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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답게 일하는 법, 삼분의일

내 이름 자체가 독특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흥미로운 이름의 브랜드를 만날 때면 항상 끌린다. 센스 넘치면서도 나름의 의미를 가진 이름이라면 더욱 그렇다. 곱씹어 볼수록 그 이름이 그 브랜드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 때면 더욱 그렇다. '삼분의일'이 그랬다. 이들은 매트리스를 판다. 우리가 매일 밤 침대 위에 만나는 그 매트리스 말이다. 한 번은 갸웃하게 되는 이름 앞에서 '평생의 삼 분의 일은 침대 위에서 보낸다'는 짧은 설명을 듣고선 '아하!'  그랬다. 분명 내부적으로 왈가왈부하는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의미는 있지만 매트리스 이름 같지 않다'는 말도 있었을 법 하고 '띄어쓰기는 어떻게 하나' 하는 디자이너의 고민은 혹 없었을지 모르겠다. 여하튼 이 브랜드는 뭔가 '생각 있는' 브랜드임을 연상케 하는 그런 인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아무리 이름이 의미있고 독특하면 무엇 하겠는가.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팔리지 못한다면.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생면부지의 매트리스는 사람들에게 '팔리고' 있었다. 그것도 짧은 시간 내에 아주 많이.


매출이 사업 초기에 비해 '50배'가 팔렸다는 소문이 SNS에 돌기 시작했다. 더 정확히는 그들의 블로그에서 그 소식을 읽었다. 그 글을 쓴 이사는 가파르게 솟아오른 그래프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마치 하늘을 향해 쏘아올린 작은 공처럼 '주목'을 끄는 데만 성공했을 뿐이었다. 그 매출을 올리기까지의 과정이 나는 더 흥미로웠다. 그래서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그를 만났다. 그리고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이야기를 들었다. 쟁쟁한 침대 브랜드들을 제치고 그들만의 존재감을 이제 막 드러내기 시작한 브랜드라 더 흥미로웠다. 그리고 실제로 만난 그들의 이야기는 더 흥미를 넘어 '생각할 걸'를 던져주었다.


일단 그들은 판매 채널을 최소화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오직 '29CM'에만 입점했다. 담당 이사는 브랜드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했다. 흠... 브랜드 가치라... 일단 그에 대해서는 천천히 묻기로 했다. 그 다음 들은 이야기는 의도가 담긴 리뷰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어떤 업종의 어떤 브랜드도 '바이럴'을 중시 여기는 시대에. 모든 영업과 마케팅의 출발점을 '인플루언서 찾기' 골몰하는 작금의 디지털 시대에 '리뷰'를 받지 않겠다니. 심지어 어설픈 리뷰는 쓰지 말아달라는 요청까지 한다니 기가 찼다. 하지만 그 다음의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형식적인 리뷰 대신 1시간 이상의 인터뷰를 부탁한다고 했다. 그렇게 올라온 고객의 후기 250개에 이른다고 했다. 고객의 속마음을 제대로 읽기 위한 그들만의 몸부림이었다. 이 브랜드에 뭔가가 있다는 생각이 든 건 바로 그 지점에서였다.


그러고도 두어 번을 더 만났다. 공동 창업자이기도 한 마케팅 이사는 선 굵은 목소리에 어두운 색 수트를 멋지게 입을 줄 아는 미혼의 훈남이었다. 그리고 그와의 만남이 계속될수록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단어 하는 '집요함'이었다. 이들은 그야말로 집요했다. 매트리스 하나만큼은 제대로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뿐 아니라 그 과정을 '기록'하고 '전파'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었다. 우선 이들은 매우 구체적인 KPI를 내부적으로 공유하고 있었다. 단순히 '내구성 좋은 폼'을 개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10년 이상 사용 가능한 폼'을 개발하는 것이 그들이 세운 성과 지표였다. 그저 '통기성 좋은 폼'을 개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시중 매트리스 대비 통기성 20배의 폼 제품'을 개발하는 것에 모든 노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그냥 '유해물질 없는 폼'을 개발하는데 머무리지 않고 '포름알데히드 배출량 0인 폼'을 개발하는 것이 그들 최고의 지상 목표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집요함은 거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담당 마케팅 이사는 그들의 일하는 모든 방법을 빼곡히 기록한 '매뉴얼'의 일부를 내게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출,퇴근 시간과 휴가 정책을 위시한 회사 규칙부터 회사 문화와 사용한 도구들이 빼곡했다. 유형별 회의 방법과 회의 필수 요건은 물론이고 제품의 생산과 협력사 관리, 운송 및 반송 방법과 고객만족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들을 낱낱이 명문화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자신들이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고 설명해줄 수 있는 기준으로서의 '브랜딩'이 살아 숨쉬고 있었던 셈이었다. 듣고 보는 나는 숨이 막혔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확인할 수 있었다. 만일 그들이 말한대로 일하고 있다면 그 자체가 '브랜딩'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일생의 삼분의 일을 침대 위에서 보낸다. 따라서 침구가 우리 일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 작은 매트리스 브랜드는 그 '어마어마한 시간'의 의미를 그들이 만든 제품에 담고자 했다. 그리고 그들의 '업'에 어마어마할 만큼의 '집요함'을 아로새겼다. 그들의 이와 같은 가치는 그들의 일하는 과정에 고스란히 스며들었고, 그 결과는 1000명의 소비자에게 보낸 리뷰 요청에 300여 명이 꼼꼼히 대답하는 놀라운 피드백을 그들에게 전해주었다.


누군가는 말한 것이다. 이들이 캐스퍼와 같은 온라인 매트리스 브랜드의 카피 브랜드에 불과하다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제품과 비즈니스 모델을 카피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주목한 건 누구든 카피할 수 있는 제품과 비즈니스 모델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일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하는 방법으로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글에 세세히 담지 못한 고난과 역경을 애써 전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당연하면서도 지루하고 따분할만큼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업'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눈에 보애는 매뉴얼로 만들어내며, 서로 얼굴을 붉히면서까지 지켜내는 곳들은 많지 않다. 내가 눈으로 본 '삼분의일'은 그런 브랜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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