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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친절해도 괜찮아, 퍼니주키친

오래 된 가게였다. 혹자에 의하면 서울숲 인근에 수제화 거리가 생길 때부터 이미 오픈해 있었다고 한다. 달팽이 로고가 인상적인 이 가게는, 하지만 친절과는 거리가 먼 가게였다. 12시 정시 오픈 이전에는 절대로 먼저 문을 열어주는 일이 없었다. 선불은 기본이고 물, 장국, 반찬 등은 셀프인데다가 1인 1주문이 원칙이었다. 외부 음식 반입 금지는 기본이고 튀김류는 5개 이상, 타코야끼는 10개 이상이어야 포장이 된다고 했다. 현금으로 결제하면 타코야끼를 서비스로 준다고 했지만, 글쎄다. 나는 이 불친절한 집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유를 한동안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아니다. 한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긴 했다. 무엇보다 맛있다는 거였다. 메뉴는 돈부리, 면, 튀김, 카레 정도? 일본식 가정식 집이나 아자야끼 집이라면 기본으로 있을 법한 그런 메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낮은 기대 탓이었는데 만족도가 높았다고 고백해야겠다. 이런 저런 검색을 해보니 낮은 고정비와 가격으로 음식의 품질에 투자한다는 얘기도 들은 것 같다. 서비스 대신 효율을 따진 결과로 그렇게 '불친절'했던 것일까? 아무튼 그 집은 언제나 기다리는 사람들로 긴 줄을 이루곤 했다. 마치 욕쟁이 할머니집에서 욕을 먹고? 가는 사람들처럼. 그들은 불친절을 감수하고 그 맛집을 찾아가곤 했다. 마지 못해 따라가던 나도, 곧잘 가벼운 점심 때면 떠올리는 가게가 바로 '퍼니주키친'이었다. 누군가에게 정리해서 이 집의 특징을 말해준다면 아마 다음의 세 가지 정도를 말해줄 수 있지 않을까?


좀 더 삭삭한 말투로 쓰면 어디가 덧나나 했었는데...


첫 번째 차별화, 이유있는 불친절


"저희 '퍼니주키친'은 맛집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기다렸다 드실만큼 맛있지도, 그다지 친절하지도 않은 '동네 평범한 작은 식당'일 뿐입니다."


가게의 한 구석에 놓여 있던 이 문구를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굳이 줄을 서서 기다리지 말라는 이말은 어떻게 보면 '불친절'하게도, 어찌 보면 '근자감'으로 읽히기도 한다. 30분 웨이팅은 기본이고, 이들은 자주 문을 다았다. 4인 테이블엔 5인 이상이 앉아야 했고 1인 식사시는 합석이 당연했다. 심지어에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을 싫어한다는 소문도 들었다. 하지만 당연시 된 '친절' 대신 맛에 투자한다면 이야기는 달리진다. 마치 서울대 입구역 근처에 있는 '지구당'처럼. 선불 시스템에 현금결제까지 유도하던 이 집의 불친절은 '효율을 위한 선택'이었을까? 친절이 아닌 '맛있는' 밥을 판다는 점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지만. 글쎄다. 대단한 친절을 바란 것은 아니지만 그것도 주인장의 색깔이라면 색깔일터. 밥집에서 밥만 맛있으면 되지 하는 심정으로 넘어가곤 했다.


두 번째 차별화, 일본 감성


두 번째로 꼽을 수 있는 이 집의 특별한 점이라면 그야말로 동네의 평범한 작은 식당이라는 점이다. 혼밥하기 딱 좋은 일본 가정식의 느낌으로 가득했다. 심플 라이프나 까모메 식당을 떠올리게 하는 이 조그만 식당에는 작은 간판 만큼이나 디테일하고도 개성 넘치는 소품으로 가득했다. 빈티지 느낌으로 가득한 귀여운 그릇이나 통조림 병, 내추럴함으로 가득한 나무 선반이나 바스켓이 그랬고, 오래된 선풍기나 전화기는 물론 펜화 일러스트와 페인트 붓등이 아늑한 느낌의 목조 가구로 가득한 이 집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만일 내게 일본인 친구가 있다면 딱 그 집에 초대받아 간 느낌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볼 정도였다.


모든 불만을 사라지게 만드는 맛, 그리고 착한 가격.


세 번째 차별화, 가성이 인생 맛집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집을 특별하게 만든 점은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다는 점이었다. 가츠동, 카레로 유명한 이 집은 누군가에게는 '인생맛집'으로 통했다. 최저 2,400원에서 최고 6,000원까지 가벼운 점심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착한 가격으로 찾는 이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그렇다고 이 집 근처에 갈만한 맛집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 더 대단하다 할 만했다. 내가 그 집을 찾아가던 즈음, 성수동은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던 때였다. 성수동 갈비골목으로 알려진 이 골목엔 '대성갈비'나 '성수족발' '비사벌 전주 콩나물 국밥집'이나 '소녀방앗간' 등의 이름난 맛집으로 즐비했다. 그 즈음해서는 '윤경양식당'이나 '할머니레시피' '서울스낵'등의 막 기세를 올리기 시작한 가게들도 적지 않았다. 그래도 '가성비'와 '맛'을 생각하면 항상 가장 먼저 리스트에 오르던 집었는데...


얼마 전 그 집을 찾을 수 없다는 지인의 말을 흘려 들었다가 아예 가게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 버렸다. 가장 먼저 찾아온 건 아쉬움이었고, 두 번째 찾아온 감정은 뜨는 동네 성수동의 어두운 미래였다. 이토록 오래된 맛집도 견디지 못할 정도로 '젠트리피케이션'이 심하다니. 조금 섣부른 생각일지는 모르겠으나 한동안 핫하다가 바람처럼 흩어진 골목들이 생각나 쓸데없이 작은 분노가 바람처럼 일다가 사라졌다.


자연스러운 일이라면 좋겠다. 백종원의 말처럼 실력 없는 가게라서 문을 닫은 거라면 좋겠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조금은 슬픈 일이라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고집스럽게, 자기 색깔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의 가게는 '살아남았으면' 싶은 것이다. 그래서 골목골목마다 여러가지 이유로 생계를 넘어 보이지 않는 가치를 만들어가는 가게들이 점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브랜드가, 가치가 별것인가. 저마다의 이유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결과가 생존을 넘어 명성으로 이어진다면 그런 가게가 바로 브랜드가 아니고 뭐겠는가. 불친절하다는 불명예를 감수할 만큼의 맛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치'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부를 수 있을까. 그래서 혼자 속으로 작은 결심을 한 가지 했다. '퍼니주키친'이 자리를 잡고 가게를 다시 열면 꼭 한 번은 다시 찾아가 보기로. 그리고 그 '불친절'의 이유를 꼭 한 번 다시 물어봤으면 싶다. 내 생각과는 다른 전혀 엉뚱한 이유를 답한다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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