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현 원장, '슬림엠' 에스테틱
처음 만나는 날 그는 스파게티와 와인을 대접했다. 두 번째 날은 순두부를 먹었다. 둘 다 가장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했다. 네다섯 번 만나는 동안 언제나 최고의 식사를 했다. 그는 내가 제시한 금액이 오히려 작다고 했다. 모두가 처음 만나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런 갑들만 세상에 존재한다면 무슨 근심걱정이 있을까. 그렇게 나는 그의 새 책 '아름다움을 욕망하라'의 한 챕터를 쓰는 계약을 했다. 사족같은 글이었으나 굳이 함께 하고 싶다는 그의 결심의 결과였다. 그는 신사동에서 에스테틱(스파)을 운영한다. 그는 언제나 흰색 테의 안경을 쓴다. 그의 이름은 박정현이다.
이런 대접은 약속을 잡은 그 날부터 시작됐다. 미팅 일자를 잡고 보내온 문자에는 에스테틱으로 가는 거의 모든 교통편과 상세한 안내가 설명되어 있었다.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을 정도였다. 과하다 싶을 정도의 친절이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는 걸 아는 데에는 물론 시간이 조금 걸리기는 했다. 그러나 빙산은 그 일각을 사람의 눈에 보이는 법이다. 이런 세심함은 그가 하는 일과 인생, 관계의 모든 곳에 전이되고 있었다. 나는 정말 좋은 글을 쓰고 싶었다. 그의 배려에 대한 나의 화답이 최고의 수준이기를 바랬다. 그만큼 그의 진심은 강력했고 위력적이었다. 그와 함께 일해본 사람은 모두가 이 사실이 팩트임을 인정하리라.
그는 자신의 하는 일의 격을 높이고 싶어 했다. 단순한 마사지 서비스가 아닌, 지치고 힘든 현대인을 위한 전인격적인 스파와 에스테틱을 세상에 선보이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녀는 매년 수백 명을 모아 컨퍼런스를 열고 아카데미를 열어 그녀만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중이다. 분명 크게 돈되는 일은 아니지 싶었다. 오히려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시간과 노력의 희생이 훨씬 더 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일을 하는 그녀는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여러 번의 만남이 반복되면서 듣게 된 개인사로 인해 그 감탄은 존경의 마음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업의 일을 하는 사람인데, 그 업을 바라보는 내 시각이 완전히 달라진 건 오롯이 그녀의 일과 삶 그 자체 때문이었다.
샵을 찾아 마사지 서비스를 받았다. 난생 처음 받는 서비스에 몸 둘 바를 몰라하던 나는 참 많이도 고민을 했었다. 굳이 이런 민망한 서비스를 받아야만 글을 쓸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의 단호한 한 마디에 받았던 마사지의 충격은 지금도 가시지 않는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나의 피로도를 체크할 수 있었다. 단 40분의 서비스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었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결코 싸지 않은 비용을 지불해가며 그 서비스를 받으로 오는지. 난생 처음 몸과 마음이 동시에 릴랙스되는 여유와 평안을 느낄 수 있었다. 그건 단지 몸의 피로를 푸는 서비스가 아니었다. 나는 그 40분 동안 '깊게' 쉴 수 있었다. 사람의 손길은 몇 백만원의 기계가 주는 이완의 경험과는 완전히 달랐다. 나는 이 업이 왜 이 땅에 필요한지를 몸소 체감할 수 있었다.
업의 격은 그와 함께 일하는 사람을 통해서도 완성되고 있었다. 그의 샵 '슬림엠'의 직원들은 다른 곳보다 꽤나 높은 수준의 대우를 받는다. 아무리 말로 이 업이 '가치있다'고 웅변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해외에서는 이 업이 얼마나 대우받는 직업인지를 말한들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직원들은 보수와 대우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할 수 밖에 없는 법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일하는 방법은 아주 조금, 때로는 많이 달랐다. 차 한 잔 내올 때도 상세한 설명이 곁들여졌고, 서비스를 받는 모든 순간은 철저히 훈련되고 통제된 모습이었다. 심지어 출근 시간도 자발적으로 체크하는 그들은, 그러나 손님들과 필요 없는 말들은 일절 섞지 않았다. 그들이 일하는 방법은 수백 페이지의 매뉴얼로 매일 구체화되고 있었다. 심지어 너무 두꺼운 것을 고려한 나머지 8포인트의 글로 인쇄될 정도였다.
일례로 메르스가 전국을 강타하던 시절에도 슬림엠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 이유는 이곳의 화장실만 둘러봐도 안다. 이곳 화장실은 3시간 단위로 청소가 이뤄지니까. 곳곳에 걸린 청결도 체크표만으로도 강박적인 위생 관념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였다. 이렇게 그들은 치열하게 일하고 있었따. 그 정도의 노력이면 그만한 댓가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다른 곳과 달리 장기 근속자들이 많았다. 나는 그것이 당연한 결과라 생각했다.
그 자신은 프랑스 유학파였다. 그러나 유학 과정은 단 한 푼의 도움이 없이 결심한 길이라 고난의 연속이었다. 거기서 그녀는 '똘레랑스'의 참 의미를 배웠다고 했다. 단순한 '관용'이 아닌 오랜 동안의 인내와 실천으로 얻어진 기개Grit임을 웅변했다. 그의 작은 몸이 숱한 관록으로 단단해진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는 프랑스 대사관에서 '독하게' 일하는 법을 배웠다. TGV의 도입 과정에도 번역과 동시통역의 일로 함께 했다. 그러나 상대방을 향해서는 그 독함을 버리고 한없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내가 받은 모든 식사와 대접은 그런 그녀의 '독한' 경험에서 여과되어진 '부드러움'의 결과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에서만큼은 절대적으로 프로인 그였다. 신사동 골목 깊숙한 곳에 위치한 그의 샵에는 언제나 최신식 설비와 서비스들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된다. 그가 방송에 자주 출연하고 네다섯권의 책을 출간한 이유로 바로 그 프로의식 때문일 것이다. 마케팅에 관해 쓴 그이 책은 내가 또 하나의 교본으로 여길 정도다. 불필요한 수사가 하나도 없는 생생한 비즈니스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선입견을 떼고 보아야 한다. 당신이 흔히 만나온 마사지샵의 원장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 사람의 인생을 전인격적으로holistic 케어하는 숨은 구루에 가깝다. 그는 세상의 편견이나 오해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업'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니 자연히 벌떼처럼 사람들이 모일 수 밖에. 그의 삶 자체에서 나오는 향기에 매료될 수 밖에...
그의 아버님이 한국의 방송사에 기록될만큼 대단한 분인 것도, 그의 동생이 관록의 영화 감독인 것도, 지금은 치매에 걸리신 어머님을 극진히 모시는 어려운 상황인 것도 모두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겸손과 인내의 산실이 결국 그의 높은 자존감에서 온 것임을 부족한 나도 이제는 안다. 그 결과로 나 역시 조금 더 겸손해졌다. 내 일을 사랑하게 되었다. 할 수 있는 한은 나에게 엄격하며, 가능한 한은 남에게 관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결코 잊을 수 없도록 나를 끊임없이 칭찬하고 배려하는 좋은 인생의 선배라는 가장 큰 선물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못다한 이야기는 그의 '아름다움을 욕망하라'에 모두 쏟아 놓았다. 만일 나와 같은 진정한 구루를 만나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라. TV 속 화려함과는 또 다른 그의 모습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그런 그를 조금 더 일찍 알게 되난 나는, 그래서 감히 행복하다고 말해본다. 그도, 그의 업도, 그의 인생도 내겐 감히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