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을 보고서...
어느 날인가, 지하철이었다. 나보다 조금 더 키가 큰 남자가 뒤에 서 있었다. 최소한 40대로 보였다. 문제는 그가 연신 소리를 내어 숨을 쉬고 있었다는 것인데. 그게 잘못은 아니지만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한 마디로 냄새가 났다. 술냄새, 입냄새, 그리고 '나이'의 냄새... 이십 대의 여자가 내 자리에 있었다면 참으로 곤란했었으리라. 입을 막고 얼른 그 자리를 피했을지도 모를 일. 그런데 나는 차마 그러지 못하고 끝까지 서 있었다. 나도 누군가에겐 저런 '아저씨'로 보일 수도 있지 않은가. 이십 대처럼 반응을 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하철을 나오면서 옷깃에 코를 대 보았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지만 믿지 않았다. 원래 자신의 냄새는 스스로 맡기 힘들지 않은가 말이다.
초등학교 친구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으로 초대를 받았다. 하지만 처음엔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미 30년 이상의 세월의 벽 때문이었으리라. 한참을 들여다본 후에야 몇몇을 알아보았다. 그리곤 우울해졌다. 함께 나이 들어간다고 보기엔 그들의 모습이 조금 불편할 정도였다. 그들에 대한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너무 강렬하게 남아 있어서였다. 미안한 말이지만 같이 늙어간다는 사실을, 그 순간만큼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까진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이 영화가 불편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인의 추천이 아니었다면 결코 보지 않았을 제목의 영화다.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이라니... 원제가 아무리 그렇다기로서니... 이건 직무 유기에 가까운 제목 짓기가 아닌가. 게다가 스토리는 어떤가. 마흔 다섯의 레스토랑 지점장과 고등학생이 주인공인 영화다. 이게 가당키나 한 설정인가. 아무리 일본?이라지만 너무하다 싶었다. 취향의 다양성을 인생의 모토로 삼는 나지만 이런 '판타지'에 쓸 두 시간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이미 지인의 추천에 '한 번 보겠다'는 약속을 해버렸고, 본 흉내만 내겠다고 하다가 어느 덧 두 시간을 몰입해 보고 말았다. 나 스스로에게 부끄러웠다. 공교롭게도 남자 주인공의 나이가 (주민등록 상의) 내 나이와 같았다. 빌어먹을... 아마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판타지 같은 영화에 빠져들었던 건 말이다.
두 시간 내내 죄책감을 가지고 영화를 보았다. 솔직히 여주인공의 연기는 놀랄 정도였다. 분명 판타지한 설정인데 나도 모르게 공감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내 나이 또래의 남자라면 비슷한 감정이었으리라.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일말의 기대( 두 주인공의 엔딩)를 하게 되고, 그 생각이 떠오르기가 무섭게 밀려드는 묘한 죄책감... 그런 생각의 너울을 타고 두 시간을 버틴 건 순전히 이 둘의 연기력 때문이라 변명하고 싶다. 미안하다. 다시는 이런 영화를 보지 않으리. 제 빨리 현실로 돌아가리라 다짐하면서 보았다. 누구에게 이 영화를 보았다고 절대 말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하지만 나는 지금 이렇게 리뷰를 쓰고 있다. 판타지임에 분명한 영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만 걷어내고 보면(그게 참 중요한 건 분명하지만) 이 두 주인공의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에겐 한 때 '꿈'이란게 있었고, '가능성'이란게 있었고, 그것을 향해 맞싸울 '라이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저 '미련과 집착'만이 남아 있다는 사실.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는데까진 성공하였으나, 그래서 삶의 환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나이를 지우고 본면 분명 공감할 만한 주제라고 생각했다. (미안하다. 20대들이여. 감히 그대들이랑 비슷한 상황이라고 우겨대는 나를 용서해주시길...)
여주인공은 한 때 촉망받는 육상 선수였다. 그러나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부상을 당하고 운동을 포기한다. 그리고 자신의 집에도 조금은 떨어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알바를 한다. 문제는 그 이유가 황당하다는 것이다. 이 레스토랑의 점장과의 첫 만남에서 (이해할 수 없는) 매력을 느껴버렸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이 지점에서 '무모한' 설정으로 인한 공감을 포기해버리는 듯 하지만... 그런데 이 점장 아저씨에겐, 또 나름대로의 묘한 매력이 있다. 자신을 과장하지 않고 일상을 살아가는 소시민적인 매력... 한때 소설가를 꿈꾼 그였으나 그 꿈으로 인해 이혼까지 당한 과거를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 슬픔에 함몰된 캐릭터로 보이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서점과 도서관을 찾고, 그 안에서 잃어버린 꿈을 조금씩 복기한다. 여전히 그는 소설을 쓰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 소설은 도무지 진전을 보지 못한다. 그 사이에 친구는 베스트셀러의 작가가 되어 있다. 이런 두 사람이 만난다. 조심스럽게. 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이 단 한 번 자신들의 감정에 매몰되었을 때, 감독은 정전으로 어두워진 방을 환하게 밝혀버린다.
얘기를 맺어 보자. 이 영화를 세대를 넘어선 '사랑'으로 이해한다면 판타지 아니면 불륜이다. 하지만 세대를 넘어선 인간의 이야기로 보자면 아름다운 '우정'의 영화다. 미안하지만 사십 대의 남자를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자. 연초의 어느 모임에서 만난 한 분은 누가 봐도 거구의 강한 인상을 가진 3,40대의 남자였다. 그는 엔터테인먼트 쪽의 기획 일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소녀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했다. 다른 이들은 어땠을지 모르나 나는 그가 '부러웠다'. 자신의 그러한 정체성을 드러냈을 때 쏟아질 주위의 반응이 어땠을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당당했다. 그래서 자문해 보았다. 그 나이의 남자들이 모두 담배 냄새에 찌들이 음침한 뒷골목의 술집을 전전하진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순정 만화에 눈물을 흘리며 감동할 수도 있다. 시 몇 편을 외우며 뿌듯해 하는 사십 대의 남자가 없으란 법은 없다. 그건 취향의 문제이니 존중해주기로 하자. 그러나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다. 이 영화의 스토리가 불안불안했던 건 바로 그 대목이었다. 이 일본 영화 감독이 판타지를 현실의 영역으로 끌어오지 않길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엔딩을 볼 때는 다행히도 마음쓸어내릴 수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여주인공은 다시금 운동을 시작하고 있다.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을 알바 자리에서 몰아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운동하는 그를 찾아 기쁜 소식을 전한다. 그 자신이 승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말이다. 그러자 여주인공이 말한다. 우리는 친구 아니냐고. 친구끼리는 메시지를 주고 받는 것이라고. 남자 주인공은 고개를 끄덕인다. 다행이다. 이렇게 끝나버려서. 감사하다. 이렇게 끝나주어서.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의 고백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잃어버렸던 열정을 되찾아 주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담아 그는 다시 소설을 쓴다. 그 소설의 내용이 어떠했을지는 짐작 가능하다. 하지만 그 소설은 힘이 있었다. 평소에 그토록 무시하던 다른 여직원을 미소 짓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여주인공도 다시 운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대회 출전을 결심한다. 해피 엔딩이다.
이 이야기에 내가 '공감'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의 연기력 때문일까, 아니면 내 나이 때문일까. 그래 내 나이 때문이라고 하자. 그래도 나의 취향을 존중해주시길.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세대를 가장 힘들게, 치열하게 살아가는 법이다. 20대가 그 존재만으로도 빛나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는 안다. 그들에게도 엄청난 어둠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40대이 인생이 찌든 삶인건 분명하다. 그러나 그건 자신을 소진할 만큼 열심히 살아온 흔적일 뿐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40대를 20대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을, 나는 정말로 무척이나 많이 보아왔었다.
흰 머리가 늘어간다. 혈압약을 먹는 중이다. 중성 지방의 경고를 받았다. 노안이 와서 평생 쓰지 않던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이 사십 대를 살아가는 나의 '모든 정보'는 아니다. 여전히 매일 밤마다 시를 읽(으려고 노력한)다. 김연수와 김애란의 소설을 즐겨 읽는다. 생명의 지장만 없다면 매일 매일을 모험하면서 살고 싶다. 건강한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고 싶다. 가끔은 멜로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면 좀 어떤가. 사십 대도 종류가 있다. 그들의 취향은 각각이다. 무엇보다 아직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나도 가끔은 소설 습작을 한다. 비웃을까 싶어 공개를 못할 뿐 짧게라도 나의 감성을 담은 단편을 써보고 싶다. 시를 쓰고 싶다. 시나리오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하지만 나는 점장처럼 살아갈 것이다. 이십 대의 건강한 아름다움을 부러워하면서도, 지금 하는 일의 열정에서 동일한 열정과 건강한 에너지를 찾을 것이다.
내가 아는 한 가장 멋진 사람은 헤비타트에서 집을 짓던 70대의 여자분이었다. 무료로 집을 지어주는 국내 행사에서 그녀를 만났다. 청으로 된 반바지를 입은 그녀는 내 앞에 와서 파란 가루로 된 게토레이를 꺼내들었다. 물병에 가루를 휘휘 타서 마시고는 바람처럼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그 사람은 노인이 아니라 '에너지' 그 자체였다. 그렇게 늙어갔으면 하고 나는 바랐다. 이 영화를 본 후 떠오르는건 그 날 오후에 그녀가 마시고 있었던 파란 게토레이였다. 이 영화가 간간히 보여주는 파란 하늘처럼. 그건 어느 특정 세대를 위한 파랑은 아니었다. 10대와 40대에 모두 허락된 파란 하늘이었다.
* 기억에 남는 대사들...
"난 별 볼일 없는 아저씨야.
뭘 해도 어중간하고,
뭘 잘한다는 소시를 들어본 적도 없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어른이 아니야."
"여고생이랑 아저씨가 갈 수 있는 곳이 어디 있겠어.
아저씨가 가고 싶은 곳이요.
내가 가고 싶은 곳? 지루해 죽을 텐데.
저는 아저씨를 더 알고 싶어요."
"책이란 누가 추천한다고 해서 읽는 게 아니야.
만약 그 책이 재미없었다면 너한테 고충을 추천하겐 되잖아.
하지만 네가 이곳에 왔다는 건
어디엔가 널 기다리는 책이 있다는 것이지.
그건 분명 지금의 너에게 필요한 책일 거야."