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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더's 다이어리 #02.

빵집은 늘 다니던 골목에서 언덕을 한참이나 오른 후에야 비로소 나타났다. 아주 가까이 갈 때까지도 긴가민가 할 만큼 이름도 생소하고 규모도 작았다. 심지어 간판마저 동네 빵집의 전형에서 한참을 비켜난 모양새였다. 그래서 구미가 당겼다. 사람이든 브랜드든 예측을 벗어날 때는 두 가지 중 하나다. 아주 매력적이거나 아주 아니거나. 과연 이 집은 그 중 어느 쪽일까? 문을 열고 들어서니 진열대와 부엌, 빵 굽는 기계와 계산대가 모두 팔을 두 번 뻗으면 닿을 곳에 몰려 있다. 아무리 둘러봐도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정말 빵 맛으로 승부하지 않으면 안 될 그런 가계다.


이 빵집을 찾은 이유는 함께 일하는 디자이너가 너무나도 강력히 추천했기 때문이었다. 그 뒤를 따라 다녀온 에디터의 반응은 그보다 더했다. 어릴 적 빵집 딸이었던 아내는 빵 맛을 안다. 그래서 처음 이 집을 발견한 디자이너가 최소한 일주일치 점수를 딸 수 있다고 유혹하는 바람에 늦은 퇴근 길, 그 길로 가게를 찾았던 것이다(너무나 유니크한 빵인 탓에 이름을 정확히 몰라 빵 모양을 연필로 그려 놓은 메모지 한 장을 들고서). 결과는 대성공, 아내는 내가 사준 빵을 일부러 점심으로 챙겨 들기까지 했다. 아주 오래간만에 보는 흡족한 모습이었다.


이곳에서 일한 지도 6년 차에 접어들었다. 여전히 브랜드는 어렵고 모호하지만, 그래도 사람과 브랜드를 보는 하나의 관점만은 분명해진 것 같다. 크기와 유행이 주는 유혹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신 작고 소박하지만 단단한 생각을 가진 사람과 브랜드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일부러 찾아다니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그러나 그들이 하는 일에 무한한 자부심과 당당함을 지닌 그런 사람들, 그리고 브랜드들.


"삼성 일을 한다고 해서 삼성이 되는 게 아니고, 매퀸 일을 한다고 해서 매퀸이 되는 게 아니잖아. 나는 매퀸 일을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매퀸이 되고 싶어."


오늘 페이스북에 공유했던 디스트릭트 최은석 대표의 기사는 진심으로 근래 발견한 최고의 글이었다. 글쓴이의 공도 크지만, 무엇보다 한 사람의 치열하고 열정적인 삶이 주는 진정성의 힘, 그리고 못다 핀 아름다운 꽃을 동경하는 아쉬움 때문이었으리라. 그가 이룬 일들도 대단하지만, 실력과 철학을 겸비한 사람들을 하늘은 그렇게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실패를 용인하는 좀 더 큰 나라에서 태어났더라면 그는 어쩌면 좀 더 큰 일, 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유니타스브랜드가 흠모하는 사람과 브랜드의 조건은 단 한 가지다. 바로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일, 자신의 삶, 자신의 경영을 자기답게 하는 사람, 그리고 브랜드이다. 쉽고 편하고 인정받는 길이 아니라 해도,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발견하고 이루기 위해 사는 삶, 존재하는 브랜드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마력적이다.


우리는 오늘도 그런 사람을, 브랜드를 찾아다닌다. 지난 6년 동안 그렇게나 열심히 찾아다닌 이유가, 스스로는 아직 그런 사람이, 브랜드가 되지 못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나 의심하면서. 그런 사람이나 브랜드를 만나 그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어서. 그 누가 이 외롭고 힘든 길을 함께 걸어주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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