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나를 '브랜딩'한다는 것은...

며칠 전 우연히 스타트업의 대표를 만났다. 연말에 초대받은 가벼운 술자리였다. 다행히? 평소에 쓰던 앱의 창업자라 만남도 대화도 즐거웠다. 직원 10여명의, 내년도 매출은 20억을 바라보는, 3년차의 크지도 작지도 않은 스타트업의 대표는 무슨 고민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브랜딩'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전에 없던 새로운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뜬구름 잡는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닌 두 발을 땅에 굳게 딛고 선 30대 중반의 이 대표는, 다음과 같은 경험과 고민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는 결국 사람이 문제라고 했다. 워라밸은 자신에게 먼 얘기라고 했다. 치열하게 일하는 사람이 좋다고 했다. 그래서 성과급과 스톡 옵션을 '일 잘하는' 직원에게 몰아준다고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작 떠날 것을 염려하는 직원은 '일 잘하는' 직원이라고 했다. 연봉을 동결해도, 심지어는 깎아도 그렇지 않은 직원은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일을 잘한다는 것의 기준에 있어서 다소간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내 주변만 살펴보아도 매일 불평을 쏟아놓는 동료들은 쉽사리  회사를 나가지 못했다. 정작 회사를 자신있게 나설 수 있는 사람은 오히려 일 잘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문득 들었던 생각, 직장 속에서 자신을 '브랜딩'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저 '열심히'만 일하면 되는 것일까. 대표의 눈에 들도록 새벽까지 일하는 모습을 보이면 다 해결되는 것일까. 오르는 연봉만큼 자신의 몸값도 함께 오르는 것일까. 어쩌면 핵심은 그것이 아닌지 모른다. 야근의 핵심은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일에 몰입하고 성과를 내는데서 오는 희열의 결과가 아니라면 야근처럼 소모적인 선택도 없을 것이다. 다만 그 몰입과 성과의 자리까지 다다르기 위해선 워라밸의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고, 그날 만난 대표의 생각이었다. 자신의 자리와 업에서 전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 그것이야말로 한 사람이 브랜딩되는 과정의 처음이자 모든 것이 아닐지. 그들은 한 마디로 '자기답게' 일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 사실이 자연스럽게 주변에 알려지고 전파되면서 '브랜드'가 되어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날 만난 대표는 '브랜딩'을 묻자 회사의 로고와 컬러를 이야기했다. 네이밍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큰 돈 들이는 일로 생각하고 있었다. 돈을 벌고 회사가 안정화되면 그때 고민할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했다. 브랜딩이 그리 거창하고 어려운게 아니라고 역설했다. 자신이 왜 이 어려운 사업을 선택했는지, 그 어려운 일에 새벽까지 동참하는 직원들의 동기 부여는 어디서 시작되는지,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 일해오고 있는지, 그 일하는 방식이 어떻게 주변 동료들에게 전파되고 있는지, 그러한 회사의 독특한 문화에 열광하는 팬덤들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는지, 창업자가 그러한 문화를 전파하는 인플루언서가 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세줄 일기를 권했다. 대표 자신이 돈 이상의 열정과 비전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구현하는 아주 작은 실천들의 기록이 그 브랜드의 '브랜드다움'을 만들어가는 스토리텔링의 재료가 될 거라 했다. 그렇게 4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잔소리같이 들리진 않았을까. 지금도 얼굴이 뜨거워진다. 그렇다면 나는 나를 어떻게 브랜딩해가고 있는가. 40대의 남자가 혼자 일한다는 것은 사실상 백수와 프리랜서의 일상을 오가는 위태위태한 모양새다. 그러나 나는 어느 때보다 내가 하는 일이 즐겁고 재미있을 따름이다.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일상이지만 두려움만큼이나 기대도 크다. 내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이니만큼 그 일 자체에 어느 때보다도 몰입한다. 그러자 사람들이 자꾸만 새로운 일거리를 가져다주고 연결해주었다. '스몰스텝'에 열광하는 동지(同志)들이 자꾸만 늘어가고 있다. 나는 이 스몰스텝을 살아 있는 동안 지속할 것이고, 더 많은 스몰 스테퍼들과 함께 변화의 기록들을 전파할 것이다. 브랜딩이 결코 거창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일상의 작고 사소한 반복들을 통해 만들어내는, 그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Driving Force라는 사실의 증거를 만드는 일에 보다 큰 열심을 투자할 것이다.


이날 만난 대표에게서도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흘러넘쳤다. 단순히 엑시트Exit를 바라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겉멋에 찌든 스타트업의 일반적인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투자할만 하다. 꼭 돈이 아니라도 기대를 투자할만 했다. 언젠가 이 기업이 그가 하는 사업에 두각을 나타낸다면, 나를 만난 그 과정 자체도 브랜딩의 일종이라 끄적거릴 수 있지 않을지. 그의 열정과 열심에 대한 스토리를 아무런 댓가없이 전파할 마음에 그날 저녁 내 마음에 조용히 들어왔으니까. 나를 브랜딩한다는 것은, 스타트업을 한다는 것은, 사업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매일의 반복되는 작고 사소한 과정들을 눈에 보이는 성과로 빚어나가는 일이다. 남들과 다른 '매력'의 눈뭉치를 조심스럽게 굴리는 일이다. 그 눈뭉치가 비탈을 만나 커지는 과정은 하늘에 맡길 일이고. 나는 오늘도 다만 내가 하는 일에서 재미와 몰입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그날 나는 그렇게, 또 하나의 작은 눈뭉치를 뭉칠 수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계의 필요, 놋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