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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인야

숨은 브랜드 찾기 #06.

우리의 경복궁은 아름답다.

하지만 북경의 자금성 앞에서 그 거대함과 웅장함에 맞설만한 단어를 놓고 고민할 수 밖에 없는 것도 한국인이다. 우리 문화의 원류가 중국이라는 점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조적 재해석을 통해 원조를 넘어선 사례들은 인류는 물론 브랜드와 마케팅의 역사에서 숱하게 확인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이러한 경험이 우리에게 반드시 풀어야 할 ‘질문’ 하나를 던지기 때문이다. 과연 ‘가장 한국적인 것’이란 어떤 것일까 하는 질문 말이다.

뉴욕타임스 1면에 비빔밥 광고를 싣고, 한복을 대중화하는 것도 좋다. K-POP을 알리기 위해 쇼를 하고, 한식당을 차리는 것도 좋다. 하지만 조금 더 세련되고 전략적인 접근 방법은 혹 없을까? 모두를 위한 정답은 아닐지라도 확실히 카페 ‘인야’의 조은아 대표는 그 답을 알고 있는 듯했다. 가장 중국적인 ‘중국차’를 '파리의 노천카페' 컨셉의 매장에서 팔고 있지만, 그녀는 이미 가장 한국적인 차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었다. 그 노하우와 전략이 궁금하다면 신촌 대학가의 통닭 골목 깊숙한 곳 2층에 위치한 카페 ‘인야’를 찾아가 보자.


▶ 하나, 나는 ‘중국차’를 판다

“왜 굳이 ‘중국차’인지 많이 묻는다. 어차피 종자가 중국산이니 모두 중국차가 아니냐는 논리다. 하지만 중국과 한국은 같은 차 문화권이라 해도 확연히 다르다. 종자 역시 한국에서 오랜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나름의 차별화된 맛을 만들어냈다. 한국차의 이러한 고유성을 삭제한 채 그냥 ‘차’로 구분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저는 중국차를 하는 사람이다’고 분명히 밝힌다."

“’계승’이라는 말이 불편하다. 기존의 것을 그대로 이어가는 것에 그치는 것 아닌가. 현상 유지를 넘어 윗세대로부터 받은 것을 응용해서 더 꽃 피울 수 있어야 한다.” 

커피가 그렇듯 차 역시 산지와 문화의 차이에 따라 다양하게 구분된다. 그중 개인적 취향으로 선택한 것이 ‘중국차’라고 그는 답한다. 군인인 아버지와 패션 사업을 하는 어머니는 그 바쁜 일정 중에도 일주일에 한 번씩 있는 딸과의 티타임 약속을 반드시 지켰다. 마침 커피를 못 마시는 부모님이 차를 즐기는 탓에 그녀는 어릴 때부터 한국과 유럽, 중국의 다양한 차를 경험하게 된다. 결국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를 따라나선 프랑스 샹젤리제 거리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중국차’를 파리의 ‘노천카페’에서 팔아보리라 결심하게 된다.

중국의 차를 알아갈수록 그는 ‘한국차’에 대한 더 깊은 애정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우리 땅에 직접 다원을 꾸미고 한국 종자를 뿌려 찻잎부터 재배하는 기존 방식 대신, 중국에서 들여온 차를 한국의 재료들과 배합하는 ‘블렌딩’의 방법을 통해 이를 다시 중국으로 역수출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제 중국사람들조차 그녀가 전하는 ‘한국차’를 이해하고 좋아하게 됐다는 것이다.

▶ 둘, 오직 진심이 전략이다

“중국에 차를 배우러 갔는데 막상 배울 곳이 많지 않았다. 간신히 상해에서 한 곳을 찾았지만, 중국어가 서툴어 똑같은 코스를 다섯 번이나 수강했다. 그 덕분에 중국어가 늘어 통역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수 있었고, 통역 과정에서 만난 고위 인사들을 통해 중국차의 장인들을 자연스럽게 소개받았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차를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 있는 직원 둘 다 1년 넘게 월급을 주지 못했다. 2011년 가을, 오픈 때의 첫 손님이 바로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직원이다. 내 블로그 글을 읽고 휴가 때마다, 심지어 크리스마스이브나 새해에도 카페를 찾아왔는데 궁금해서 물어보니 차를 배우고 싶지만 학생이라 돈이 없어 그랬다고 하더라. 다른 직원은 이미 합격한 대기업을 포기하고 나와 카페를 택했다. 첫 반년은 돈이 없어 월급을 주지 못했고, 나머지 반년은 주려 해도 받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의 결심을 실현하기 위해 중학교 때 이미 경영학과 진학을 결심한 그는 대학 입학 후 중국 유학을 결정한다. 처음 찾아간 학원에서 5번을 반복 수강한 까닭에 8개월 만에 HSK 시험에서 만점을 받았다.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중국 한인 신문사를 찾아가 대학 합격의 경험을 살린 칼럼을 제안, 무려 1년 반이나 기고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알게 된 과외 학생 학부모의 소개로 통역을 시작한다. 그리고 통역을 하며 만나 만난 중국 고위층 관료들을 통해 차 명인들을 스승으로 소개받는다. 결국 외국인에게는 응시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 국가공인 차 자격증까지 딴 후 한국으로 돌아온다.

이 과정에서 억대 이상의 창업 비용을 마련했지만 오픈 후 잔액은 겨우 70원. 여력이 없던 그는 블로그 외에 별도의 마케팅 활동을 하지도, 할 수도 없었다. 신촌 대학가 골목 깊숙한 곳, 그것도 2층에 마련한 카페가 혹 망하지 않을까 싶은 블로그와 직접 쓴 책의 독자들이 ‘인야’를 돕기 시작했다. 그렇게 입소문에 힘입어 알음알음 방문하는 손님들로 인해 1년을 간신히 버티자 그제야 매출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마케팅을 ‘하지 못해’ 블로그와 책에 쏟은 진심이 결과적으로 최고의 전략이 된 셈이다.

▶ 셋, (그저) 바쁜 당신에게 지금 필요한 것, 차 한 잔 

“사람을 차분하게 한다는 점에서 차는 바쁜 현대인에게 선물 같은 존재다. 우려 마셔야 한다는 것이 거추장스러울 수 있지만 개선할 방법을 찾으면 된다. 잠시 걷거나 여유 있게 숨쉬기조차 쉽지 않은 일상에서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효과적인 휴식을 주는 게 차가 아닐까?”

흔히 피부미용이나 다어이트와 같은 효능 때문에 차를 마신다고 한다. 그래서 녹차 티백이나 찻가루를 잔뜩 챙기지만, 근처 카페의 아메리카노 앞에서 굳은 결심은 허무하게 무너진다. 물론 중국식 다구나 영국식 티세트를 갖춰놓고 티타임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밥을 제때 챙겨 먹는 것도 힘든 일상을 사는 많은 이들에겐 다른 세상 이야기이다. 조은아 대표는 커피가 몸에 좋아서 마시는 게 아니듯, 차 역시 건강에 좋다고 해서 약처럼 ‘챙겨 마셔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는 차가 사람을 차분하게 하는 ‘정적인’ 음료라는 것을 처음에는 인정하기 싫었다. 누구나 차를 편하게 접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에 현대인들과 차가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는 말처럼 들려서다. 워커홀릭이라 불릴 정도로 바쁘게 사시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자신 역시 누구 못지않게 성격이 급한 편이지만 조은아 대표의 주위는 늘 여유가 넘친다. 그는 차에 그 공을 돌렸다. 차를 마실 때만큼은 자리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고 생각할 여유를 갖게 된 덕분이라 했다.

▶ 무엇이 진정한 ‘오리지널’일까?

‘캐나다 구스’ 때문에 한바탕 홍역을 치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애니팡 2’로 인해 또 한 번 SNS의 타임라인이 뜨거운 요즘이다. ‘르네상스도 결국 모방 아닌가’하는 투자사 임원의 항변에서는 억울함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손쉬운 모방이 결과적으로 건강한 시장의 성장을 막는다는 사실 역시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쉽고 편한 성공의 길을 옆에 두고는 누구도 어렵고 힘든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그런 창조만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것들을 재해석할 수 있는 ‘창조적’ 전략을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카페 인야의 조은아 대표는 ‘중국차’를 배우는 과정을 통해 ‘한국차’를 재발견했고, 그 결과 중국차와 한국차의 ‘블렌딩’이라는 제 3의 길을 찾아낼 수 있었다. 오리지널에 대한 깊은 이해와 경험이 만들어낸 그들의 차는 더 이상 단순한 ‘모방’이 아니다.

물론 경복궁은 그 소박함과 자연스러움, 무엇보다 우리의 수 백년 역사와 함께 했다는 점에서 중국의 자금성과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한국차가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또 하나의 새로운 ‘오리지널’이다. 카페 ‘인야’의 ‘발견’이 뿌듯한 것은 이러한 오리지널 브랜드의 탄생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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