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내 책을 포함해 지금 현재 세 권의 책을 동시에 편집 중에 있다. 조만간 그 리스트에 한 권의 책이 더 올라간다. 매일 하는 일이니 쉬운 일이라 말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그맨들은 집에서 과묵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일터에서 남을 웃기는 일만으로도 진이 빠진다는 의미이리라. 나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일보다도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의 가능성이 높은 일이 이 일이다. 벽돌로 지은 집은 누가 봐도 완성도를 짐작하기 쉽다. 하지만 글은 쓴 사람이 보아도 아침 다르고 저녁이 다르다. 그러니 그 일을 의뢰한 사람은 오죽 하겠는가. 그런 작업에 치이고 나면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깨닫게 된다. 글쓰기를 업으로 10년 이상을 써온 나도 그러할진데 보통의 사람들은 얼마나 어렵겠는가. 여하튼 글쓰기는 어렵고 힘들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도 나는 브런치와 여타의 블로그에 매일 한 편씩의 글을 올린다. 그 이유가 스스로도 궁금해서 오늘의 글로 써보려 한다.
글쓰기는 어떤 일보다 '능동적'이고 '생산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일요일 오전, 간만의 여유로운 아침을 맞아 무엇을 할지 고민을 했다. 영화 한 편을 볼까? 요즘 핫하다는 스카이캐슬을 볼까? 백종원이 골목식당도 궁금하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혼자 내리게 된 한 가지 결론. 이 모두가 다분히 소비적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소비적인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영화나 다큐, 드라마를 통해 배울 수 있는게 얼마나 많은데... 하지만 이 일들은 수동적이다. 내가 일방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하지만 글쓰기는 정반대로 능동적인 작업이다. 내가 무언가를 생각해내고, 정리하고, 실천해서 기록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적극적이고 생산적인 작업을 할 때마다 내 자신이 '고무'된다. 쉬운 말로 '업up'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소비할만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일은 생각 외로 보람찬 일이다. 댓글이나 좋아요 하는 가벼운 피드백이 주는 에너지가 얼마나 큰지는 경험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하지만 좋은 영화나 드라마를 본 감동은 오래 가지 않는다.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재생산해낼 수 있다면 모를까. 그래서 가능하면 나는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오늘처럼 이렇게 글을 쓰는 일 말이다. 그런데 이 글쓰기가 다음과 같은 결과를 만들어낼 줄은 미처 몰랐다.
매일 나로 하여금 무언가 '글 쓸 거리'를 고민하게 만든다.
이 사실은 중요하다. 무언가 글 쓸거리를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생산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글이건 실천과 변화가 담긴 글에 사람들이 반응한다는 걸 오랜 기간의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내 안에 어떤 질문이나 아이디어가 들어오면 가능한 한 직접 해보려고 애를 쓴다. 그런게 떠오르지 않는 날이면 의도적으로 무언가에 도전하곤 한다. 읽어보지 않은 책, 가보지 않은 길, 해보지 않았던 뻘짓도 해보려고 애쓴다. 무언가를 써야 한다는 작은 압박감이 나로 하여금 무언가에 도전하게끔 만든다. 그런데 이게 참 중요하다. 매일 무언가에 도전하는 것만큼 역동적인 삶이 세상에 또 있을까. 매일 무엇을 쓸까에 대한 고민이, 매일 무엇에 도전할까로 옮겨가는 순간이다. 그런데 그것이 대단한 무엇이 아니어도 된다는 점이 다른 이들의 그것과 가장 큰 차이이다. 아주 사소하고 별 것 아닌 일들도 도전의 대상이 된다. 평소 연락이 없던 지인에게 카톡을 보낸다거나, 사놓고 쓰지 않았던 카메라를 들고 산책을 나간다거나, 새로운 라면을 먹어본 후 간단한 리뷰를 적어본다거나... 이런 시덥잖은 소박한 도전들을 매일 해보고 그렇게 하나둘씩 기록을 남겨가는 것이다. 누가 읽거나 말거나 나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결과 나 자신이 '살아있음'을 매일 조금씩 경험하게 된다.
생물학적으로는 살아 있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죽어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자신의 일이나 상황에 억지로 떠밀려가면서, 매일의 무료함에 어찌할 바 몰라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자연스럽게 더 큰 자극, 수동적인 일들에 휩쓸려 버린다. 일 이외의 삶들이 모두 소비적이고 소모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런 곧잘 악순환의 수렁 속으로 사람을 몰아 넣는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일, 누군가에게 자극을 주는 일, 누군가에게 살아갈 용기를 주는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고는 '살아있을' 수 없는 법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렇게 살도록 설계된 존재니까. 그렇다고 해서 무슨 대단한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하다못해 자신이 들른 맛집의 정보를 올리는 일조차도 얼마나 보람찬 일인가. 가야 할 집은 발견의 기쁨을 주고, 가지 말아야 할 집은 돈과 시간을 아껴주니까 말이다. 모두가 스티브 잡스나 테레사 수녀처럼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가장 가까운 누군가를, 익명의 누군가를 신명나게 유쾌하고 즐겁게 하는 일만큼 보람찬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그게 살아있음의 방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나는 오늘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무엇을 하면 나는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을까 하고.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나 재미, 감동을 줄 수 있을까 하고. 그 방법의 하나로 나는 이렇게 매일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고, 잘하는 일이고, 가치 있는 일임을 경험으로 깨달아 왔기 때문이다. 이건 생계를 위한 글쓰기와는 전혀 달라서 좋다. 조금 다른 의미에서 생산적인 일이기 때문에 더없이 좋고, 나로 하여금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기 때문에 더더욱 좋다. 댓글로 도움이 되었음을 알리는 익명의 누군가들로 인해 한없이 큰 보람과 에너지를 얻는다. 돈 드는 일도 아니고 약간의 시간과 노력만 기울여도 되는 일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나에겐 그것이 글쓰기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그게 전혀 다른 일일 수 있다. 운동일 수도, 연주일 수도, 색다른 취미일 수도 있다. 그러니 오늘의 주말 하루라도 '생산적이고 주도적인' 가볍고 작은 사고를 한 번 쳐보면 어떨까? 그게 무얼지 상상하는 것만으로 신나는 일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