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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의 도구들

스몰 스텝 스케치 #20.

아주 어린 시절, 어쩌면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의 어느 주말 아침. 졸린 눈을 부비며 매주마다 새벽을 깨우던 적이 있었다.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좋아하는 만화영화가 그 시간에 했기 때문이었다. 볼 것이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토요일 밤마다 주말의 명화를 시작하던 시그널 음악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어떤 영화이건 중요치 않았다. 그저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그 자체에 가슴이 뛰던 시절이었다. 그와 꼭같은 마음으로 나는 주말 새벽에 거짓말처럼 벌떡 벌떡 일어났다. 아마도 원피스의 고무고무 팔처럼 한없이 늘어나는 봉을 가진 손오공의 이야기였던 것 같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책을 폈다. 이유는 단순하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새벽 시간에 책을 읽는 것이 가장 행복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책이 가슴을 설레게 하진 않는다. 졸리는 책도 적지 않다. 그러면 다른 책을 읽는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책의 모든 페이지를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오직 한 페이지라도, 아니 단 한 줄이라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그 무엇 한 가지만 있다면, 그것은 성공한 독서라는 것을.


핵심은 가슴이 떨리는 시간을 가졌느냐의 여부다. 이 시간이 기다려지는가의 여부다. 세상엔 재미있고 즐거운 것들로 가득하지만 가슴을 벅차게 만드는 일은 의외로 많지 않다. 주말의 여유를 부린답시고 오후 내내 TV를 보고 난 후는 언제나 마음이 헛헛했다. 간만의 가족 여행이라 해도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으면 돌아오는 발걸음이 기대 이상의 후회로 가득하곤 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그 순간에 몰입할 수 있느냐의 여부였다. 내가 그 시간에 얼마나 마음을 쏟고 있는가의 여부는 자신이 가장 잘 안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의 순간순간에 몰입하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이건 정말로 쉽지 않다. 우리는 언제나 맛있는 음식 앞에서 예전에 먹었거나 다음에 먹고 싶은 다른 음식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지금을 살지만 그 시간을 항상 과거에 대한 추억이나 후회,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그 시간을 채운다.


새벽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몰입을 훈련하기 위해서다. 내가 가장 끌리는 일을 하루의 맨 앞에 배치하는 것은 이런 몰입의 경험을 일상의 다른 일들로 끌고 가기 위해서다. 몰입은 절대로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자전거를 타듯 몸이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어제의 몰입의 오늘의 몰입을 약속하지 않는다. 매일 새롭게 훈련하지 않으면 내 삶을 다시금 무질서 속으로 쉽게 돌아간다. 하지만 매일 아침의 기분 좋은 몰입은 내게 하루를 살아갈 에너지를 준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실수에서 멀어지게 돕는다. 아침 독서는 단순한 책읽기가 아니다. 일종의 마인드 피트니스다. 이건 절대적으로 훈련이 필요한 영역이다. 그래서 새벽마다 책을 읽는다. 무슨 책을 읽을지는 그 다음의 문제다. 지금 이 순간에 무언가 하나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배우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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