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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 거짓말... 그리고 브랜딩

나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7년 동안 브랜드 전문지에서 글을 쓰고, 10년 이상 ‘브랜딩’ 관련 일을 하면서도 늘 이런 질문을 던지곤 한다. ‘과연 브랜딩은 기업에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이미 성공한 기업에 덧입힌 포장지는 아닌가?’ ‘컨설턴트들이 돈 벌기 위해 괜히 어렵게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질문들을 떨쳐낼 수가 없다. 게다가 요즘은 앞의 질문에 수식어 하나가 더 붙었다. 과연 ‘작은’ 기업에도 브랜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는가?


사실 ‘작은’ 기업들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작지만 이미 성공한 기업들의 스토리는 ‘사후 약방문’이자 ‘꿈보다 해몽’일 가능성이 높다. 첫 출발이 미약한 회사일수록 성공한 이후의 스토리는 극적이기 마련이다. 보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물이 더 큰 폭포를 만들어내듯이. 그리고 비슷한 환경과 처지에서 고군분투 중인 자영업자나 스타트업, 소규모 기업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희망을 보기 때문이다. 나도 ‘저들처럼’ 하면 크고 멋진, 강력한 브랜드를 가질 수 있겠구나. 실패의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따라하고 싶은 롤모델을 만난다는 것은 ‘가능성’이라는 ‘희망’을 선물한다. 새 신발을 산 날은 다른 사람의 신발만 눈에 들어오는 법이다. 성공에 목마른 ‘작은’ 기업들에 이런 브랜드의 성공이 주는 희망은 단순한 매력, 그 이상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렇게 후일담의 성공 스토리들은 그 매력 만큼이나 위험도 크다. 성공의 배경을 분석한 기사들은 그래서 조심할 필요가 있다. 세 가지 정도로 뽑아놓은 멋진 기사는 읽고 감탄하기에는 좋다. 그러나 그것을 자신의 사업에 적용하려고 들 때부터 뭔가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피팅 모델이 입은 옷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경우란 얼마나 많을까? 연애의 성공을 결정짓는 것은 소개팅 장소가 아니라 많은 경우 ‘얼굴’이기 때문이다. 어딘지 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인가이다. 그래서 성공의 이유를 액면 그대로 믿는 것은 위험하다. 성공의 이유가 ‘그들만의’ 능력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때로는 이유가 그것이 아닐 때도 있기 때문이다.


제주 맥주는 어떤 맛일까? 왜 연남동에 제주맥주라는 브랜드가 생겨난 것일까?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는 것일까?


어느 골목에서 7년 이상 죽을 쑤던 가게 하나가 8년 만에 세간의 주목을 받는 브랜드로 소개되었다. 그래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도무지 특별한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성공의 이유란게 이미 7년 전부터 해오던 방식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방식으로 실패한 사례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뭉뚱거려 ‘고객과의 관계’라고 얼버무리는 기사들을 읽는다. 그게 중요한지 누가 모른단 말인가. 하지만 ‘신뢰’에 기반한 ‘관계’라는 말은 틀린 말도 아니고 납득도 된다. 그 말이 맞다. 그러나 그 7년을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은 그 가게의 건물주가 사장의 아버지라는 대목에 가서는 동공이 흔들리고 다리가 풀리게 된다. 이런 사례는 의외로 많다.


성공한 브랜드의 이면에는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이유들이 숨어 있다. 신규 브랜드임에도 제품 리뷰 사이트에서 폭발적인 성공을 한 브랜드가 있었다. 알고 보니 그 리뷰 사이트의 대표가 친구였다. 비용이 필요한 리뷰 마케팅을 그야말로 ‘팍팍’ 밀어주었고 해당 카테고리 최고의 브랜드가 되었다. 제품 자체는 흠이 없었고 가성비도 높았지만 그 브랜드의 ‘성공 이유’라고 말하기는 서로가 멋쩍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뒷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한 평범한 마케팅과 프로모션, 심지어 패키지 디자인에까지 찬사를 보낸다. 대표의 스토리가 ‘히스토리’가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한 가지 오해 아닌 오해가 생겨난다. 과연 ‘브랜드’란 실제하는가. ‘브랜딩’이란 필요한 것인가. 돈 있는 기업만이 가능한 또 하나의 ‘포장’이 아닌가.


하지만 이 모든 오해에도 불구하고 다음의 이야기에 한 번 귀기울여 보자. 속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가지고 다니엘 핑크의 역대급 재미난 TED 동영상을 한 번 다시 보도록 하자. 이 영상에서 다니엘 핑크는 40년 이상 반복되고 있는 재미난 실험을 하나 소개한다. 압정이 담긴 종이박스와 양초를 활용해 벽에 고정 시키는 방법에 관한 실험이다. 이 실험에서 인센티브를 받은 사람들은 오히려 3분이나 늦게 문제를 해결한다. 더 많은 비용을 투자했는데도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아이러니를 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종이 박스와 압정을 따로 분리한 두 번째 실험에서는 인센티브를 받은 쪽이 압도적으로 문제를 빨리 해결한다. 압정이 종이박스에 담겼을 때는 이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어 쉽게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 그러나 압정과 종이박스가 분리되는 순간 누구라도 쉽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문제해결을 위한 도구가 명료해지자 인센티브를 받은 쪽이 훨씬 더 문제를 빨리 해결한다. 다니엘 핑크는 이 문제를 가지고 20세기와 21세기를 구분 짓는다.


마케팅은 20세기의 문제해결 방식에 가깝다. 제품과 고객과 시장이 명확하다. 고객들이 원하는 문제해결 방식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 1+1과 같은 방법으로도 고객의 눈길을 잡을 수 있다. 광고와 이벤트와 프로모션을 얼마나 많이 노출하느냐가 매출과도 직결된다. 고객들이 제품과 서비스의 존재를 알아채는 순간 어느 정도의 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TV와 신문 광고처럼 매스미디어를 활용한 광고가 효과적인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사람들의 소비 방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제품의 수는 많아지고 제품의 질은 평준화 되었다. 어떤 문제건 가격의 차이가 있을 뿐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없다. 즉 문제 자체가 단순해졌고 더 많은 자원을 가진 대기업의 제품(브랜드가 아닌)이 시장을 독점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작은 기업들이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은 고사하고 생존하는 것조차 힘든 세상이 왔다. 그래서 계열사나 협력회사가 되어 부품을 생산하거나 대기업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니치마켓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대부분 그랬다.


압정을 종이박스 '안'에 두느냐와 '밖'에 두느냐에 따라 문제해결의 속도는 완전히 달랐다.

그러나 그 시장에 최근 들어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디지털 기술과 소셜 미디어의 활성화로 ‘새로운' 기업들이 생겨났다. 기존의 회사나 유통업체의 플랫폼을 거치지 않고 제품과 소비자가 직접 거래는 방법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넷플릭스와 아마존, 에어비엔비와 우버의 성공은 그런 면에서 상징적이다. 카카오택시나 카닥, 마켓컬리나 배달의민족 같은 O2O 서비스를 떠올려 보라. 아마 시장의 전 영역에서 이런 변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이쯤에서 다니엘 핑크의 두 번째 사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기존의 대기업들은 압정과 종이박스가 분리된 상대적으로 ‘쉬운’ 문제를 풀었다. 더 많은 자원을 쏟아부으면 더 빨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순한 시장이었다. 하지만 넷플릭스와 카카오택시는 ‘문제’ 자체를 재정의했다.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시장의 문제를 해결했다. 그들의 서비스와 소비자의 문제를 직접 연결하는 방식으로. 이 방식은 다니엘 핑크가 영상에서 소개한 두 번째 문제에 가깝다. 좀 더 창의적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남다르게 문제를 풀어야 한다. 문제 자체를 재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여기에서부터 ‘브랜딩’에 대한 오해가 생겨난다고 믿는다. 마케팅은 20세기의 문제를 좀 더 ‘효율’적으로 해결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물론 그 안에서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창의적인 사고가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정해진 문제’다. 비슷한 문제해결을 위한 좀 더 싸고 믿을 수 있는 큰 회사의 제품을 잘 알리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스타벅스와 애플은 오랫동안 광고 한 번 하지 않고 그들만의 '브랜딩'에 성공했다. 온라인으로 안경을 판매한 ‘와비파커’는 기존의 안경 브랜드와는 다른 방식으로 성장했다. 시장과 제품과 소비자의 ‘숨은’ 니즈를 발견할 때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 ‘브랜딩’이 어려운 이유는 이 때문이다. ‘차별화’의 방법으로 고객과 시장을 분석하고 재해석하고, 세상에 없던 새로운 방식의 문제해결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그림책을 모아 놓은 ‘달달한 작당’. 쉼이 필요할 때면 나는 이곳에 간다. 나만의 ‘이야기’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좀 더 싼 두부를 만들면 됐다. 그러나 요즘의 두부는 제품의 질 자체로 차별화는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본의 ‘오토코마에’ 같은 두부가 탄생했고 성장하고 주목받았다. 두부를 파는 것이 아니라 ‘남성성’을 판매했다.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얘긴가 싶으면 관련 스토리를 찾아보라. 더 진하고 더 달고 더 큰 두부를 ‘마초’와 같은 이미지의 캐릭터를 붙여 팔았다. 같은 마스크팩이라도 ‘남치니’라는 캐릭터를 붙여 ‘재미’를 파는 방식으로 시장은 진화 중이다. 이런 방법이 ‘브랜딩’이다. 늘 하던 방식대로 문제를 풀 수 없다. 그런 방식의 차별화로는 소비자의 이목을 붙들 수 없다. 그래서 같은 제품과 서비스를 ‘다르게’ 파는 회사들이 점점 더 늘고 있다. 이 회사들의 방법이 ‘브랜딩’이다. 그리고 이같은 브랜딩에 소비자들은 반응한다. 21세기의 소비자들은 똑똑하다. 기존의 방식에 질렸기 때문이다. 새로운 문제해결 방식에 목말라 있기 때문이다.


마케팅과 브랜딩을 칼 같이 구분할 방법은 없다. 10여년 전 브랜드 전문지에서 일할 때만 해도 관련된 전문 서적을 찾는 것 자체가 일이었다. 이 주제로 얘기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길거리에 채이는 말이 ‘브랜딩’이 되었다. 모두가 ‘브랜드’를 만들고 아무나 ‘브랜드 컨설팅’을 이야기한다. 나 역시도 오랫동안 관련된 주제로 고민하고 글을 썼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 의미를 제대로 경험했다고 자신하기 어렵다. 그래서 구도자의 자세로 의문을 품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과연 브랜드는 중요한 것이고 필요한 것입니까?”


한참을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면 ‘작은’ 기업들에게도 그렇습니까?”


고민의 시간이 길어진다. 이미 브랜딩에 성공한 ‘작은’ 기업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치밀한 브랜딩 전략의 결과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나의 조언으로 우뚝 선 브랜드도 아직 없다. 이제 혼자 일한지 1년 째, 여전히 함께 고민 중이다. 그러나 수년 이상 관련된 일을 한 전문가들도 여전히 어렵다고 말한다. 성공한 브랜드를 소개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런 브랜드를 ‘직접’ 만드는 일은 정말 어렵다. 성공한 브랜드의 노하우를 낱낱이 까발리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말하는 ‘브랜딩’의 결과인지, 우연인지, 운인지, 건물주인 아버지 때문인지, 갑작스런 트렌드의 영향인지, 대학 동기의 아버지로부터 투자를 받은 까닭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겸손해진다. ‘브랜딩’이라는 이 세 글자에. 할 수 있는 것은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시장과 고객과 제품을 ‘달리’ 보는 것이다.  고객의 문제에 집중하고, 자신이 가진 자원의 한계를 넘을 ‘창의적’은 솔루션을 고민하는 것이다. 더 많이 시도하고, 실패하고,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다.


‘와이즐리’는 매달 8,900원에 면도날 4개를 배달해준다. 가격은 저렴하지만 면도날은 쌍둥이칼, ‘행켈’의 고향에서 만들어졌다.

이 글은 아마도 두 가지의 버전으로 따로 읽힐 것이다. 누군가에는 ‘브랜드’의 무용론을 위한 방증이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브랜딩’의 필요를 말하는 희망처럼 읽힐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브랜딩'이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 성공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브랜드의 ‘B’자도 모른채 브랜드가 된 사례는 ‘서민갑부’나 ‘세상 이런 일이’ 같은 프로그램에서도 숱하게 나온다. 여러분 동네의 유명한 떡볶이집도 이미 브랜드다. 이름이나 간판이 없어도 고객들의 ‘신뢰’를 얻어 ‘매출’을 올린다면 이미 브랜드가 아니고 무엇일까? 그러나 그 과정을 공식화된 매뉴얼로 정리할 수 있냐고 물으면 고개를 젖겠다. 수년, 수십 년에 걸쳐 자신의 일에서 일가를 이룬 이들의 노하우를 그런 방식으로 손쉽게 얻을 수 있을까. 함께 고민하고 조언을 하고 사례를 나눌 수는 있다. 그러나 몇 달 만에 거짓말 같은 솔루션을 만들어내라고 한다면 나는 거절하겠다. 그게 가능하다는 사람이 있다면 나부터 의심해보겠다.


어쩌다 ‘브랜드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결론은 다음과 같다. 이미 성공한 브랜드의 정확한 이유를 알기란 어렵다. 따라할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브랜딩은 필요하고 중요하고 가능하다고 믿는다.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그것이 21세기를 살아가는 비즈니스 솔루션이자 삶의 지혜라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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