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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들리, 너의 이름은...

브래들리는, 시계 이름이다. 실물의 모습은 딱 두 번 보았다. '로우로우' 매장으로 직접 가방을 사러 갔을 때였다. 첫 인상은 '크다'였다. 왠지 모르게 기품있어 보였다. 시계 가장 자리를 채운 작은 쇠구슬?이 무광으로 옅게 빛나고 있었다. 시계침을 대신하는 역할인듯 했다. 그 후로 다시 한 번 이 녀석?을 만난 것은 교대 역 근처의 오픈마트에서였다. 검게 탄 주인 아저씨의 거친 손목 위의 시계가 묘한 이질감을 주었다. 하지만 안 어울린다고는 할 수 없었다.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어떤 이유로 이 시계가 이 아저씨의 손목에 다다를 수 있었을까? 어떤 사연 같은 거라도 있지는 않을까. 물론 나는 그 가게를 그냥 나왔다. 이게 바로 이 시계의 '힘'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시계의 탄생 스토리는 남다르다. 어느 날 미국에서 유학중이던 한 학생의 옆에 시각 장애인 친구가 앉았다. 그가 시간을 물어 보았다. 하지만 그의 손목엔 장애인용 시계가 있었다. 그가 물었다. 시계가 있는데도 왜 굳이 다시 물어보냐고. 그 친구가 말했다. 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는 이 시계를 사용하는 순간 자신이 시각장애인임을 주변에 광고하는 셈이 된다고. 그래서 시간을 물어보았노라고 답했다. 그 순간 그는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음성이 아닌 단지 '만지는 것'만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가 있으면 어떨까 하고. 그리고 또 한 가지를 더 생각해냈다. 그 시계는 멋있어야 하겠다고. 비장애인도 탐낼 만큼 멋진 디자인의 시계여야 하겠다고. 그래서 그 시계가 장애인을 위한 시계인지조차도 모르게 해야겠다고. 그날부터 그의 손 위에서 하나의 시계가 탄생하기 시작한다. 바로 브래들리의 탄생 이야기였다.


많은 이들이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브랜드 스토리를 만들어달라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답하곤 한다. 브랜드 스토리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라고. 이 말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화려한 포장이나 의도적인 의미부여가 아닌, 그 브랜드가 원래 가지고 있던 독특하고 가치있는 생각이 아니라면, 그 어떤 브랜드 스토리도 필경 무의미할 거라는, 그런 의미다. 브랜드의 핵심은 '차별화'이고, 그 차별화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제품력'에서 출발한다. 제품이 좋지 않은데 광고나 프로모션이 효과적일리 없다. 그것이 효과적이라면 사기가 아니고 뭐겠는가. 하지만 그 제품이 '진짜'라면 만들어진 이유가 있고, 그것이 탄생하기까지의 어려움은 어쩌면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쉽게 쓰인 시는 감동을 주지 못한다. 세상의 진짜들은 대부분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나같은 사람이 흥분할 때는 바로 그런 '진짜 이야기'를 만날 때이다.


사실 이 시계의 이름 브래들리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여한 상이용사의 이름이다. 미국 군인 '브래들리 스나이더'는 군 복무 중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게 된다. 하지만 그는 용기를 잃지 않고 도전해 2012년 런던 패럴림픽에서 두 개의 금메달과 하나의 은메달을 목에 건다. 좌절이 아닌 도전을 선택한 그의 선택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런 사람들 중에는 바로 이 브랜드, 브래들리가 있었다. 브래들리는 영특하게도 그들의 이야기를 전할 사람으로 이 군인을 선택했다. 영특하지 않은가. 이 브래들리란 시계. 포장 마저도 점자로 가득한 이들의 마케팅 전략은, 그러니까 이 모두가 그들의 독특한 '스토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의 가장 큰 자산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제품의 포장지에 '점자'를 쓴 디테일도, 또 하나의 스토리가 된다.


브랜딩은 홍보나 마케팅의 노하우에 관한 문제만은 아니다. 어쩌면 신뢰와 진정성의 영역이다. 얼마 전 직원 대여섯 명의 조그만 화장품 회사 대표를 만났다. 서울대 공대생 출신의 그가 화장품을 만들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웠다. 그가 만드는 제품도 독특했다. 예를 들면 그는 수영장용 샴푸를 만든다고 했다. 수영장의 염소를 좀 더 효과적으로 제거해주는 샴푸라고 했다. 어쩌면 니치 중의 니치 마켓, 틈새 중의 틈새 마켓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했다.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었다. 왜 공대생이 화장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당장 수천 만원의 수익이 보장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데도 왜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지, 그 외에도 독특한 다른 제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나같은 '브랜드 스토리 파인더'에게는 이만한 '발견의 즐거움'도 달리 없겠다 싶었다. 물론 그를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 이야기를 이곳을 통해 제대로 알려보기로 했다. 어쩌면 이런게 브랜딩이 아닐지. 진짜는 그것을 알리고 싶은 사람을 만나기 마련이고, 그 과정이 어쩌면 진짜 브랜딩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브랜딩을 너무 쉽게 말하는 것은 조금 무모한 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창업자들이 브랜딩을 피상적으로 생각하거나, 때로는 어렵게 생각하는 것을 볼 때는 안타깝기도 하다. 돈을 벌고 난 후에야 시작하는 포장 정도로 생각할 때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건 '경쟁'은 필수적이고, 그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이고, 때로는 경제적인 방법이 '브랜딩'이라고 생각한다. 브랜딩은 결국 차별화이고, 그 차별화의 시작은 결국 '이야기'를 통해 전달되기 마련이다. 왜 그 제품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지, 무엇이 어떻게 다른 제품들과 다른 것인지, 그 서비스가 남다른 이유는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이에 대해 말할 수 없는(스토리텔링) 브랜드는 미래가 없다. 그 누구도 그 제품에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브래들리는 특별한 이야기를 가진 브랜드다. 그래서 디자인과 제품력 못지 않은 '스토리텔링'으로 시장의 관심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이렇게 극적일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야기'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그 제품과 서비스 뒤에 숨은 이야기에 열광하기 마련이니까. 그 이야기가 모든 입소문과 바이럴 마케팅의 시작점이 될 테니까. 그 이야기로부터 매력적인 카피와 때로는 네이밍이 탄생할 테니까. 마치 이 시계 '브래들리'의 탄생처럼. 그래서 묻고 싶다. 당신이 만드는 제품에는, 서비스에는, 어떤 스토리가 숨어 있는지.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누구를 통해 전달하고 있는지. 너의 이름은, 그래서 어떤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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