 컨설팅을 해야 할 때, 교육과정을 개발할 때 맨 처음 하는 일은 비슷한 주제의 정보들을 나의 ‘글창고’에서 검색하는 일이다. 이미 한 번의 검증을 거치는 양질의 컨텐츠들에서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수고를 줄여주는지는 나는 알고 있다. 단언컨대 글쓰기 실력은 ‘글창고’의 수준에서 결정된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다. 한 시대를 풍미한 작가나 디자이너들이 그토록 메모에 목을 메는 일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이 모두가 바로 ‘스몰 스텝’이 보여주는 실제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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