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혼밥 천국, 지구당을 아시나요?

가끔은 혼자 밥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영화관의 스크린에 몰입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에선 좀처럼 허용되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진 않지만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대학 시절, 혼자 다니면 엄청난 루저가 된 것처럼 서너 명씩 몰려다녔던 건 여학생들만은 아니었다. 회사 생활이 오래되어도 혼자 밥을 먹는 건 뭔가 설명이 필요한 특별할 날에만 허용되었다. 그러던 내가 1인 기업이 되어 두 건의 미팅을 마치고 ‘홀로’ 찾은 식당이 하나 있다. 바로 ‘지구당’이다.


지하철 서울대입구역 2번 출구를 나와 5분 정도를 걸으면 나오는 작은 이 식당은 약 5, 6년 전 딱 한 번 찾았던 기억이 있다(인터뷰가 불가능해 취재차 찾았었다). 다행히 그 식당은 아직도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있었다. 줄을 서서 기다리던 그때의 기억에 비하면 다소 한적해 보였지만, 비밀 회동에 초대된 것처럼 인터폰으로 손님을 확인하는 모습은 그대로였다. 말없이 밥만 먹고 가는 손님들도, 손님보다 더 말없이 묵묵히 단 하나의 메뉴만을 준비하는 주인장의 모습도 그대로였다. 달라진 건 대통령의 ‘혼밥’을 걱정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혼밥'은 점점 더 늘어가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젊은이들, 국민들은 아닐지. 아니 변한게 없진 않다. 그새 지구당의 분점은 신사동을 포함해 대구 지점까지 여러 곳으로 늘어나 있었다. 하지만 그곳의 지구당은 여전히 그대로인 것만은 분명했다.


인터폰으로 손님 수를 확인 후 비로소 문을 열어준다. 대부분 혼자, 많아도 두어 명이 이곳을 찾는다.


연말이라 서점에 트렌드 관련 책이 넘쳐나는 요즘이다. 오랫동안 관련 뉴스를 꾸준히 스크랩해온 덕에 이런 책들의 내용은 초등학교 시절처럼 익숙한 뉴스들을 모아놓은 한 권의 ‘전과’처럼 보였다(물론 해석의 깊이는 전문가답게 남달랐지만). 소확행, 언택트, 워라밸, 케렌시아까지... 불황이 일상화되고 삶은 점점 더 분절화되는 트렌드는 사람들의 소비생활에 적지 않은 흔적들을 뚜렷이 남기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마트와 편의점에 넘쳐나는 1인 가구들을 위한 도시락과 포장된 간편식들이 아닐지. 혼밥을 넘어 혼술과 혼행, 혼캠이 일상화되었고, 더이상 혼자 무언가를 아는 일이 ‘루저’가 아닌 ‘스타일리시’한 라이프스타일로 변모하는 요즘이다. 그러고 보니 ‘지구당’이야말로 시대를 앞서 이런 변화를 일찌감치 읽어낸 브랜드가 아니었던가. ‘지구당’의 이름이 혹시나 ‘지구력’에서 온 것은 아닐지 의심해볼 정도로 완벽하게 지금의 트렌드에 부합하는 브랜드가 아니던가.


이곳을 처음 찾았던 그때만 해도 손님들을 인터폰으로 확인하는 불손함과 내 돈 내고 밥 먹는데 수다도 떨지 못하는 불편함을 즐기는 지구당의 시스템?이 이해되지 않았다. 맥주도 한 잔 이상은 시킬 수 없고, 세 사람 이상은 아예 받으려 들지 않는 그들의 고집을 별스럽게만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한 번쯤은 말없이 한 끼의 식사, 그 자체에만 오롯이 몰입하며 번잡스러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이런 곳이 한 곳쯤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런 식당의 모습이 하나의 트렌드가 될 줄은 예상치 못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든다. ‘지구당’은 과연 지금의 이런 변화를 미리 읽고, 서울대입구역 근처 십여 평 남짓한 부동산 옆 골목에 식당을 냈던 것일까? 글쎄다. 인터뷰하지 않기로 유명한 이곳 사장님의 고집 때문에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하지만 그건 아니다 싶었다. 그저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그들의 방식대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식당 안은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다. 말없이 밥만 먹고 간다. 두세 명이 와도 그렇다.


많은 브랜드가 그들이 의도치 않은 트렌드에 올라타 성공 가도를 달리곤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성공한 원인을 물어보면 ‘그저 열심히 했다’는 답을 듣는 경우가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그래도 무슨 다른 이유가 있겠지 싶어 물어보면 ‘성실함’ 정도의 답을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런 경우엔 취재나 인터뷰하는 입장에선 난감해진다. 도무지 쓸거리가 없기 때문에. 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화려한 답변을 하는 이들이 가짜였고, ‘글쎄요...’ 하며 인터뷰이의 속을 태우던 그들이 진짜였다. (모두가 그렇진 않지만) 화려한 언변으로 자신의 비즈니스 무용담을 몇 시간이고 읊어대던 이들의 브랜드는 몇 년 후 좋지 않은 뒷소문을 남기며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머리를 긁저이며 뜸을 들이던 이들은 작지만 튼튼한 브랜드로 남거나 성장하고 있었다.


지구당은 후자에 속했다. 묵묵히 있는 그 자리에서 자신들의 방식을 고수했다. 손님들을 가려 받는 까다로움과 큰 소리와 수다를 허용치 않는 이상한 엄격함, 일주일에 두 번 바뀌는 단 하나의 메뉴, 정적 속에서 오로지 한 끼 식사 이외의 다른 것을 허용치 않는 ‘심플함’은 한때 유행했던 ‘심야식당’의 늦은 식사를 떠올리게 한다. 그 드라마에서 주인장과 손님의 수다만을 ‘음 소거’한 모습 그대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건 그런 불편과 불친절을 감수하는 손님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구당이 소리없이 프랜차이즈로 지방의 분점을 내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이 시대와 트렌드의 변화를 읽어낸 결과라고 보긴 어렵다. 다시 말하지만 그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삶의 방식을 가지고 식당을 내었을 뿐이다. 그러다 우연히 트렌드의 변화에 올라탔고 그 결과로 프랜차이즈라는 작은 성공의 열매를 맛보았을 뿐이다.


메뉴는 단 두 개, 오야꼬동과 규동. 그나마도 요일별로 한 가지만 제공되어 늘 '한 가지'만 판다.


많은 이들이 변화를 읽고 그 변화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트렌드’ 책을 읽는다. 필요한 일이다.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지식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그 트렌드도 결국 돌고 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변화와 상관없이 자신의 삶의 방식을 찾아내고 묵묵히 그 삶을 지키는 사람은 더욱 차별화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강원도의 원목만을 갈고 닦아 8만 원짜리 비싼 도마를 만들어내는 ‘은곡도마’의 장인은 과연 지금의 트렌드를 예상하고 그 일에 평생을 바칠 수 있었을까? 그 도마에 음식을 올리고 사진을 찍으면 누구라도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도마를 깎고 또 깎았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그 일의 가치를 스스로 발견하고 즐거움과 보람에 남은 삶을 걸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평생 한 번 오는 트렌드의 파도에 올라탔을 것이다. 세상을 읽는 안목과 식견도 필요하겠지만 결국 ‘지구력’이 필요한 일이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 일의 가치를 스스로 누릴 수 있는 사람의 특권은 아닐지. 트렌드 책 몇 권을 읽고 세상의 흐름을 읽고 돈을 벌려는 사람들에게는 요원한 능력일 것이다. 그런 책을 읽고 젠체 하려는 나 같은 사람들에겐 범접하기 어려운 내공을 가진 사람들일 것이다.


지구당은 아마 모를 것이다. 밥 한 끼 먹고 식당을 나와 자신들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을 줄은. 그러니 변치 말고 그 모습을 지켜주기를. 지나친 프랜차이즈로 원래의 모습과 초심을 잃지 말아 주기를. 그래서 다시 몇 년 후 그곳을 찾았을 때 그 모습 그대로 있어 주기를. 그래서 또 한 번 더 지구당의 ‘지구력’을 칭찬하는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주기를. 그리고 그런 고집스러운 가게들이, 제품들이, 회사들이, 브랜드들이 더 많아지기를. 그리고 이런 기대가 별난 욕심이 아닌 그런 세상이 오기를. 그때는 오야꼬동이 아닌 규동을 먹으며 이런 수다를 다시 한번 떨 수 있게 되기를. 그저 묵묵히 바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 고객의 'Pain Point'는 무엇인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