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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해도 괜찮아, 에버레인

2010년, 스물다섯 살의 청년 마이클 프레이스만은 잘 다니던 벤처 캐피탈을 그만 두었다. 대신 창업을 선택했다. '에버레인'이라는 패션 브랜드였다. 이유는 간단했는데, 왜 7달러짜리 셔츠가 50달러에 팔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회사는 설립 5년 만에 기업 가치 2억 5천만 달러(약 2800억)를 홋가하고 있다. 전형적인 성공 스토리가 식상한 것처럼 들린다고? 조금만 더 얘기를 들어보자. 일반적인 회사의 성공 방식과 다른 길을 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 회사는 '3무 경영'이 특징이다. 매장, 광고, 할인이 없다. 이른바 급진적 투명성(Radical Transparency)을 모토로 한다. 내가 투명하게 팔아보자, 원자재 가격이 내리면 가격도 내리겠지?, 스물 다섯의 청년이 던진 이 작은 질문이 수억 달러짜리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이제 조금 흥미로워졌다고? 세 가지로 정도로 요약해서 조금 더 자세히 이 회사를 알아보자.


첫째, 가격의 투명성이다.


놀라지 마시라. 이들은 진짜로 원가True Cost를 공개했다. 25달러 짜리 인너웨어 한 장의 원 재료비는 4.79달러, 인건비 3.7달러, 관세 98센트, 운송비 50센트로 총 원가는 10달러 정도이다. 여기에 이윤 15달러를 더해 판매가가 책정되었다. 소재와 부자재, 공임을 더한 가격에 보통 2.3~2.6배를 곱한 가격이 판매가가 된다. 이 모든 정보는 소비자들에게 공개된다. 뭐지? 이 자신감은? 하고 놀라는 새에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브랜드들이 생겨났다. 칸투칸과 브라켓디바이 같은 브랜드들이다. 이 가격의 투명성은 곧장 소비자들의 신뢰로 이어진다. 일은 안하고 원가 계산만 한거 아닌가 싶은 의구심을 가진채 일단 그 이유를 한 번 들어보자.


"우리는 고객이 제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이들은 가격을 공개하는 이유를 이렇게 웅변한다. 솔깃한 말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커피의 원가 타령도 지겨운 요즘이다. 그래서 이들의 급진적인 투명성에 다시 한 번 매력을 느낀다. 믿음은 둘째 치고 생각이 신선하다. 일말의 의심은 남겨 두고 나머지 두 가지 이유를 들어보자.


이다지도 '착한' 사람들. 이렇게도 '독한' 브랜드...


둘째, 제조 과정도 투명하다.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유니클로는 절대로 자신들의 공장을 공개하지 않는다. 어느 일본 작가는 이 점을 추적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중국 노동자들의 현실을 고발하기도 했다. 유니클로의 놀라운 가격이 누군가의 희생으로 인한 것이라는 점은 꼭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더라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다만 이 글은 르포 성격의 글은 아니므로 '에버레인'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들은 직원 수와 근속 기간, 근무환경, 복지까지 모든 것을 공개한다. 미국, 중국 등의 공장 위치를 공개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들이 처음으로 '데님'을 생산할 때는 적합한 곳을 찾아 베트남까지 찾아 갔다. 에버레인가 같은 철학을 가진 공장을 찾기 위해서다.


“모든 소비자가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이 어디에서 어떻게 온 것인지 잘 모른다. 사람들은 점점 이 옷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과정에 대해 알기를 원한다”


그들의 철학은 공허하지 않다. 이 데님 공장에서 나온 물은 마실 수 있을 정도로 혁신적인 정화 공정을 만들어냈다. 이 뿐 아니다. 란제리 공장으로 낙점을 받은 스리랑카의 MAS라는 공장은 타 공장에 비해 월급이 높은 것은 물론이고, 직원들을 위해 교육과 의료지원, 금융 상담까지 해준다고 한다. 이 또한 급진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쯤 되면 꼭 딴지를 거는 사람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에버레인이 중시하는 투명성에 대해 사람들은 '그냥 잘 팔려고 쇼하는 거지?'라는 의심의 눈길을 날렸다. 하지만 데님을 런칭하는 과정을 보며 이런 비판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진짜배기'가 만든 제품에는 너그러워지는게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칸투칸' 떠올랐다면... 우연은 아니다. :)


셋째, 트렌드를 읽는 눈이 있었다.


속옷 브랜드하면 떠오르는 브랜드는? 단연코 빅토리아 시크릿 아닌가. 섹시 이미지, 속옷을 입은 천사, 뭐 이런 걸로 대변되던 란제리 시장의 광고 이미지는 이제 촌스러운 것이 되었다. 소비자들의 란제리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평범한 소녀들을 모델로 내세운 Airie는 승승 장구 중이다. '웰빙 란제리'라 불리며 각광받는 중국의 NeiWai도 같은 전략이다. 실제 사이즈 모델, 건강한 이미지의 광고가 가장 세련된 것으로 인식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에버레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미니멀 디자인'을 선택했다. 그래서 섹시함에서 탈피한 새로운 스타일의 란제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우리는 속옷이 섹시하게 보이거나 레이스로 장식 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재단과 모양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당신이 어떻게 느끼는지에 관한 것이지 당신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관한 것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해보자. 일종의 요점 정리다.


'에버레인'은 우선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이해하고 있었다. 이 점이 그들을 패스트 패션이 아닌 슬로우 패션으로 용기있게 옮겨가게 했다. 또한 고객이 무엇이 원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과 해답을 갖고 있었다. 공급자가 아닌 소비자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철학'에 매이지 않았다. 앞서 얘기한 3무 경영 중 하나인 매장을 오프라인에 런칭함으로써 철학에 함몰되지 않는 또 한 번의 급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적어도 말만 번드르한 기업은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지점이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똑똑해지고 있다. 그에 맞춰 기업들도 달라지고 있다. 에버레인의 예를 들여다보면 이전의 회사들이 가진 나름의 원칙과 관례들을 판판히 깨는 데서 그들의 사업을 시작했다. 상상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소비자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야 기업도, 브랜드도 달라질 수 있으니까. 이런 회사들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흥미로운 부분이다. 하지만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창조가가 될지,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치고 말지는 아직 좀 더 지켜보아야 한다. 문제는 '지켜보아야 할' 회사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 지금도 돌연변이 같은 이런 회사들이 우후죽순 돋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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