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시현하다, 천 개의 얼굴 앞에서

사진관 '시현하다'

얼마 전 지인 한 사람이 동네 사진관을 찾았다. 해외 여행을 위해 비자 사진을 내야 했던 긴박한 상황이었다. 아침에 문을 연 회사 근처 사진관을 찾아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결과물이 문제였다. 한 마디 대화도 없이 나온 사진의 결과물은 누가 봐도 조금 슬퍼 보였다. 하지만 보정을 요구하는 지인에게 사진관 주인이 뱉은 한 마디는 충격적이었다.


“...이게 본인인데요.”


결국 지인은 몇 분간의 실랑이 끝에 환불을 받았다고 했다. 결과물 만큼이나 사진을 완성하는 그 과정이 아쉬웠다고 했다. 그때 문득 떠오른 사진관 한 곳이 있었다. 바로 ‘시현하다’라는 사진관이다. 증명 사진 한 장을 촬영하기 위해선 매달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하는 곳이다. 예약은 30초만에 마감된다. 촬영을 위해 재수, 삼수를 하는 사람도 많다. ‘시현하다’에서 찍은 사진으로 주민등록증을 만드는게 버킷리스트인 고3 학생들이 있을 정도다. 동네 사진관을 찾기 힘든 요즘에도 사진관 주인은 증명사진만 찍는다. 사진관 주인의 인스타그램 팔로어수는 20만을 넘어선지 오래다.




증명사진의 필요를 재발견하다


이 사진관의 주인 김시현 작가는 초등학생 때 생일 선물로 카메라를 받았다. 그때부터 찍은 사진 실력으로 친구들의 학생증과 주민등록증 사진을 찍었다. 이런 경험은 잦은 전학으로 인한 어려움을 이겨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는 직접 졸업앨범을 만들기도 했다. 사진학과에 입학해 사진관 언니의 꿈을 키웠다. ‘당신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사진 작업의 진짜 의미임을 대학에서 배웠다. 이후 그는 개성을 담은 증명사진을 찍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곳은 상식을 깬다. 고정관념을 부순다. 그저 주민증이나 여권의 신분 조회를 위한 용도를 넘어선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직시할 수 있는 특별한 사진을 찍어준다. 방법은 배경 컬러와 조명, 구도에 변화를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진을 찍는 사람의 개성이다. ‘이 시대에 증명사진을?’ 하는 사람은 올드한 사람이다. 형형색색의 배경에 담긴 일반인들의 사진은 생기가 있다. 개성이 있다. 숨은 이야기가 있을 것만 같다.


사진관을 찾으면 김 작가와 대화를 나누며 어울리는 배경지부터 찾는다. 그 다음엔 각각의 개성을 끌어낼 수 있는 표정과 구도를 찾으며 촬영을 진행한다. 그 후엔 같이 모니터를 보며 일대일로 보정 작업을 거친다. 현장에서 인화한 사진을 바로 받아볼 수 있다. 최소한에서 최대한으로, 한 사람의 개성을 '시현'하는 것이 그녀의 모토이자 슬로건이고 정체성이다.




사진을 찍은 10명 중 2명이 울고 가는 이유


모두가 프로의 화려한 세계를 흠모할 때 그녀는 몇 평 되지 않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자신만의 사진을 찍었다. 그녀는 사진만을 찍지 않는다. 인생을 옮긴다. 그곳을 찾는 10명 중 2명이 매일 울고 간다고 한다. 자신의 진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작업은, 그래서 오래된 동네 사진관의 증명사진과 또 다른 것이다. 눈썹이 없어도 아름답고, 다크 써클을 지우지 않기를 원하는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들의 일생이, 개성이, 가치관이, 자존감이 이 한 장의 사진에 담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로 넘쳐나는 이 시대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나다워지길' 원할 것이다. 그런데 나다워진다는 게 뭔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아닌가. 자신의 존재와 하는 일로 이 세상이 조금 더 좋아지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대면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에너지가 넘친다. 우리는 누구나 그 생기를,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한 장의 증명 사진에도 오롯이 담길 수 있다.


사진을 공부하는 어느 누구도 ‘증명사진’을 찍는 사진관 주인을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현하다’의 주인은 그들과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대신 기존과는 다른 시각으로 자신의 일을 재정의했다. 사진이 가진 기존의 용도에 매몰되지 않고 ‘자기다움’을 발현하는 도구로 활용했다. 자신의 직업을 재해석한 것이다. 그리고 세상은 반응했다. ‘남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하는 열망에 목마른 이들이 이 사진관을 찾았다. 누구나 한 번은 나다운게 뭔지를 고민하는 순간이 온다. 나는 남과 무엇이 다른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 달라지기 위해서 무엇부터 해야 하는가. 그때가 바로 '시현하다'가 필요해지는 순간이다. ‘시현하다’는 그 지점의 욕망을 읽어 차별화에 성공했다. 누구도 함부로 복제할 수 없는 그만의 차별화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 시현하다 인스타그램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나 흰색 안경테를 쓰지 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