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더's 다이어리 #04.
"여긴 마치 분당에 있는 어느 골목 같아."
"이 길은 사당역 쪽으로 가는 길이랑 꼭 같은데요."
3박 4일 동안 십여 개의 크고 작은 도시를 오고 가면서 우린 종종 이런 대화를 주고 받았다. 초행도 있었고, 한 번쯤은 와본 도시도 적지 않았지만 이렇게 연이어 여행(?)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새삼 깨달았다고나 할까? 조금 더 조용하고, 조금 더 깨끗한 도시는 있을지 몰라도 한눈에 알아볼 만큼 특색있는 도시는 많지 않았고, 그래서 우리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무려 1,500여 킬로미터를 달리면서 보았던 창 밖의 그 무료함이 그 실망의 이유 전부라면 차라리 좋겠다.
오래 전, 케이블 TV에서 즐겨보던 일본 프로그램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일본 전국의 도시를 돌면서 '라멘'을 먹는 프로였다. 하루 종일 특색 있는 라멘집에 들어가 라멘을 먹고 그 라멘집의 그릇을 받아오는 것이 내용의 전부였다. '미스터 초밥왕'같은 화려한 수사도, '헬스 키친'같은 숨막히는 긴장감도 없었지만, 미묘하게 다른 라멘 맛과 가게의 개성을 살피는 재미가 적지 않았다.
또 다른 하나는 일본 철도를 여행하면서 이른바 '에키벤'이라 불리는 기차 도시락을 까먹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들 역시 하루 세 끼를 기차 도시락으로 대신하면서 쉴 새 없이 먹고 떠드는 것이 전부인 프로였지만, 역시 쉽게 채널을 돌릴 수 없었다. 기차가 멈추는 지역마다 다른 도시락이 등장했고, 포장도 재료도 맛도 다른 그 도시락들은 언젠가 한 번쯤 신간센을 타고 골라 먹는 재미를 만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기 때문이었다.
'브랜딩'의 핵심은 '차별화'에 있다. 그리고 그 차별화는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울 때 생명력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게 마련이다. 60억 인류가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태어나듯, 도시 역시 각각의 환경과 역사, 사람이 만들어낸 개성으로 충만한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 도시가 만들어낸 저마다의 건물과 음식과 풍속은 그 무엇보다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뿐더러, 여행자에게 더할 수 없는 다양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청주에서 분당의 거리를 보고, 대전에서 사당의 골목을 연상하는 것이, 실은 식민지와 전쟁의 상흔을 지우기 위한 피나는 노력의 결과였다는 것을 우리 중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다만 언젠가는 진주만이, 전주만이, 강릉만이 가진 개성으로 충만한 여행을 다시 한 번 해보고 싶다. 좋은 브랜드란, 특별한 브랜드란, 경쟁력 있는 브랜드란 결국 각 사람이 가진 특별한 경험이 낳은 결과물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p.s. 그런 의미에서 전주의 한정식을 먹고 부른 배를 진정시키기 위해 걸었던 전주 한옥 마을의 밤거리는 아름다웠다. 과거의 전통과 현대의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특별한 경험이었기에 더욱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