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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보틀을 기다리며

제임스 프리먼은 교향악단의 클라리넷 연주자였다. 하지만 연주만큼 커피도 사랑했다. 2002년의 어느 날,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한 식당에 월세 600달러로 귀퉁이 장소를 빌린다. 그리고 주문을 받는 즉시 커피콩을 저울에 달아 한잔의 정성스러운 핸드드립 커피를 팔았다. 그곳은 곧 지역명소로 떠올랐다. 이른바 '블루보틀'의 시작이었다. 물론 그의 성공 이면엔 여러가지 상황들과 투자의 배경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오늘은 그렇게 복잡한 이야기는 건너뛰기로 하자. 오직 커피에 집중해 보기로 하자.


사실 그의 성공의 이면엔 '스페셜피 커피Specialty Coffee'의 대중화라는 트렌드의 변화가 숨어 있었다. 미국의 '인텔리젠시아' 커피나 우니나라의 '프릳츠'처럼 원두 그 자체에 대한 열정으로 승부하는 커피브랜드들이 점점 더 큰 사랑을 받던 참이었다. 다만 힙스터 커피 문화가 주도하던 커피 문화는 매니아들의 문화에 더 가까웠다. 그들만의 축제였다. 하지만 블루보틀은 최고의 품질 보다는 좀 더 소비자 친화적인 네이밍과 깔끔하고 소박한 브랜딩으로 승부했다. 한 마디로 그들은 너무 긱geek하지 않은 길을 간 것이다. 과하지 않고 정제된 이미지를 지켰다. 신선한 커피의 신맛이 이질적이지 않게 다가가기를, 커피는 굉장히 많은 다양성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길 바랬다.


성공하는 카페의 조건은 있는 것일까? 있다면 대체 어떤 것들일까? 나는 그 중의 하나가 커피를 즐기는 자세와 문화에 관한 것이라고 본다. '라운드 케이'는 뉴욕에서 한국의 다방 문화로 성공을 거둔 카페다. 그들의 메뉴 중에는 '에그 카푸치노'와 '까만 라떼'가 있다. 왠지 (먹어본 적은 없지만) 오래 전 다방의 계란 띄운 쌍화차가 떠오르는 메뉴들이다. 그저 단순히 독특하고 새로운 메뉴가 아닌 '한국의 골목 문화'를 팔고 있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카페 '진정성'의 성공은 상징적이다. 세상에 밀크티는 많다. 그러나 그들은 밀크티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커피와 홍차를 대하는 '그들만의 자세'를 팔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그들의 성공의 비밀 뒤엔 어쩌면 이런 '애티튜드attitude'가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제품과 서비스도 무한 경쟁에 내몰리는 시대다. 수백년의 전통을 한 달음에 만들어 낼 수도 없고, 세상에 없던 신기술로 승부를 보는 시대는 지나간지 오래다. 하물며 커피일까. 한 켠에선 900원 짜리 커피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고, 다른 한 편에선 커피가 아닌 공간(부동산)으로 승부를 보는 카페가 승승장구하고 있다. 가격으로도, 분위기로도 승부하기 어렵다면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여러가지 답들 중 하나를 '블루 보틀'이 제시하고 있는 건 아닐까. 바로 '커피를 대하는 자세' 같은 것 말이다. 너무 싼티 나지도, 너무 Geek스럽지도 않게, 커피를 향한 무한한 애정을 핸드 드립 커피를 내리는 과정과 정갈한 인테리어, 훈련된 바리스타의 서비스로 또 다른 차별화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바로 '애티튜드' 아닐까. 커피와 손님을 대하는 그들의 '자세' 말이다. 그들만의 독특한 커피 '문화' 말이다.


p.s. 그런 블루보틀이 한국에 온다고 한다. 강남이나 가로수길이 아닌, 다름아닌 '성수동'에. 그들이 커피를 대하는 자세는 입지 선정부터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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