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시내 외곽, 5평 남짓한 작은 시계 가계가 하나 있다. 이름은 '놋토(Knot)', 매듭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2014년 오프라인 매장 없이 온라인으로만 시계를 판매했다. 맞춤시계였다. 그런데 런칭 후 첫해에 목표 판매량인 5,000개를 넘겼다. 이후 2016년 부터는 매월 1만 개의 시계를 생산해야 할 정도로 수요가 폭발했다. 도쿄, 오사카, 요코하마, 후쿠오카... 2017년에는 해외에 첫 지점을 오픈했다. 놀라운 일이다. 스마트폰의 등장은 '시계의 필요'를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버린지 오래다. 그런데도 왜 유독 '놋토'만은 이같은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는 것일까? 대체 무슨 비밀이 숨어 있길래 이 시대에 다시금 시계의 필요를 다시 불러온 것일까? 그래서 드는 생각.
이 시대의 우리에게, 시계란 무엇일까?
나 역시 애플 워치를 매일같이 차고 다니지만 시간을 확인하는 일은 거의 없다. 가끔씩 진동으로 알려주는 알람 정도를 확인할 뿐이다. 놋토의 창업자도 같은 생각을 했다. 시간을 확인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기능이 약해질 것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시계를 '패션'으로 정의했다. 렌즈와 의료기술의 발달로 안경이 도구가 아닌 패션으로 통하는 것처럼, 시계의 역할도 유사하게 변할 것임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그래서 취향을 저격하는 디자인에 집중했다. 놋토 시계는 헤더와 스트랩의 조합 만으로도 5,000개 이상의 조합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시계의 고향이 '일본'이란 사실을 잊지 마시라.
놋토는 놀랍게도 'All made in Japan'이다. 경도 1500 이상의 사파이어 글래스, 롤렉스와 같은 유리, 게다가 놋토의 모든 모델에는 일본제 고성능 무브먼트가 달린다. 작은 부품부터 스트랩 가죽에 이르기까지 일본산 최고의 재료와 기술을 활용한다. 이 뿐 아니다. 일본의 2대 태너리인 토치 가죽가 히메지 가죽을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정밀 금속 가공 기술을 자랑하는 하야시 세이키, 현존하는 몇 안 되는 전통 시계 제조 공장인 셀렉트라, 교토의 직물 장인인 쇼엔 쿠미히모, 일본의 하이 비트 무브먼트의 자존심인 시티즌... 일본 전역에 있는 자인들과 계약을 맺고 고품질의 재료와 부품을 납품받는다. 입이 쩍 벌어진다. 가격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도대체 이런 고품질의 재료를 쓰면서 어떻게 1만 엔대의 가격을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비밀은 바로 '골목 매장'에 있다.
놋토는 도쿄 외곽에 있는 기치조지, 그것도 역세권에서 떨어진 골목에 첫 매장을 오픈했다. 일반적인 시계 매장의 오픈 공식에 완전히 반하는 결정이다. 비용 때문이었다. 또한 완제품이 아닌 맞춤형 판매를 통해 재고 리스크를 줄였다. '시계 브랜드의 유니클로'로 불릴 정도로 제품의 기획에서 판매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직접 관리했다. 이같은 일종의 SPA 비즈니스 모델이 유통 마진과 제반 비용의 최소화를 가능케 했던 것이다. 온라인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한정판' 마케팅도 주효했다. 새로운 오프라인 매장을 열기 위해서 '영구 회원'이라는 자격을 핵심적인 리워드로 제시하기도 했다. 영구 회원에게는 평생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한정판 시계에 몇 번째 투자자인지를 각인해주기도 했다.
사람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시계가 아닐지 모른다.
튀는건 싫지만 남들과 같은 건 더 싫은 '도쿄의 감성'이다. 마치 뉴요커처럼, 시계를 통해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고자 원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기존의 시계가 가진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어야 했다. 시계 본체와 스트랩, 버클 등을 따로 판매했다. 오프라인 매장 방문자는 모든 시계 부품을 자유롭게 조합하고 착용해볼 수 있다. 특별한 공구 없이도 쉽게 스트랩을 갈아끼울 수 있다. 헤드 부분의 바늘부터 스트랩 부분의 스틸 색상까지 모두 선택이 가능하다. 모든 제품은 유리판이 없는 선반 위에 일렬로 정렬되어 있다. 웹사이트 역시 각 옵션을 선택할 때마다 조합의 결과를 이미지로 보여준다.
시장을 바꿀 수 없다면 룰을 바꿔야 한다.
레드불은 자양강장제가 아닌 '에너지 드링크'로 스스로를 재정의 했다. 스와치 역시 '시간을 확인하는 시계'로서의 오리지널 아이디어를 완전히 바꾼 후에 성공할 수 있었다. 드비어스는 다이아몬드의 평가 기준을 더욱 세분화함으로써 기존의 경쟁자들을 따돌릴 수 있었다. 놋토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스로를 시간을 확인하는 도구가 아닌 감성적인 패션으로 재정의함으로써 특별해질 수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은 어떤 일인가. 그 일에 대한 명확한 정의 없이는 이같은 차별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시계'를 만드는 경쟁자는 많다. 하지만 '도쿄의 감성'을 연출하는 일은 놋토만이 가능한 일이다. 지금 당신은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그 일은 어떤 정의를 가지고 있는가. 그 답을 정확히 찾을 수 있을때에야, 비로소 다른 정의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내가 스스로를 '브랜드 컨설턴트'가 아닌 '브랜드 스토리 파인더'로 재정의했던 것처럼. 물론 완벽한 답은 여전히 찾고 있는 중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